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필요한 것만 남기는 과정
나는 청소를 잘 못한다.
집에 오면 눕는 걸 좋아하고, 산만하기 때문이다.
뭐부터 해야할지 늘 막막하다. 쌓인 설거지와 의자에 걸쳐진 옷무덤이 신경 쓰여 치우다 보면
오늘치 영양제를 먹어야할 것 같고, 물을 마시며 스마트폰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누워버린다.
그렇게 방은 난장판이 되어갔고, 나는 더 무기력 해졌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정리수납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정리하기 전 모습. 좁은 주방이 어지럽다.
내 머리 속을 보는 것 같았다.
먼저 주방 상부장을 열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다 꺼내서 분류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 물건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 꺼내고 보니 똑같은 것들도 발견되기도 하고, 잃어버린 물건들도 나오고, 유통기한 지난 것들도 많았다.
버릴 것은 버리고, 비슷한 것들끼리 모았다. 그리고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놓고 까먹고 또 산 것들이나, 언젠가 쓸 줄 알고 샀다가 유통기한 지난 각종 양념들을 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양념은 양념끼리, 건조식품은 건조 식품끼리, 그릇끼리 모았다. 자주 쓰는 것은 손에 잘 닿는 곳에 사용빈도가 낮은 것은 높은 곳으로 옮기고 분류별로 라벨링도 붙여주었다. 그렇게 정리된 주방
여전히 좁고 작은 주방이지만,그래도 훨씬 깔끔해졌다.
주방 외에도 다른 부분도 다 꺼내어 보고 2년 반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 언젠가 쓰려고 모아둔 에코백이나 종이백, 쓰다남은 노트, 잘 안 보는 책과 옷도 정리했다.
정리하다 보니 많은 약이 나왔는데 약도 바르는약, 먹는약으로 구분하고, 외출 전 자주 쓰는 마스크도 따로 보관해두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정리하고 나니 조금 더 넓은 공간이 생겼고, 거기서 나는 조금 더 집중해서 뭐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버리고 버리면서 또 느낀 것은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겼을 때 내가 우리집에 두고 싶은 것은 뭘까? 생각했는데
일단 첫 번째는 식물이었고, 두 번째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좋은 공간에 좋은 정신이 깃든다는 것은 알지만 집안일은 언제나 귀찮다.
그래도 나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살고 싶다.
광고로 도배된 거리나 정신없는 인스타 피드를 보면서 요즘은 뭘 더 하는 것보다 뭘 덜 하고, 안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불필요한 관계나 애매하게 못 버리는 물건들에서 벗어나서 나한테 조금 더 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