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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럼버스 Jul 06. 2019

빈 살만·손정의는 한국에서 뭘 본 걸까

일주일 시차 두고 한국 방문, 투자·기술·개발 협력 나설 듯  


해외, 혹은 외국인 눈으로 봤을 때 비즈니스 측면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부총리가 6월 26일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사우디 왕위 계승자가 한국을 찾은 것은 21년 만에 처음입니다.


신분은 왕세자이지만, 부친이 현역 활동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사우디의 일인자입니다. 1246조원이란 천문학적 자금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세계 최고 부자' 중 하나입니다.


약 1주일의 시차를 두고 4일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대표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1000억 달러(약 116조원) 규모에 달하는 비전펀드의 수장이기도 하죠. 모빌리티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 등에 광폭 투자에 나서며 '세계 최고의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인정받습니다.


이 두 거물이 왜 현재 시점에 한국을 찾은 걸까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뭘까요. 한국에 원하는 게 뭘까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6월 26일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빈 살만.



빈 살만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6월 26일입니다.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한국을 들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는 한편, 저녁때는 삼성 승지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5대 그룹 대표자들과 별도의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빈 살만은 이번 한국 방문에서 83억 달러(약 9조6000억원) 규모의 MOU 및 계약 10건을 체결한 걸로 알려졌고, 이 밖에 국내 대기업들과 수소차, 로봇 등 분야에서 협력키로 했습니다. 젊은 리더의 광폭 행보와 한국의 상관관계를 따져보죠.





먼저 사우디는 중동의 맹주로서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중동 국가들의 힘은 석유에서 나옵니다. 석유 수출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일구었고, 오일머니를 토대로 지구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70년대 두 번의 석유 파동 이후 미국조차 사우디에는 꼼짝 못 하는 상황이 20여 년 이어졌죠. OPEC은 석유 생산량 조절을 통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80년대 세계적으로 환경파괴 문제와 석유 고갈론, 자원안보론이 붐을 이룬 것도 OPEC의 영향력을 경계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었나 생각도 듭니다. 미국의 원전 기술이 세계로 퍼져나간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그러나 친환경 에너지의 보급이 늘어나고 중동 외 지역에서도 새로운 유전이 속속 발견되며 OPEC의 영향력은 조금씩 축소됐습니다. OPEC 회원국 사이에서도 갈등이 첨예했죠. 산유국들 사이에 종교적, 정치적 문제와 맞물려 걸프전쟁 등 큰 전쟁도 발생했습니다. 석유는 알라신이 내린 선물이지만, 전쟁 등 온갖 반목을 부르는 탐욕의 샘이기도 했습니다.



국제 유가 추이



90년대 들어 중동 지역의 정치 리더들을 중심으로 석유 기반의 경제적 풍요가 영원할 수 없다는 생각과 정서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그런 생각은 갖고 있었겠지만, 정책으로 이행할 정도의 위기의식은 이때부터 생겨났다고 봐야죠. 이런 가운데 199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IT 붐이 일며 정보의 이동과 유통의 방식의 밸류체인에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랍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오일머니는 글로벌 IT 기업에 투자됐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대표되는 첨단 메가시티가 들어섰으며, 패션 등 산업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중동 자금은 글로벌 기업에 대거 투자해 장기 지속적인 배당 수익을 노렸습니다. 수쿠크(이슬람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 자금에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2000년대 후반 한국에도 이슬람 금융 열풍이 일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중동 자금은 중국으로 대거 유입됐습니다.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고, 신기술 발전이 빠르며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가진 중국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안정적 수익을 올리겠다는 계산에서였죠.



사우디 국부펀드 산업별 투자 포트폴리오



그러나 해외투자 등 외부효과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일군 중국은 리스크 헷징에 능했습니다. 중국이 자국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해외투자 자본을 절반(혹은 그 이상) 매칭 시킴으로써 투자 및 기업 육성 실패의 책임 절반을 해외에 떨군 것이죠. 이에 비해 화웨이 등 알토란 같은 기업은 해외자본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거대 자금도 중국에서 적지 않은 손실을 기록하고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물류망을 중국으로 잇는 한편 중동으로부터 안정적 원유 수급을 하겠단 계산이죠. 사우디가 일대일로에 적극 뛰어들었다가는 미국과의 외교 관계에 타격을 줄 수도 있고, 자칫 중국의 에너지 밸류체인에 종속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지난 몇 년 전부터 OPEC의 힘이 쪼그라든 점도 위기의식을 키우고 있죠. OPEC은 최근 러시아 등 non-OPEC 회원국에 휘둘리고 있으며, 생산량을 아무리 감산해도 원유 가격은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카타르는 사우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 행동을 하기 위해 올해 초 OPEC을 탈퇴했죠. 셰일가스 혁명을 일군 미국은 산유량에 있어 사우디를 크게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원유 생산량  국가별 순위



석유로 얽힌 경제, 산업, 정치, 사회, 문화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빈 살만은 왕세자로 취임하기 1년 전인 2016년 사우디의 구습을 타파하고 석유 의존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밝혔습니다.






삽을 뜨기 시작한 사우디 네옴프로젝트



가장 주목할만한 프로젝트는 아카바만·홍해 사이의 좁은 협로에 짓는 스마트 시티 ‘네옴(NEOM) 프로젝트’입니다. 스마트시티 및 경제자유구역 기반으로 프로젝트 규모는 5000억 달러(약 600조원)에 달합니다. 사우디는 네옴을 두바이 같은 경제 도시, 실리콘밸리 같은 혁신 도시, 홍콩 같은 유통 및 금융 도시를 키우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간 오일머니를 통해 역외 개발과 발전을 지원했지만, 이젠 자국 영토를 발전시키겠다는 거죠. 중동 지역의 허브로 키워 역내 패권을 지키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됩니다. 네옴은 지리적으로도 이집트·요르단·이스라엘·수단과 국경이 맞닿았습니다. 특히 이곳에 세계 유명 기업을 유치해 사람과 자본 유출입을 자유롭게 만들면 근린국의 압력을 해소하고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중동 요충지에 들어서는 네옴시티



그러나 사우디에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기술'과 '개발경험'입니다. 도시 인프라 개발은 경험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도시개발은 토목, 건설, 수도, 교통, 환경, 통신, 디자인 등 수많은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합니다.


특히 네옴은 스마트시티로서 신재생에너지와 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각 분야별로 개발 단계에 따라 입체적, 유기적 관리가 필요하죠. 세계적으로 이런 기술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프로젝트를 단기간에 성사시킨 나라는 한국과 중국, 일본 정도입니다. 자본이 풍부하고 IT 기술이 뛰어나고 토목 건설 경험과 운용, 관리 능력까지 갖췄죠.




네옴 프로젝트 구상



물론 한국이 네옴 프로젝트의 메인 개발자를 맡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은 이번 빈 살만의 한국 방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일대일로를 통해 야망을 드러낸 중국, 이란과 지속 거래 중인 일본과는 핵심적 작업을 펼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재무적투자자(FI)에 머물러 있던 오일머니가 앞으로 전략적투자자(SI)로 바꿀 것이란 관측도 가능하게 합니다.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사업계획도 직접 짜는. 빈 살만 왕세자는 마침 '비전 2030' 이행을 점검할 '비전 오피스'를 내년 초 한국에 연다고 합니다. 사우디가 한국에 필요한 것은 기술과 비전인 셈입니다. 한국 기업, 내지는 스타트업에 적지 않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해볼 만합니다.






4일 한국을 찾은 손정의 회장.



이번엔 손정의 회장 얘기를 해보죠.  손 회장도 빈 살만과 약 일주일의 시차를 두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빈 살만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이재용·구광모 등 재계 총수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손 회장은 문 대통령과 만나 AI를 세 차례나 강조했다고 합니다.


손 회장이 말한 AI는 미래 산업의 밸류체인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3~4년 전부터 플랫폼에 기반을 둔 O2O 비즈니스가 크게 성행했습니다. 해당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도 많이 나왔죠.


이에 따라 20년 전 다음·네이버·야후·프리챌·엠파스·세이클럽 등 포털사이트가 검색엔진으로써 플랫폼 경쟁을 벌였던 상황이 다시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 플랫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얼마나 사용자의 니즈를 스스로 잘 파악해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버 사용자가 얼마나 자주, 어디에서, 어떤 용도로 호출 버튼을 누르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적합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오프라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율주행차 사용자의 사물 인식과 순간 대응 등과 관련한 방대한 데이터가 서비스의 품질을 결정지을 것입니다. 이런 서비스는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는 분야가 있고 반도체 설계에 의해 결정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현재 IoT의 경우 반도체 설계는 인텔과 반 인텔 연합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손 회장이 이번 방한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단독 미팅을 가진 것은 시스템 반도체의 파운드리 생산과 관련된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AI와 관련해 이미지센서, 자율주행 등 여러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커질 전망인데,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ARM과 인텔의 대립구도.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는 전력 소모와 불량률 등 성능이 뛰어나고, 양산 능력도 경쟁사보다 큽니다. 손정의 회장이 AI와 관련한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을 위해선 뛰어난 납품회사가 필요하겠죠. 삼성전자가 최근 IBM의 위탁생산물량을 확보했고, TSMC 고객인 퀄컴과 엔비디아를 따내는 등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 손 회장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비전펀드가 인수한 회사이기도 하죠.


또 삼성전자가 2016년 인수한 하만카돈을 통해 통신칩 등 시스템 반도체를 납품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도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비전펀드가 보유한 ARM을 통한 AI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 그리고 삼성전자가 커스터마이징 반도체 제품 파운드리 생산이라는 모양새가 그려집니다.





물론 손 회장이 단지 이것만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운을 떼기 시작한 제2 비전펀드 조성을 위한 투자자를 찾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 손 회장은 올 4월부터 제2펀드 조성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고, 규모도 제1 비전펀드와 비슷한 1000억 달러 규모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일단 여기에는 빈 살만 왕세자도 400억~5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 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는 에너지 개발과 IT 기술 개발 및 투자에 여러 차례 뜻을 모아왔습니다. 빈 살만의 한국 방문이 손 회장과도 얽혀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손 회장은 펀드의 성공을 위해 단지 투자금을 모으는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투자자의 사업과 프로젝트를 얽는 일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투자자들이 단지 FI로서 캐피탈개인만 지향하지 않고, SI로 참여하게 해 사업을 크게 키우기 위한 전략이죠.


대개 글로벌 규모의 플레이어들이 협업해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주도권 다툼과 이익 분배, 사업권 획득 문제로 붕괴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에 손 회장은 자금은 자금대로 모으고, 개별 사업은 기업별로 따로 붙어 자기 주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이번에도 기술력과 자본력이 뒷받침하고 있는 한국 대기업 및 IT 기업들과 만나 투자를 요청하는 한편, 이 펀드가 진행할 프로젝트에 직접 사업자로 참여하길 어필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내 기자들이 손 회장이 이번 한국을 찾았을 때 "AI과 관련된 협업을 늘릴 것이냐", "투자 의향이 있는지, 시점은 올해가 될 것인지" 등을 물었고, 손 회장은 "그렇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라고 답했습니다.








손 회장은 지난 5월 9일 제2 비전펀드의 절반가량을 이미 빈 살만으로부터 유치한 상황에서 "전 세계 다양한 투자자들이 제2 비전펀드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펀드의 스케일업을 자본이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손 회장과 기업 대표들과의 만남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대표 등은 빈 살만 때와 마찬가지로 참석했습니다. 빈 살만 때 빠졌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네이버 GIO, 김동관 한화 전무 등이 참석했습니다. 모빌리티와 관련한 소재, 배터리, 제조, 소프트웨어 퍼블리싱, 콘텐츠 등과 관련 기업이죠.





빈 살만과의 티미팅 때 참석했던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번 만찬에서 빠졌습니다. 손 회장이 한국 기업들에 모빌리티와 관련된 롤을 맡기고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모빌리티와 관련해 자율주행과 알고리즘보다는 마케팅과 소재 및 제조 분야에 초점이 찍혀있습니다.


손 회장은 앞으로 제2펀드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여기에서 관전 포인트는 중국 자본이 들어오느냐 아니냐일 것입니다. 중국 기업이 참여하면 펀드의 성격은 중국행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며 어떤 기업들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한국 기업의 롤과 손 회장의 행보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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