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건 사진이다.
"남는 건 사진이다."라는 말이 사진에 미친 나를 합리화시켰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인생 샷을 찍으러 여행을 나왔다. 배낭의 대부분은 옷이고 내 인생에 남길 '인생 사진'을 찍는 다면 어떠한 준비도 각오도 되어있다.
살까? 말까? 사? 말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여행 역시 선택의 연속이다. '이곳 갈까, 저곳 갈까'는 남편의 몫이고 나는 오로지 '이거 입을까, 저거 입을까' 혹은 '이거 살까, 저거 살까'의 선택에 빠져있다. 적은 예산과 좁은 배낭 안에 집어넣을 무언가를 산다는 건 신중하고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다. 옷이 무거워서도 안되고, 주름이 잘 생겨도 안된다. 세탁하기는 편해야 하며 하얀색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다 무시해버리게 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냥 예쁘면 된다.
터키는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았다. 특히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내가 가장 기대했던 사진 스팟이다. 좋은 사진을 남기긴 위해선 새 옷이 필요했다. 옷가게만 보이면 원피스를 찾아 헤맸지만 선뜻 사지 못했다. 그러다 ZARA에서 하얀 원피스를 보았는데 무겁고 주름도 잘 갔다. 하지만 그나마 그게 제일 나았다. 사실은 마음이 너무 급했다. 이러다 카파도키아에서 원래 입던 우중충한 옷을 입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계속 고민했다. 아마도 남편은 옷을 산다고 돌아다니는 나보다 살까, 말까를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이 더 답답했을 것 같다. 결국 사지 않고 돌아가고 다음 날 다시 와서 옷을 사고 가는 바람에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얼. 죽. 원 (얼어 죽어도 원피스)
카파도키아에 늦은 새벽에 도착하게 되었다. 2시간 후면 열기구가 뜨는 시간이라 쪽잠을 자고 오늘은 어디서 찍으면 예쁠지 구도를 잡기 위해 연습 겸 나갔다. 카파도키아의 4월은 새벽 공기가 차갑고 바람도 냉랭했다. 카즈베기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경량 패딩을 입고 있어도 춥다고 느꼈다. 옷만 빼면 사진은 성공적이었다. 그날 나는 숙소로 돌아와 무엇을 입을지 계획을 세웠다. 내일은 검정 원피스 모레는 하얀 원피스, 모레 글피는 한복.
새벽에는 두꺼운 패딩이 필요할 정도의 추위지만 그곳에 가면 여자들 대부분이 사진에 미쳐 너도 나도 원피스를 입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있으니 전우애라고 해야 하나, 함께 추워하니 좀 덜 민망하고 덜 추운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검정 원피스 차림으로 새벽 일찍 나가 열기구를 기다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와 싸우며 기다렸다. 그러나 웬일인지 날이 다 밝았는데도 뜨지 않는 열기구. 그다음 날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기다렸다. 그다음 날은 한복을 입고 기다렸다... 하지만 첫날을 제외하곤 카파도키아를 떠날 때까지 열기구를 보지 못했다...
알고 보니 열기구는 1년에 반 정도 뜬다고 한다. 하필,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날 준비 없이 본 게 전부라니...
아니지, 그 하루라도 본 것에 감사해야지.
수 백장의 똑같은 사진
여행 초반, 죽어도 어플로 사진을 찍었다. 어플에서 보정되어 찍히는 내가 '나'라고 믿었던 시절이다.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남편에게 어플이 켜진 핸드폰을 건넨다. 어플은 일반 카메라에 비해서 느리게 찍힌다. 심지어 저장 버튼도 한 번 더 눌러줘야 하는데 사람 많은 스팟에 가면 어플로 찍는 게 번거롭고 힘들었다. 남편은 내 핸드폰으로도 나를 찍어줘야 했고 남편의 DSLR 카메라로도 찍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중복된 사진이 50장이 넘고 경치 좋은 곳이나 비키니라도 입은 날에는 같은 사진이 백 장이 넘게 찍혀 있었다. 그 엄청난 사진과 동영상의 양은 2 테라 외장하드를 가득 채워버렸고 4 테라짜리 외장하드를 채우고 있었다.
여행이 진행될수록 내 핸드폰 용량도 나도 남편도 지쳐갔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여행이 주인가. 사진이 주인가. 어느 시점에 '인생 사진'을 목적으로 온 내게 현타가 왔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플로도 내가 이상하고 못생기게 찍힐 무렵 어플을 포기했다. 못생기게 나오는 게 싫어 사진도 덜 찍고 영상도 얼굴을 찍지 말라며 가리고 피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하얀 피부에 세련된 옷을 입은 한국 관광객을 본 날엔 검게 변해버린 내가 초췌하고 빈티 난다 생각이 들어 며칠을 우울해했다. 그러다 어디쯤일까? 유럽쯤일까? 남미쯤 와서 일까? 까맣게 타고 엉망이 된 모습이 건강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날이 왔다. 기미가 잔뜩 생긴 내 얼굴은 세계여행을 열심히 다녔다는 영광의 징표이고 까맣게 타버린 다리는 하얀 다리였던 때보다 얇고 건강해 보이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내 모습에 적응이 되니 예쁜 '나'를 찍겠다며 목매던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다.
셔터를 누르느라 바빠 카메라 속으로 봤던 풍경들, 어쩌면 핸드폰 액정을 통해 보는 시간이 더 많았을 자연을 '쌩 눈'으로 보는 시간이 늘었다.
비로소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나를 좀 더 일찍 받아들였다면, 나를 위한 인생 사진이 아닌 내가 간 곳의 인생 사진을 위한 여행이었다면 좀 더 좋았을 것을... 어김없이 여행이 끝나갈 쯤에나 깨닫는다.
덜 예뻐도 괜찮아.
이 순간의 나도 다신 없을 나의 모습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