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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Oct 20. 2020

"차박" 낭만은 없다

처음은 늘 어렵다.


여행을 하면서 참 많이도 남편과 다투었지만 특히나 이동을 하는 날엔 유독 감정싸움을 더 지독히 해야만 했다. 넘어진 후유증으로 꼬리뼈가 아파서인지,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 때문인지 그냥 이동 자체가 싫은 것인지... 나열하자면 예민한 내 성격 탓부터 사소한 것 하나까지 무수히 많은 이유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여행 자체를 부정하던 나에겐 불평불만이 너무나 당연스러운 일이지 않았을까. 


리스카로 105일 동안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그동안 짊어지고 다녔던 배낭을 차에 넣는다는 생각만으로 행복함에 젖었다. 이제는 싸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뚜벅이에서 벗어났으니 편한 여행이 되려나 생각했다.


남편의 여행 계획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나는 남편에게 리스카로 여행하며 차 안에서 잔다는 계획의 일부를 귀로 얼핏 들었지만 그대로 흘려보내 버렸고 '차'가 생긴다는 것만 입력하는 실수를 범했다.



첫날의 임팩트


기대와는 다르게 우린 알바니아에서 비행기가 6시간 딜레이 되면서 일정이 꼬여버렸다.  프랑스에 오후 4시쯤에는 도착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밤 10시가 되어서 도착했다. 그리고 밤 11시가 넘어서 차를 받았기 때문에 길은 어두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당연히 숙소에 누워 씻고 발 뻗고 자야 할 시간이지만 유럽의 숙소 가격은 지금까지 동남아와 동유럽을 여행해 온 우리에게 얼토당토않은 가격이었다. 결국은 예약을 포기하고 차박 장소를 찾아다녔다. 큰 덤프트럭 뒤에도 세워보고 공장 근처에도 세워보고 갓길 옆에도 세워보았지만 불안해서 잘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리스카는 빨간색 번호판을 달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 세우든 눈에 띄고 그것 때문에 혹시나 범죄의 대상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다시 차를 움직여 이곳저곳 헤매다가 호텔을 발견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10만 원이다. 다음 날 일찍 나갈 텐데 오늘 밤만 버티면 10만 원을 모으는 셈이다. 호텔을 나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숙소비용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떠나려던 찰나 주차장이 조용하고 사람 없고 다른 차들도 있고 비교적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린 첫 차박 장소로 들어가지 못한 호텔 주차장을 선택했다. 주차 차단기도 없었고 경비원도 없다. 이곳에 차를 주차하는 게 불법일지도 모르기에 비밀 작전이라도 수행하 듯 조용히 은밀하게 움직였다. 트렁크를 열어 의자를 눕히고 짐들은 앞 의자에 두었다. 매트에 바람을 불어넣고 침낭을 펴 차 안에 누웠다. 고단함에 잠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는데 새벽 2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시간, 적막함 때문이었을까? 처음 경험해보는 차박이라서 였을까?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매웠고 양볼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이지 처량하다.'


  처량이라는 단어는 나를 위해 쓰라고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존재하나 보다. 가만 보니 얼핏 차에서 잔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은 같은데 진짜 이렇게 날 것으로 차에서 잔다는 이야기 일 줄이야... 아빠가 결혼을 반대했을 때 아빠 말을 들을 것을 그랬다... 아기라도 갖어서 남편을 회사에 묶어 둘 것을 그랬다. 오만가지 후회를 하며 차 안의 낮고 답답한 천장을 보며 슬픔에 젖었다. 차 시트 밑으로 차 밑바닥으로 몸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남편은 나에게  일말의 미안함이라도 느낄까? 코를 훌쩍대며 우는 티를 내니 그제야 무심한 남편이 나를 돌아봐 준다.


 '이렇게 고생시키려고 결혼하자고 했니? 내가 하다 하다 이제 차 안에서까지 자야겠어?'


상처 주는 말을 뱉고서야 가슴에 응어리가 풀어지는 듯하다. 남편의 기분까지 망처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다.  분명 계획을 이야기 해준 기억이 있긴 하지만 처음 듣는 계획이었다는 듯 뻔뻔함을 얼굴에 덧바르고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새벽 늦은 시간, 이 날 만큼은 여행 온 것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지 않았을까...


 


호텔 앞 지상주차장에서의 차박


평생 잊을 수 없는 차박의 기억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차박을 하면서 적응하고 익숙해져 갔다. 마트 주차장, 갓길, 휴게소, 공동묘지까지... 너무 겁나고 무서웠던 일들이 일상이 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처음엔 인정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았던 상황, 납득되지 않는 사건, 사고들. 한 번만 참아보자 했던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서 어느새 웬만한 일은 무뎌지고 크게 놀라지도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차박을 하며 그렇게 점차 단단해지고 억세 졌다. 누가 알았을까? 내가 이렇게 끈질기게 버텨내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럽 리스카 여행은 570일의 세계여행 중 가장 버텨내기 힘들었던 시간이며 이렇게까지 하며 지속되는 여행에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자주 차 안에 누워 눈물을 훔쳐냈던 시간이다.

지우고 싶었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그런데 지금 와 보니 그 순간이 있었기에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내가 조금씩 천천히 미세하게 바뀔 수 있었던 것 같다. 



차박 첫날, 꿈에 흑인이 짱돌을 들고 하얀 이를 들어내면 웃더니
유리창을 깨부수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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