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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럼버스 Jul 19. 2019

손정의가 최태원·김범수 초대하지 않은 까닭은

모빌리티 플랫폼 경쟁자 인식한 듯, 소프트뱅크 가치사슬에서 빠질 듯 


외국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가 한국을 방문하면, 대통령을 만난 뒤 기업인을 만나는 게 일반적인 루트입니다.


기업인 간담회에는 대개 5대 그룹 총수가 모이죠. 20~30년 전에는 4대 그룹이었지만, 기업의 규모나 사업 영역, 오너십 등이 크게 바뀌며 이제는 일반적으로 5대 그룹을 초청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 왕세자가 한국을 찾았을 때도 이들이 동석했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얘기를 또 한번 해볼까 합니다. 최근 정부가 '혁신성장과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 제도 개편 방안'을 밝혔기 때문에 손 회장의 행보를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생겨서죠. 


지난 4일 한국을 찾은 손 회장은 5대 그룹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만을 만났습니다.



한국을 찾아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 손정의 회장.



IT 업계에서는 이해진 네이버 GIO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함께 만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손 회장이 최태원 SK 회장과 IT 기업 중 가장 뜨거운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유통업이니 논외로 하겠습니다.







SK와 카카오 측에 확인해보니 손 회장으로부터 공식적인 초청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SK와 카카오도 손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오길 기다렸을 겁니다. 혹은 손 회장 측에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손 회장을 만난 CEO 5명.




그룹 회장 간 미팅은 의전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먼저 제안을 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어찌 됐든 현재 모양새는 손 회장이 초청을 안 했거나, 초청해 달란 의사를 거절한 형국입니다. 손 회장은 왜 최태원 SK 회장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만나지 않고 돌아간 걸까요.



최태원 SK 회장






손 회장이 현재 가장 힘주고 추진하는 사업 분야는 모빌리티입니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를 세계 최대의 공유차 업체 우버의 최대주주로 올려놨고, 중국 디디추싱, 동남아시아 그랩, 인도 올라 등에 지배적 지분권을 확보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손 회장은 우버와 올라, 혹은 디디추싱과 그랩이 경쟁하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지역별로 구획을 정해주는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계열사끼리 싸워 괜한 에너지를 뺄 필요가 없거니와 지역별로 유력 사업자를 두는 것이 독과점 이슈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밑그림 그리기는 1) 비즈니스의 플랫폼화 2) 가치사슬의 변화 3) 기업 간 네트워크 필요성 대두 등에 의해 더욱더 중요해졌습니다. 손 회장의 장기이기도 합니다.






미래 모빌리티 비즈니스는 공유차 플랫폼 속에 오토노머스가 작동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는 자동차를 소유하기보다는 공유차를 이용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유차 업체들이 수많은 자율주행전기차를 운행시키고,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자동으로 배차되는 공공 운송 서비스 개념이 될 것입니다.







공유차 업체들은 차량의 수요가 늘어나면 완성차 업체에 발주해 생산을 늘리고, 렌터카나 택시회사처럼 다수의 차량을 보유한 회사는 이 플랫폼에서 수익을 올리는 중간 사업자로 전환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자동차들은 친환경 에너지인 전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고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수익성 제고) 차체 바닥에 배터리를 깐 박스형 차량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차량은 운전자 없이 자율주행으로 달리며, 플랫폼에서 사용자의 요구에 배차됩니다.









기존의 자동차 산업 공급사슬이 ▣ '완성차 업체'의 수요 예측 → 생산 계획 → 디자인 → 생산 → 판매 등의 형태였습니다.


앞으로는 자동차에 교통까지 더해져 ▣ '플랫폼 회사'의 수요 예측 → 발주 → 생산 계획(제조사) → 부품조달(배터리 등 전장 및 AI 회사) → 납품 → 운송 서비스투입(플랫폼 회사) 등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버나 리프트가 막대한 적자를 보고도 마케팅과 플랫폼 확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보면 이런 공급사슬의 변화는 이미 정답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서비스가 성공하려면, 혹은 다른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점이 뛰어나야 할까요. 무조건 소비자 만족이 최우선입니다. 


내가 호출했을 때 적시성과 정확성, 저렴한 요금, 안락함, 안전, 승객이 바라는 것을 먼저 찾아내 제안해주고, 가장 빠른 길을 달리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서비스.


앞으로 모빌리티의 경쟁력은 플랫폼은 물론 자율주행에 필요한 AI 기술과 반도체 설계 및 양산 능력, 또 경제적이고 안전한 배터리 성능, 완성도 높은 자동차 제조 기술, 광범위한 부가 서비스 및 콘텐트 등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입니다.







달리 얘기하면 플랫폼 회사는 물론 통신사, AI 개발사, 반도체 설계 및 제조사, 전장부품 제작사, 완성차 회사, 콘텐츠 회사, 차량 서비스 제공 회사, 마케팅 회사 등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손 회장 입장에서는 

우버는 플랫폼이며,

소프트뱅크는 통신 및 AI 개발 회사입니다. 

반도체 설계는 비전펀드가 인수한 ARM의 역할입니다. 

차량 제조는 도요타가 맡고 

주문형 차량 서비스 제공 회사는 지난해 도요타와 손잡고 설립한 ‘모넷 테크놀로지’가 맡게 됩니다. 






손 회장 입장에서 이를 한국에 적용해보죠. 한국의 모빌리티 시장에서는 AI 개발과 마케팅은 네이버와, 반도체 설계와 생산은 삼성전자+ARM을 활용할 것입니다. 하만카돈을 인수한 삼성전자는 통신칩 등 카포테이션 시스템을 도맡을 수도 있죠. 


차량 제조는 현대차가 맡고, 배터리 등 전장 사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LG가 수행합니다. 주문형 차량 서비스는 네이버나 현대차와 손잡을 수도 있고, 모넷을 한국에 적용시키면 됩니다. 


콘텐트 및 사용자 확보 전략 등은 게임의 강자 엔씨소프트에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플랫폼은 어디 갔을까요. 손 회장은 세계적으로 무조건 플랫폼을 먼저 장악하고 모빌리티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모빌리티 사업자는 카카오, 두 번째는 SK가 투자한 쏘카(타다)입니다. 


앞서 기술했듯 최태원 SK 회장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손 회장의 초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손 회장은 한국에 우버를 장착시킬 생각인 것으로 추측해봅니다. 






출처=비즈한국




한국에는 강력한 모빌리티 플랫폼이 없는 실정입니다. 이제 막 택시업계와 갈등을 일부 조정하며 걸음마를 뗐습니다.


일단 17일 정부는 ‘혁신성장과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타다’, '웨이고' 같은 같은 모빌리티 플랫폼이 운영하려면 대당 한 달에 40만 원가량의 사회적 기여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모빌리티 사업자는 연 1000대 수준 규모로 사업을 해야 하기에 한 달에 최소 4억 원, 1년에 48억 원이 소요됩니다. 


한국에서는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셈입니다. 







‘우버’는 이런 상황에 남몰래 환호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버는 2013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해 쫓겨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음식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를 내놓고, 한발치 떨어져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버는 이미 한국 진출 준비를 끝내놓고 공유차 서비스가 개시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장과 함께 막대한 자금력을 확보하게 된 우버.



기본적으로 우버는 돈이 있는 회사죠. 올 5월에 미 나스닥에 상장해 745억 달러(약 88조원)의 시가총액을 자랑합니다. 지난해 매출은 113억 달러(약 13조 원)입니다. 한국의 택시 면허를 대량 매입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당국이 외국 기업에도 카카오·타다 등과 동일 조건을 부여한다면 우버로서는 한국 시장에 무혈입성하게 되는 셈입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손 회장으로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카카오와 SK의 수장을 굳이 만날 필요는 없었겠죠. 통신·AI 등 소프트뱅크·우버와 집중하는 분야가 겹치기 때문에 협력할 이유도 크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로선 손 회장의 비전, 소프트뱅크의 모빌리티 공급사슬에 SK와 카카오는 끼지 못한 것입니다. 최태원 회장과 김범수 의장으로서는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 셈입니다. 


당국이 우버를 제한해 손 회장도 이들 중 하나와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오길 기대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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