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MC는 누가 뭐래도 유재석입니다. 유재석·강호동·신동엽이 트로이카 시대를 연 때도 있었지만, 현재 몸값이나 프로그램 흥행성 측면에서 유재석이 한 수 위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국내 방송계는 1980년대 주병진·허참, 1990년대 이경규·김국진, 2000년대 유재석·강호동·신동엽·김용만 등이 시대별 최고 MC 자리를 꿰찼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유재석이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러닝맨 등 주말 예능을 휩쓸며 원톱 체제를 구축하고 장기집권하고 있습니다.
이 체제는 오랜 기간 이어질 것입니다. 2차 베이비부머들과 함께 성장한 유재석은 현재 중·고등학생까지 팬층이 두껍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신사적인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튀지 않는 진행 스타일로 한국 방송가의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0~2000년대 경제성장과 사회 변화에 따라 방송가 트렌드도 빠르기 바뀌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 안정기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는 아카시야 산마, 마쓰모토 히토시&하마다 마사토시 듀오, 오카무라 다카시 등이 지난 20~30년간 일본 방송가 MC 자리를 꽉 잡고 변화하지 않는 것과도 비슷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 시스템, 경영의 관행, 브랜드 이미지 등은 구축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자리 잡으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대중의 스탠더드로 자리 잡기 위해 많은 역량을 쏟아붓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지위는 공고해집니다. 신규 진입자는 대중이 바라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 판을 뒤집지 않는 이상 이 판을 흔들기 쉽지 않습니다.
2017년 5월 미국의 재테크 전문지 키플링어가 증시 조정기에 꼭 사야 할 주식 7개 중 하나로 맥도날드를 꼽아 의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맥도날드의 메인 비즈니스는 부동산입니다. 맥도날드 매장을 입지 좋은 곳에 입주시켜 매출을 끌어올린 뒤 이를 개인사업자에게 매각하는 구조입니다. 한국에서 전문적으로 권리금 장사를 하는 요식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쉑쉑버거 같은 라이징스타 햄버거 브랜드가 치나올 때라 맥도날드는 경영적 어려움에 빠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키플링어의 분석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키플링어의 분석은 이랬습니다.
맥도날드는 120달러 밑으로 오면 집을 저당잡아서라도 사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 뒤처져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메뉴 다변화를 통해 시대 변화에 적응했다. 맥모닝을 종일 판매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회사는 시대의 흐름을 잘만 쫓아가도 금세 회복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이었죠.
얼마 전 맥도날드의 주가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당 200달러까지 치솟은 것이죠. 지난 5년새 2배가량 올랐습니다.
대부분 투자자나 기업가들이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등 이른바 FAANG 기업들만 쳐다보는 사이 전통적 50년 넘는 역사의 오래된 유통 기업들이 조용히 주목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 유통 기업들은 어떻게 빠른 트렌드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요. 러닝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이키·아디다스 등 유명 스포츠 브랜드들이 만든 러닝화는 무거웠습니다. 주로 농구화·축구화를 만들던 회사이기 때문에 제품의 생산라인이나 원자재 조달도 다 튼튼하고 두껍고 충격을 잘 흡수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뉴발란스·푸마 등 세컨드 티어 스포츠 브랜드들이 2010년을 전후해 신소재를 이용해 놀랍도록 가벼운 스포츠화를 만들었습니다. 밑창은 에어가 아니었지만 달릴 때 발생하는 충격을 지속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죠.
마침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로 러닝·워킹족들이 늘어나며 뉴발란스·푸마 제품이 풀 티나듯 팔렸습니다. 한 발 뒤처진 나이키·아디다스는 자사의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와 노하우를 토대로 더 새롭고 가벼운 러닝화 제조에 나섰습니다.
시작은 한발 늦었으나 재빨리 쫓아갔죠. 결과는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나이키와 아디디스가 사실상 초경량 러닝화 시장을 장악해버렸습니다. 시장의 변화와 작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존의 지배적 사업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셈이죠.
2014년 11월 주세법 개정으로 여러 수제맥주집이 생겼지만, 데블스도어 등 대기업 계열 맥주 전문점이 시장을 휩쓸고 있습니다. 바리스타가 자기만의 블렌딩 기법으로 커피숍을 만들지만, 이를 따라 해 만든 스타벅스의 리저브 커피 서비스를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커피를 마실 때면 항상 스타벅스를 찾게 됩니다.
햄버거·스테이크·화장품 등 아이디어와 브랜드 이미지 등 한 끗 차이의 변화로 승부하는 분야에서는 독립적인 브랜드가 많이 나오지만 이는 곧 익숙한 대기업 제품으로 대체되고 맙니다.
이런 대기업 집중화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조달과 생산의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싼값에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죠.
특히나 요즘처럼 미국·중국의 무역전쟁으로 교역이 부진한 시기에는 내수 유통 기업에 대한 쏠림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경영자는 익숙함을 두려워해야 하지만, 대중은 익숙함을 선호한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