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 Dec 05. 2023

방향치 생존법

얼마 전 친구가 나에게 "질린다"라고 했다. 순간 속상했지만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잊은 줄 알았던 과거 일이 잠들기 직전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썩 친하진 않았지만 말을 잘하던 A가 있었다. 바로 옆에 앉다 보니 가끔 대화를 나눴는데, 담담하고 확실하게 말하는 타입이었다. 도덕성이나 사회적 시선에 민감한 나와 다르게 A는 통념과 다른 의견도 곧잘 말했다. 그 점이 흥미롭고 재밌었다. 한 번은 흥분해서 "너 같은 사람이랑 만나면 좋겠어"라고 숨김없이 말했다. 그때 A는 슬쩍 나를 훑곤 "본래 배울 점 있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난 너랑 안 만날 거야. 재미없어"라고 답했다. 당시에도 순간 따끔했지만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흘러 넘겼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머리에 점처럼 남아서 비슷한 상황에서 생각났다. 이렇듯 종종 생각날 정도면 당시 상처받았구나라고,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 이와 비슷한 말은 여러 번 들었다. 혈육에게 만약 우리가 가족이 아니라 한 학교에서 만났다면 친해졌을까, 하고 물었을 때 혈육도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아마 재미없는 아이라고 생각해서 친해지진 않았을 거야. 서로 접점도 없었을 거고."

혈육과 반대 이유로 나도 친해지지 않았을 거라 예견했다. 학생일 적 나는 지금보다 빡빡한 사람이라 반항적으로 보이는 혈육을 멀리 했을 터였다.


되짚어보면 셋은 닮은 점이 없었는데, 대화 방식이 비슷했다. 기준은 작위적인 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여기는 나는 늘 상대에게 맞췄다. 종종 대화 분위기와 흐름을 위해 적당히 흘러가거나 나는 싫어해도 상대가 좋아하는 일은 나도 좋다고 거짓말을 했다. 반면 셋은 제 기준이 확실하고 거짓이 없었다. 물론 셋도 그때는 진실처럼 보여도 아닐 때도 있었으리라는 걸 이해한다.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제 의견을 확고하게 말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느꼈다. 통념을 벗어난 이야기도 본인만의 체계와 논리로 풀어내서 납득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서에서 벗어나는 의견을 말하기에는 두려웠고, 되도록 사회나 규칙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이유를 고찰하며 따지기보단 느낌이나 당시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냥 그러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였다. 

반면 상대는 늘 '왜'라고 물었는데 그 답을 못하는 자신이 바보 같아서 숨기고 싶어 말수를 줄였다. 아마 내가 재미없는 이유도 그 때문일까. 어떨 땐 의식하지 않고 오히려 썰렁한 개그를 쳐서 주변사람이 경악하는 모습을 즐길 때도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묘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상대를 재밌게 하려고 내가 변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왜 내가 재밌어져야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내 인생이나 존재는 상대에게 흥밋거리가 아니고,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상대를 만날 때 즐거웠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에 손끝이 따끔했다. '나를 좋아한 상대가 없었나'라는 물음이 쓸쓸하게 다가왔다. 약속을 잡고 나온 친구와 대화 중에 '나랑 만나도 재미가 없을 텐데 왜 만나러 올까' 하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자신이 없었다.

방어선을 긋듯 이 사람도 결국 나를 떠날 거라고, 내가 아니라 상황 때문에 만난 스치는 인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회피적인 행동으로 드러났고, 상대는 무심하고 무책임하다고 꾸짖듯 말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굴 때마다 귀찮다거나 독하다는 말을 들어서 스스로 선을 지키려는 행동이었다. 나는 조금만 방심해도 선을 넘으려 들었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러니 더 가까워지지 않으려 그은 선은 상대를 막는 동시에 나를 자제시키는 안전망이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상처를 받거나 조언을 받고 싶어 했다. 몇 안 되는 재주지만 재치 있는 말이 어려운 대신 대강이든 진심이든 잘 들어준다고 상대가 느낄 때가 많았다. 혹은 그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딱히 타인에게 흘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고민을 듣던 중 <모모>를 떠올렸다.

초등학생 무렵 <모모>라는 책이 유행했다. 어릴 적엔 동물 관련 서적에 미쳐있었다. <모모>는 동물 관련 서적이 아니어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노란 책 한 권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알고 보니 혈육이 빌려온 책이었다.

"빌려온 책이라 모레까지는 돌려줘야 해."

심드렁하게 펼친 첫 장에 거북이가 나왔다. 이후 이틀간 쉼 없이 읽었다. 내 생에 처음 밤을 새우며 읽은 책이었다. 모모는 말수가 적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말없이 들어주는 모모에게 위로를 받았다. 어리지만 어떤 맘인지 알 것 같았다. 모모는 조언도 비난도 응원도 하지 않았지만 곁에 있어줬다. 남몰래 모모와 나 사이에서 닮은 점을 찾았다. 모종의 유대감도 느꼈다. 끝에는 나도 모모 같은 아이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이상은 이상일뿐 내게도 입이 달려있었다. 기분이 고조되면 대부분이 그렇듯 말실수도 하고 조심성도 없어졌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어릴 적엔 느껴보지 못한 감정적 고조를 심하게 겪었다. 따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한계까지 참다가 한 번씩 터지거나 은연중에 비꼬는 말투로 흘러나왔다. 때로는 상황을 못 살피고 솔직함만 강조하다가 다툼으로 이어졌다. 역시 모모는 가상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모가 아니었고, 될 수도 없었다.


대부분이 하는 실수지만, 나는 내 말투나 실수가 무척 싫었다. 어리숙하고 서툰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약점과 치부를 드러냈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글도 읽었지만, 내게는 아직 그럴 용기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 세월이 흘러도 인정 욕구가 불쑥 튀어나왔고, 상황에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아마 그 모습들이 솔직하게 발현되지 않고 비꼬듯 나타나서 '질린다'라는 말까지 끌어낸 게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며 다시 속으로 파고들었다. 물론 이런 부분까지 상대가 질린다고 느끼는 부분이라 예상한다. 알면서도 고칠 수 없다고 완전히 체념할 수 없어 더 괴로웠다.

동시에 '고쳐야 하는 건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상대에게 위로가 되고 재밌는 사람이 되려는 이유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일 텐데, 왜 인정을 받고 싶은 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임을 그땐 몰랐다. 단순하게 내가 좋은 만큼 상대도 나를 만나 기쁘면 좋겠다는 마음을 은연중에 느낄 뿐 분명하게 인지 못했다.


가족이나 친구관계도 짝사랑처럼 이어지지 못할 수 있고, 돌려받지 못하는 진심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만약 정말 좋아한다면 돌려받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을 갖기까지 많은 성장이 필요하다는 비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불쑥 반항심이 솟았다. 상대에게 재미를 요구하는 사람이 무례한 건 아닐까. 상대가 흥밋거리도 아닌데 왜 제 입맛대로 재밌다니, 좋다니 하는 말을 해버리는 걸까. 속으로만 간직해도 될 말을 굳이 하는 사람이 말버릇을 고쳐야 하는 거 아닐까. 마음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상대에게 맞추면 귀찮다고 답하고, 맞추지 않으면 고집부린다는 소릴 들었다. 어디서나 겪는 일이지만, 아무도 답을 모르는 인류 최대 난제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두 상황에선 슬프지 않았는데 이번에 들은 '질린다'는 말만 유독 아픈 연유는 뭘까. 한참을 고민한 뒤에야 내가 그 친구를 마음에 들어 했음을, 또 마음에 들기 위해 무리해 왔음을 알았다.

진심만큼 쉽게 상처받았다. 만약 더 솔직한 성격이었다면 '그래도 난 좋은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와중에 자존심 상해서 상처받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서투르게 돌아서야 했던 사실이 가슴에 남았다. 들어주길 원한다는 건, 결국 사람들은 내가 나를 드러내질 원치 않는다는 걸까. 어른스러움이란 그런 건가. 하지만 내가 왜 어른스러워져야 하지, 그것도 남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어른스러움'은 내게 각인된 명령 같았다. 또래보다 늘 한 뼘 이상 커서 한 번도 제 나이로 보인 적 없었다. 버스 요금을 현금으로 낼 때라, 지불 후에 늘 덜 낸다고 의심하는 기사와 다퉈야 했다. 오죽하면 고3 때가 가장 기뻤다. 이제 교복을 입고 있을 때 더 높은 나이로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로도 나이보다 늘 다섯 살에서 열 살 정도는 많아 보였다. 매니저를 찾던 손님들이 알바던 내게 찾아올 정도였다. 좋게 말하면 성숙이지만, 내게는 늘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숙련도와 의젓함이 요구되었다. 그 기대를 어기고 싶지 않았고 실망하는 얼굴을 보기 싫어서 늘 기대를 짊어졌지만, 속은 늘 책임도 기대도 피하고 싶었다.


내 성향이 바뀐 탓인지 어릴 적엔 쉽게 받아들였던 말들이 이제는 반동으로 찾아왔다. 그때는 '참는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맞춰왔는데, 지금은 '참아왔다'라고 여기게 된 이유가 뭘까. 그건 내게도 의지와 취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시행착오 끝에 내가 동경하던 셋과 비슷해졌다. 특히 퇴사 후 혈육과 단 둘이 지내거나 텃밭 생활을 하면서 싫은 건 싫다고 말하게 됐다. 그걸 드러내는 방식이 미숙한 탓인지 나는 말을 할수록 상대와 멀어졌다. 

여러 책이나 강의에서 본래 인생의 반은 거절당할 용기라고 했다. 모두에게 이쁨 받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만약 맛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거짓말하면 상대도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해서 그것만 주려고 들 거고, 나도 계속 싫은 음식을 먹으며 거짓말을 해야 한다. 서로 상대에게 '좋기 위해' 노력한 게 '안 좋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건 둘 모두에게 불행이라고 했다. 그게 옳은 삶이라 들었지만, 내게는 그 방식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 너무 아프고 안 맞아서 잘못되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더 참아야 하는 사람인데 조절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건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러다 운전면허학원 일이 떠올랐다. 아직 길을 외우긴커녕 엑셀과 브레이크 밟을 타이밍도 모를 때였다.

언제 나아가고 멈춰야 할지 결정하는 게 어려워서 발을 동동 굴리듯 두 페달 사이를 왔다 갔다 거렸다. 그걸 알아챈 강사가 "운전을 하려면 빠르게 결정하고 나아가야 한다"라고 호되게 말했다. 그 말이 '호되게' 들린 이유는 나는 본래 '빠르게'와 '결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남이 가르쳐준 대로, 기대한 대로 따르는 건 쉬운데, 워낙 그런 삶을 살아오다 보니 정작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는 '이래도 되나?'라고 주저했다. 물건 하나를 구매할 때도 귀찮을 정도로 가격과 성분을 모두 비교했다. 장보기에 따라온 친구가 지쳐서 "아직이야?"하고 물을 정도로 집요했다. 지금까지 그 이면을 알아보려 한 적 없는데, 결국 '실수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강했음을 알게 됐다. 유독 실수가 두려웠다.


어느 순간부터 결정을 내리기 전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상대가 내려준 결정은  내 선택보다 맞아 보였다. 상대에게 선택에 대해 물을 수록 결정권을 넘긴다는 사실을 몰랐다. 되려 그게 배려인 줄 알았다. 선택을 짊어져야 하는 상대가 결국 그만 기대라고 할 때가 되어서야 깨달을 정도로 느리고 둔했다.

이렇게 점점 가라앉다가도 문득 '네가 알아서 해'라면서도 '나였으면 그렇게 안 했어'라든가, '왜 그랬어?'하고 추궁하듯 물으며 잔소리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정말 내가 선택을 잘 못하는 인간인가?'라는 의심이 시작되었고, 상대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우유부단함은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판단했다. 그래도 남 탓만 할 수도 없었다. 주변에서 잔소리를 하고 혼내도 제 길을 걷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아직 마음이 약하고 상대에게 기대고 싶어 했다.


반면 기대지 않으려고 독학하고 홀로 요리며 집안일까지 어릴 적부터 마스터해 온 이력을 생각하면 이상했다. 물론 그마저도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눈치를 봐온 탓이지만, 반대로 엄마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기도 했다. 뭐든 내가 하지 않으면 남이 내 일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모두 내 힘으로 하려 들었다. 아무리 미숙하고 부족해도 그것까지 떠안는 게 내 몫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주변에서는 '심지가 곧고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보아온 나는 답답할 정도로 불안이 높았다. 실수를 하고, 그에 대한 잔소리나 화를 듣는 순간이 너무 두려웠다. 상대 얼굴을 보면 사실과 관계없이 "죄송해요"라고 곧바로 굽히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스스로가 비굴하다고 느낀 순간도 수없이 많았지만, 그마저도 상대를 보면 수그러들었다. 나를 향한 분노가 아닐 때도 까무러지게 놀라거나 긴장했다. 다만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와 관계없을 경우에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두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역시 인정받고 싶은 사람에게 내쳐지고 싶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미움받을 용기는 타인이 아닌 가장 가까운 사이에 필요했다.

아무튼 나는 나와 있어 줄 사람을 필요로 했고, 높은 확률로 따르고 싶었던 인간이었을 거다. 나만이 아니라 상대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A의 말이 떠올랐다. "본래 배울 점 있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난 너랑 안 만날 거야."


나는 방향치에 우유부단하다. 아직도 어디에서 서고 나아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결연하게 "이걸 해야겠어"라고 끊어내지 못하겠고, "이게 맞아"라고 답하기 어렵다. 지금 이어가는 텃밭 생활도 "지금 이 일을 하는 게 맞아"라고 스스로에게 답을 못하겠다. 나아가려면 멈추고, 멈추면 나아가고를 반복하며 계속 길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타이밍을 영 못 맞췄다. 차라리 벗어나면 다행이지 한 곳에 고여서 홀로 남아버렸다는 쓸쓸한 불안이 드리웠다. 이미 운전석에 올랐는데 나는 목적지도 방향도 몰랐다. 이 자동차가 내 것이 맞나라는 의문도 들었다. 차내에는 수많은 내비게이션 목소리가 울렸다. 100m 앞에서 우회전을 하라더니, 좌회전을 하라는 말도 들렸다. 어떤 내비게이션은 경로를 이탈했다고 귀찮을 정도로 울어댔다.

"가려면 엑셀, 멈추려면 브레이크! 빨리 결정을 해야지, 왔다 갔다 하면 안 돼." 운전면허 강사가 소리쳤다.

이후로도 강사는 "네가 하려고 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고 했다. '듣지 않는 게 아니라 서툴러서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거고, 시험은 혼자 치르는 건데 당신 말만 들으면 어떻게 성장하나, 대신 시험 쳐줄 것도 아니면서'라고 소심하게 속으로 반박했다.

그럴수록 강사는 심하게 꾸짖었고, 압박을 느낀 나머지 핸들을 잘못 돌려 방지턱에 부딪힐 뻔했다. 강사는 시키는 말도 제대로 못 듣냐며 얼굴을 굳혔다. 옳은 말이지만 기분이 상했다. '당신이 압박해서 그렇잖아? 나는 고집이 아니라 서툰 것뿐인데 제멋대로 고집부린다고 단정하는 당신이 고집불통 아니야? 말 들으라고 고집부리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제 고집 하나 없으면 어떻게 장애물을 헤쳐가?'라고 홧김에 쏟아붓고 싶었다. 강사 말을 유심히 듣던 처음과 다르게 돌아가는 내내 강사 말을 모두 무시했다. 그러자 신기하게 장내시험을 치를 때처럼 마음이 고요해졌다. 정신이 차분해지니 운전도 부드러워졌다. 뒤에서 계속 말하는 강사를 무시하며 학원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에는 새로운 강사와 만났다. 진실을 말하면서도 상대를 압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이고 깜빡하면 안 되지, 깜빡할 때마다 깜빡 깜빡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맘이 편해져서 이전 강사가 압박해서 힘들었다고 어리광을 부렸다. 다행히 상대가 웃으며 "운전대는 본인이 잡는 건데 뭘 무서워해. 그냥 '시끄러워서 운전을 못하겠네'라고 하지" 하고 호쾌하게 답했다.

"그래도 본인 잘 되라고 했던 소리라고 그냥 넘겨버려." 


지금도 사람을 대할 때 어느 방식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노력할 땐 오히려 상대가 질려서 떠나고, 내가 노력하지 않을 땐 상대가 나를 맘에 들어하기도 한다. 내게 너무 진지하다거나 지루하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셋이 내린 평가와 달리 내 행동으로 사람들이 즐거워한 적도 있었다.

학생 때 별생각 없이 쓴 글을 발표하면 다들 웃었다. 웃기려고 한 건 아니고 오히려 진지했다. 초등학생 때 집에 아빠가 오면 내게 인사도 하기 전에 폴한테 밥 줬냐고 가장 먼저 물어본다, 다음에 돌아온 엄마도 인사로 '폴 밥 줬어?'라고 물었다, 온 가족이 내게 폴 소식을 묻는다, 했더니 다들 웃었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는 결혼관을 써라고 해서 나는 60이 되어 결혼할 거라 썼다. 인생은 긴데 한 사람과 잘 지낼 자신도 없고, 나이가 든 후에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혼기나 사회적 관념 때문이 아닌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진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도 '태어나길 잘했다'라고 여길 수 있게 해 줄 자신도 없고, 만약 키우고 싶으면 입양도 가능하다,라고 적었다. 이때 발표는 선생님 입으로 읽혔는데, 다들 첫 문장부터 웃었다. 익명이었지만 옆친구가 슬쩍 “네가 썼지?”라고 물었고 학급친구들도 눈치챈 듯 이쪽을 봤다.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었지만 다들 아는 눈치였다. 이게 그렇게 특이한가 싶은데, 학급에선 좀 신기한 아이로 통했다. 

그때도 상대 눈치를 보며 행동하지 않았다. 부러 복잡하게 생각한 적 없는데,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로 내게 앉은키가 높으니 숙이라던가 말 좀 들으라는 사람이 많아졌다. 많아졌다고 느낀 건 내가 그 말을 듣기 시작해서였다. 혹은 같은 학급에서 공부만 해도 별말 없던 시절과 달리 부딪히고 맞춰야 할 상황이 많아져서 의식하게 된 탓이었다. 

무튼 나는 어리숙하니까 말을 들어야지 하면서도 불쑥 “어째서”라는 물음이 솟았다. 이게 내 고집인 듯하다. 오히려 내게 말을 들어라는 사람이 제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 어리광이 아닌가. 사람은 모두 제 입맛에 딱 맞아떨어질 수 없고 고쳐 쓰는 게 아니라면서도, ‘고치려 드는’ 행동 아닌가. 지금도 여러 사람의 입맛과 말에 맞춰 행동하려다 이도저도 못하고 고장 나버렸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격이었다.

나는 내 방식이 있고, 틀려도 그 삶을 견뎌볼 기회와 자격이 있다.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은 충고하고 싶겠지만, 누구 말 따라 나와 그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상황이다. 가보지 않고 천리를 내다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열기에 취해 멋대로 가버리는 미련한 인간도 자연계에선 필요하다. 혹시 알까 내가 무모한 콜럼버스였을지. 과거에도 눈치에 시달리기보다 멋대로 살 때 사람들이 웃어줬던 것처럼. 결국 상대 방식에 맞추려고 억지를 쓰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게 나였다. 그리고 상대에게 맞춰 변모한 뒤에 상대가 떠나면 나는 뭐가 되느냐는 물음도 남는다. 나는 나를 위해서건 본인을 위해서건 의도와 상관없이 제 말을 들으라는 사람의 말대로 맞춰서 변했는데, 그 사람이 없어지면? 나는 또 명령에 따라 변해야만 하나? 그럼 나는 늘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고 그 무게가 어려운 사람은 또 떠날 테고 그 반복을 어리석게 겪어야 하나.

그럼 제멋대로 고집인지 아집인지 맞는지 결국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모두 결과론적 사회적 성공과 실패로 성과가 나온 뒤에야 고집이다, 맞았다로 상대가 평가한 것뿐이다. 결국 그전에는 아무도 진실을 모른다는 뜻이다.

실패해도 어떤가, 풍차와 싸우는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면 또 어떤가, 모든 사람이 제 눈에 안경으로 사는 건데. 머릿속이 꽃밭이면 또 어떤가, 머리가 지옥도인 것보단 나을 텐데. 오히려 단정적으로 강하게 말하는 투가 진실처럼 보여도 나중에는 거짓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니 모를 땐 모르는 게 답이었다.

나는 고장 난 나침반보다 성능이 나빠서 물건조차 심오한 책을 들여다보듯 결정하지만, 결국 이 방식도 나를 끌어온 힘 중에 하나였다. 그렇다면 좀 고장 난 채로 지내봐도 되지 않을까, 결국 뭐가 옳은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작가의 이전글 배추에 서리가 내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