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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Sep 15. 2024

여자농구 동아리의 활성화와 주장의 역할

고려대학교 KUTIME 김예진

고려대학교 KUTIME은 2020년에 만들어져 2022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중앙 여자농구동아리이다. 2024년 KUSF 클럽챔피언십 전국예선에서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기까지, 그 토대를 만들어준 1대 주장 김예진 선수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0학번 김예진입니다. 고려대학교 중앙 여자농구동아리 쿠타임 1대 주장을 맡았습니다. 등번호는 41번이에요!


♧ 등번호 결정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 생일이 10월 4일이라 더해서 14로 하고 싶었는데 당시에 한 멤버가 14번을 먼저 말해서 양보해서 41번이 됐습니다.


♣ 예진 님의 농구 구력과 포지션을 알려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팀 농구를 시작했고 포지션은 4번 파워포워드 주로 맡고 있습니다.


♧ 파워 포워드만 하시는 건가요? 가드를 해보신 적은 없으신 건가요?

처음엔 주로 가드를 했는데 팀 내에 가드가 많다 보니 포워드로 전향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제가 몸이 느린 편이라 몸빵하고 리바하는 포워드가 더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고려대 KUTIME의 등장


♣ 고려대는 2019년까지 중앙 여자농구동아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동아리를 만들고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주장인 예진님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들었는데요. 그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보통 농구 동아리에서 여자는 매니저로만 뽑는데, 2020년 3월 서우회라는 농구부에서 여자 선수를 뽑았습니다. 거기서 2개월 정도 활동을 하다가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잠정 중단을 했습니다. 교내 그물도 다 없애면서 농구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졌거든요.

그게 한 학기가 되고 1년이 되면서 선배들은 다 졸업을 하고, 점점 다른 부원들도 새로운 동아리를 찾아 떠나게 됐습니다. 하늘 언니가 가끔 같이 농구하자고 연락이 왔지만, 저도 당시에는 사정상 다른 동아리에 더 열중하고 있어서 동아리를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았고요. 그러다 2년 후인 2022년, 3학년이 되면서 여유가 생기게 됐고, 1대 부주장을 맡은 예원이가 같이 농구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때부터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서 혼자라면 엄두가 나지 않았겠지만 함께 하자는 사람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바로 신입 부원 모집 포스터를 만든 다음 팀원들과 함께 체계를 잡아 나갔고, 1년 정도가 지나서야 제대로 된 농구 동아리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여자농구부를 활성화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해결하셨나요?

가장 어려웠던 점 대관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운동 장소가 없었어요. 특히 장소의 접근성이 좋아야 부원들도 자주 올 수 있는데, 초반부터 경기도권으로 간신히 잡아야 했고 대관비도 엄청 비쌌어요. 첫 대회 준비를 위해서 대관을 간신히 했는데 장소가 너무 멀어서 못 오겠다는 친구들이 많았을 때 가장 힘이 빠졌습니다.

최대한 빨리 접근성이 좋고 대관비가 저렴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모이고 난 이후부터는 장소를 구하는 것에 제일 초점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 대관은 보통 어떻게 하셨나요?

크게 3개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대관료가 없는 교내 체육 시설을 대관했습니다. 교수님들이나 학교 내 선수들이 쓰는 시간을 살피고 이와 겹치지 않게 정기 운동 날짜와 시간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지역 관내 체육센터를 찾아봤습니다. 쿠타임의 경우에는 성북구민체육관을 대관했는데, 성북구민이 많을 경우 선대관을 할 수 있도록 혜택을 주더라고요. 그런 요소들을 꼼꼼히 살펴서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서울시교육청 학교시설사용 예약시스템을 확인했어요. 다만 이곳은 완전히 디지털화되어 있지는 않아서 일일이 전화로 물어봐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최대한 가능한 곳에 정기대관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운영진들이 대관 때문에 너무 많은 자원을 할당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음, 사실 그 이후로도 어마어마하게 할당하긴 했어요ㅎㅎ


♧ 아무래도 혼자서는 이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힘드셨을 것 같은데, 초창기 멤버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정신적인 동반자로서는 당시 부주장은 맡은 예원이요. 같이 팀을 꾸리면서 고충을 털어낼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 게 좋았어요. 제가 학생회에서 행정 처리를 많이 하다 보니 그런 부분들을 많이 맡았다면 예원이는 운동 진행이나 부원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아줬어요.

그리고 초반에는 농구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는데 하늘 언니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도와줘서 고마웠습니다. 이후에 하늘 언니의 소개로 체육교육과인 유리 언니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준비운동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제대로 된 훈련이라는 것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또 하늘 언니와 유리 언니와 같은 동호회인 민재 언니를 소개받게 되었는데 정말 고마운 언니예요. 처음에는 타인에 가까운 관계였는데 처음부터 마치 스스로의 일인 것처럼 쿠타임의 모든 업무를 도와줬어요. 책임감이 엄청 강한 이 언니가 저희의 첫 번째 코치가 된 거죠. 그렇게 점점 사람과 사람이 이어져서 이 집단에 공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렇게 서로를 도와주며 잘 굴러가는 집단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쿠타임 초대 운영진


♣ 그렇다면 본래 서우회 소속이었던 건가요? 왜 KUTIME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나요?

이름을 바꾸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중앙동아리 등록을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서우회와 관련 있는 사람이 저, 예원이, 하늘 언니 정도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굳이 시초가 아예 다른 동아리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여자팀’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이름을 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 제가 ‘쿠타임’이라는 이름을 제안했습니다.

그 당시 티맥 타임이라는 단어를 들었는데 그게 경기 후반에 13초 만에 4개의 3점을 넣어서 경기를 뒤집었다는 뜻이거든요. 우리도 앞으로는 고려대만의 시간을 딱 만들자는 생각에 제안하게 되었고 득표 수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때 상당히 팀 후보 이름이 많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쿠팡, 고려대 팡파르를 울려라. 그리고 농민, 농구의 민족입니다. 어흥이 농구단 그런 것도 있었어요.


♧ 운동 동아리는 그 특성상 성적과 즐거움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저희의 첫 대회는 쿠스프였는데 엔트리를 12명까지만 적을 수 있었어요. 당시 팀이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풀코트 플레이에서 득점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득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출석률이 낮은 경우도 있어 엔트리 선발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대회에서는 성적을 내는 것이 되게 중요하기 때문에 득점력 있는 선수를 뽑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자니 열심히 출석해 준 사람들이 실력 부족으로 대회를 나가지 못해 연습에도 의욕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대회에 나갈 사람들을 어떻게 선발할지에 대한 사전 논의가 부족했던 것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엔트리 선발 기간이 왔을 때 사전에 운영진 간에 합의된 가치가 없어서 의견 차이가 생겼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제 출석률을 우선시하자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사실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조율되지 않아서 대회 전날에 전화를 걸어서 양해해 줄 수 있냐, 부탁도 했었어요. 그때 팀 방향성 설정을 빠르게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적 상관없이 즐길 것인가, 아니면 성적을 우선시할까, 그런 것들이요.



3대 3 대회를 나갈 때도 엔트리를 짜는 것이 고민이었어요. 성적을 위해서라면 잘하는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들끼리 팀을 짜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못하는 사람들은 나갈 용기도 없을 것이고, 누군가가 끌어줘서 남은 좋은 기억은 본인이 다른 사람을 끌어줄 원동력이 될 텐데 그런 것이 없이 팀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에는 사다리를 탈지, 아니면 그냥 무작위로 돌릴지, 그냥 각자 구성할지에 대한 논의가 오갔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결국 팀의 선발 기준을 운영진이 정하는 대회와, 팀별 제한 없이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대회로 나눠 기준을 합의했습니다.

고려대학교 대표로나 팀 대표로 나가는 대회는 운영진이 짜주는 기준대로 선발하고, 그 외에 팀별 출전 팀 제한이 없이 구성할 수 있는 경우는 그냥 사적으로 이제 팀을 구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잘하는 사람만이 즐거운 그런 팀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농구를 즐길 수 있는 팀을 만들 수 있지 않을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결국 성적과 즐거움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팀 운영의 핵심인 것 같아요.


*KUSF 클럽챔피언십.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에서 주최하는 대회로, 아마추어 대학 동아리 대회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전문적이다. 1~3회의 전국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가을에 열리는 파이널 대회에 진출할 수 있다.


♣ 지금의 쿠타임은 빡농과 즐농 중 어떤 것을 지향할까요?

즐농이 선행되어야 빡농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학생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 농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농구를 할 때 즐거워야지 대회에서 성취감을 원하는 사람들끼리 빡세게 농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테이핑을 받고 있는 김예진 선수


♧ 현재 쿠타임 팀 훈련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하시나요? 보통 어떤 식으로 연습을 진행하시나요?

저희는 주 2회, 목요일과 토요일에 정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8월까지는 목요일에 이사빈 코치님이 오셨고 토요일에는 주로 코치님이 진행해 주신 훈련을 서민재 부 코치님이 와서 같이 복습하는 식으로 진행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 교류전의 경우에는 운영진이 타 팀과 합의해서 월에 두세 번 정도 잡는 것 같아요. 그리고 쿠스프와 같은 큰 대회가 있을 때는 추가로 연습 시간을 잡기도 합니다. 일례로 이번 쿠스프 준비를 위해서 목요일 정기 운동 시간 전 2시간을 추가로 대관해 연습을 진행했어요.


♣ 예진님은 대회에서 많은 출전시간을 확보하시는 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한창 쿠타임을 부흥시킬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 과정에서 어떠한 괴리감을 느끼지는 않으셨나요?

저의 성격일 수도 있는데, 저는 제가 잘 되는 것보다 제가 속한 단체가 잘될 때 더 기쁜 편이에요. 지금 당장 대회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한다고 해도 제가 평생 농구를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또, 꼭 코트 위에서 뛰는 순간만이 제가 농구를 하는 순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팀이 승리해서 올라가야 그다음 경기가 있고, 또 그때의 성장이 있지 않나 생각하기 때문에 출전 시간이 없는 것에 대해 크게 슬퍼하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아쉽긴 합니다. 출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연습해야 된다고 생각하긴 해요.



♧ 주장직에서 내려온 지금, 스스로가 팀에서 하는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3대 주장까지 있습니다. 이 친구들도 학생이니까 자기들의 일상이 있을 수 있잖아요. 저는 뒷방 늙은이지만 꾸준히 나오면서 주장이나 운영진 친구들이 없을 때 대신 주장의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힘들거나 막막한 점이 있을 때 조언을 해주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2대 주장인 태경이는 워낙 담담한 스타일이라 힘든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조금 섭섭하네요ㅎㅎ


♣ 지금 이 자리를 빌려서 2대 주장 한태경 님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무리 소속감이 있다고 해도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기 시간을 써서 한 단체를 이끌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되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장을 제의했을 때, 마치 주장을 하기 위해 태어난 듯이 잘 승낙해 주고 또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준 게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쿠타임은 점점 성장하여 이번 쿠스프 예선전에서 준우승을 거뒀는데요.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실력 있는 친구들, 열정 있는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기존에 있던 친구들도 대회에 더 진심이 되면서 연습량도 늘려가는 걸 보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렇게 결승까지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여자농구가 워낙 강한 팀들이 항상 상위권을 차지해 왔기도 하고 저희는 신생팀이다 보니 결승 무대까지 가기에는 꽤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졸업하기 전까지 가능할까, 그런 고민도 했었죠. 사실 그래서 올해까지는 농구 좀 많이 나갈걸, 그런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정말 너무 뿌듯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영상을 봤는데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제가 낳은 딸이 고려대에 간 느낌이었어요.


♣ 여자농구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대학에서 다양한 여자농구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운영의 어려움을 겪는 팀들도 많은데요. 동아리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국의 주장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앞에서 대관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다음으로 중요한 게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느냐인 것 같습니다.

학생 선수가 아닌 이상 일반 4년제 대학의 학생끼리 농구를 가르쳐봤자 크게 실력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농구할 때 즐겁기 위해서는 그 순간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성장할 때의 즐거움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배움의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코치가 필요합니다.

막 팀을 꾸려갈 당시 민재 언니가 정말 잘 지도해 줬지만,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크몽 같은 사이트에서 유료 강사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WKBL에도 연락을 해봤습니다. 제가 아는 게 잘 없다 보니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조금 꺼려졌지만, 여자 농구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었고 덕분에 이사빈 코치님과 강덕이 코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게 학교 농구 교양 강사님이 될 수도 있고, 학내 농구팀 코치님, 또는 여자 농구 협회와 같은 단체가 될 수도 있어요. 우리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팀이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에 외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WKBL이 초창기에 지원을 많이 해주었는데, 그 과정을 들을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WKBL에서 주최하는 3대 3 대회와 관련해서 여자 농구 대학 동아리 주장들과의 단체 미팅을 가졌어요. 그때 처음 담당자분을 알게 됐고 그 이후 따로 밥을 한 번 사주시면서 동아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면서 농구 양말이나 농구공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연세대학교 Miss-B나 이화여자대학교 EFS의 경우에도 은퇴 여자 농구 선수분들이 단기간에 걸쳐서 코칭을 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한 번 연락을 드렸습니다.

사실 저희가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팀도 아니고 아직 아무것도 없는 신생팀이다 보니 지원을 해줄까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그래서 좀 많이 주저했었는데 당시 코칭을 해준 민재언니가 도와줘서 기획안과 제안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다행히 적극적으로 답해주셔서 주 1회 강덕이 코치님이 처음 쿠타임을 가르치러 오셨어요.

저희끼리 했을 때는 체계성도 조금 부족하고, 누군가가 훈련을 진행하면 그 사람은 결국 자기 연습을 하지 못한다는 고충이 있었는데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어 좋았습니다.


♣ WKBL 이사빈 코치님과 함께 하게 된 과정을 알려주세요!

제안서를 제출한 이후에는 협회에 등록되신 강사분들 중 파견 가능한 분을 알아보고 있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때 오신 분이 강덕이 코치님이셨어요. 덕이 코치님과 연습도 하고 대회도 나가던 중에, 덕이 코치님께서 다른 학교에 체육 교사로 부임하게 되셨고 아쉽게 저희와는 작별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WKBL에서 새로운 코치님을 파견해 주셨는데 그게 이사빈 코치님이셨습니다. 당시 저희의 요청에 선뜻 너무 좋다고 이야기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추가로 운동시간을 잡았을 때도 시간이 되실 때마다 와주시고 대회 때마다 벤치를 봐주셔서 정말 너무 든든했어요.

사빈 코치님이 훈련을 맡아주신 순간부터 실력이 확확 늘었던 것 같습니다. 또, 팀원들이 저희끼리 할 때보다 사빈 코치님이 플레이를 알려주셨을 때 더 즐거워하더라고요. ‘코치님이 오시는 날은 무조건 와야 해.’ 그런 생각도 가지면서 팀 내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습니다.

사빈 코치님도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훈련을 도와주러 와주셔서 이번 쿠스프 준우승까지 이뤄낸 것 같습니다.

저희의 전략이 ‘사빈 코치님이 자의로 우리와 함께하게 만들자’였는데 그게 성공한 것 같아서 기쁘네요. 아무래도 사빈 코치님도 저희에 대한 애정이 강해져서 못 빠져나오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빈 코치님은 평생 치킨집 못하겠다


♧ 잘 나오지 않는 팀원들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저희 동아리도 톡방에 있는 인원은 40명인데, 실제로 활동에 나오는 사람은 15명 정도예요. 처음에 이 사람들을 단순히 회비만 내는 사람으로 둘지, 아니면 저조한 출석률을 개선하기 위해 제명을 할지 논의가 있었어요. 초반에는 재정 상황이 어려워 일단 두기로 했지만, 운영이 점차 안정되면서 출석률을 기준으로 제적하는 규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출석률 시트에 한 줄로 적힌 간단한 규정이었는데, 점점 이런 규정들을 회칙으로 제정해서 팀 규칙을 체계화했습니다.


♣ 팀운영에 있어서 회칙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그냥 회칙은 형식적인 거예요.

이건 비운영진보다는 운영진에게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운영진들이 팀 운영을 자의적으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지책이거든요. 운영진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 회비는 어떻게 바꿀 것이고 엔트리 선발은 어떻게 할 것인지 자의적으로 정하지 않고 우리 팀이 합의한 가치를 기반으로 확정된 회칙을 따르게 하니까 팀 운영의 일관성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예진님이 생각하는 ‘농구동아리 주장의 덕목’이란 무엇일까요?

이 단체의 사람들이 농구를 좋아하고 포기하지 않게 해줘야 하기 때문에 끈기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는 실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저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노력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실력이 좋아지고 싶어서 노력하게 만드는 것도 조직이 해야만 하는 것이고요.

모든 사람들이 끝까지 함께 한 경기에서 뛸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예진이라는 농구인에 대해

어묵을 먹고 있는 주장 김예진

♣ 예진님은 농구를 얼마나 좋아하시나요? 1에서 10까지 생각하면?

농구는 애증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7인데 농구 때문에 슬픈 건 4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농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투자한 시간만큼 느는 게 아닌 것 같아서요. ‘왜 나는 아직 여기에 있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건 사실 꾸준히 연습을 안 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연습하는 방식이 틀린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공부는 하는 만큼 느는 게 딱 보이는데 농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나랑 출발선이 달라서 너무 잘하는 친구도 있고, 나랑 같이 출발했는데 어느새 나보다 너무 잘하는 친구도 있으니까 속상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좋아하지만, 가끔은 정말 슬픕니다.


♧ 농구가 자신의 인생에서 몇 퍼센트 정도 차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대학 4년으로 봤을 때는 비중이 좀 적은데, 대학 후반부로 보면 70~80%는 되는 것 같아요. 학내 단체에서 활동했을 때도 제가 투자한 시간은 많았지만, 그 활동이 끝나면 보지 않는 사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농구는 제가 지금은 자주 나가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혼자 농구를 하다 보면 어느새 같이 농구를 하고 싶어 져서 또 자연스럽게 돌아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생각해요. 사실 농구 동아리가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 농구를 하면서 가장 강렬한 감정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후회의 감정도 좋고, 행복의 감정도 좋습니다.

보통 농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렬한 감정을 느낄 때는 골을 넣을 때가 아닐까요? 가장 강렬했던 건 인천 서구 대회에서 처음으로 골을 넣었을 때입니다. 첫 득점이라 좋았던 것도 있는데 그 득점에 저보다 기뻐해 주는 팀원들의 반응이 되게 강렬했어요. 특히 그때 감독을 봐줬던 민재 언니가 그렇게 포효하는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뭔가 제 득점에 이렇게 기뻐해 줄 팀원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 누가 그 골의 어시를 해줬나요?(^^)

하늘 언니가요^^


♣ 예진님이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가 있을까요?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플레이도 좋습니다.

저는 패스 플레이를 좋아해요. 제가 첫 패스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제가 첫 패스를 받은 이후 다른 사람에게 준 패스가 바로 득점으로 이어졌을 때 ‘내 판단이 옳았구나’, 그리고 ‘나와 팀원의 합이 잘 맞았구나’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가장 쾌감이 느껴집니다.



♧ 농구를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의 자신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변한 점은 무엇인가요?

어렵네요. 뭔가 많이 변했는데 하나를 꼽자면 포기하지 않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평소에 체력 운동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좀 힘들면 쉬어가자’가 기본적인 마인드였거든요. 그런데 농구는 뛸 때 포기하면 안 되는 운동이잖아요? 내가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다 보니 1분을 더 뛰거나 한 쿼터를 더 뛰어야 하는데 그게 결국 제 성장이 되는 것 같아요. 성장이 된다는 걸 아니까 더더욱 포기할 수 없어지고요. 그런 마인드의 변화? 사실 그렇다고 포기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다른 저 혼자 하는 운동보다는 좀 더 그런 습관들이 생긴 것 같아요.


♣ 만약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스포츠 중 무엇을 선택했을 것 같나요?

없습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예진님에게 있어 ‘농구’란 무엇일까요?

자식이자 친구가 아닐까요? 농구를 하면서 멋진 친구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농구라는 하나의 요소를 가지고 여러 역할을 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쌓기도 했어요. 덕분에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성장도 많이 한 것 같아서 저에게 있어 농구는 다차원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김예진 선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쿠타임이 걸어온 길과 그녀의 헌신을 엿볼 수 있었다. 1대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누구보다 팀의 성장을 위해 애써온 그녀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쿠타임이 더 큰 성과를 이루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후에도 계속될 김예진 선수의 농구 인생을 응원하며, 쿠타임의 미래 역시 기대해 본다.


쿠타임 인스타그램 : @ku__time



소소한 질문 타임!

♣ 전국대회 우승 1회 vs 전국대회 준우승 5회

전국대회 준우승 5회. 우승이 운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 만약 팀이 갑자기 모든 포지션을 바꿔서 게임을 해야 한다면, 가드 vs 센터

가드. 센터는 잘할 자신이 없습니다. 가드는 그래도 3명 중에 2등은 할 것 같아요.


♧ 나 없었으면 지금의 쿠타임? 없었다 (O vs X)

O. 언젠가 지금의 쿠타임이 만들어졌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쿠타임은 절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단체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당시 가지고 있던 여러 역량과 잘 결합되어 이렇게 동아리를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 쿠타임 내에서 내가 1대 1 무조건 이긴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유는?  

조민서


♣ 농구 덩크 가능(대회 당 1회) vs 농구 대회 MVP 입상

MVP. 덩크에 대한 환상이 없습니다.


♧ 쉬운 패스를 받다가 실수하는 게 더 부끄럽다 vs 드리블하다가 넘어지는 게 더 부끄럽다

전자. 넘어지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쉬운 패스를 놓치는 건 안 돼요.


♣ 여자 농구 리그에서 감독이 된다면, 수비 우선 전략 vs 공격 우선 전략?

공격 우선 전략.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고 생각합니다.


♧ 갑자기 마법처럼 농구 실력이 10배로 늘어난다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기술이나 플레이는 무엇인가요?

페이크 한 번 주고 돌파한 후에 유로 스텝 후 레이업. 하늘언니한테 배운 거라서, 이 기술을 해낼 수 있다면 하늘언니한테 쓰고 싶네요.


♣ 서민재 부코치님 10시간 vs 이사빈 코치님 1시간 누구에게 코칭받고 싶은지?

무조건 사빈 코치님. 30분이어도 사빈 코치님이요.


♧ 3대 주장 박지원 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잘하자. 무게감 있는 주장이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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