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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Jul 31. 2020

라스베가스 말고 나사베가스

세 번째 결혼기념일

2018년 10월 4일 방콕에서 우리의 세 번째 결혼 3주년을 보내게 되었다.


전날 태국 끄라비에서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넘어온 우리는 아고다에서 미리 예약해 둔 3성급 호텔 ‘나사 베가스 호텔’을 찾아 움직였다.

2박에 28달러라는 메리트에 반하기도 했지만 결혼기념일이니 도미터리 말고 단 둘이 쉴 수 있는 객실에서 자고 싶었다. 사진으로 본 방의 컨디션은 가격에 비해 훌륭했다. 동남의 물가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열심히 걸어 찾아온 호텔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5성급 호텔처럼 생긴 로비를 갖추고 있었다. 내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입가에 계속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임을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객실로 올라가는 도중 코를 통해 예측하고 있었고 입가의 미소도 사려졌다.


‘음, 이 곰팡이 냄새는 뭐지... 아닐 거야..’


이미 냄새로 직감했지만 계속 부정하려 애썼다. 객실에 다가갈수록 설렘이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늘 그렇듯 불안한 예측은 빗나가지 않는다. 안내받은 객실은 다시 말레이시아 페낭을 떠 올릴 만큼 끔찍한 객실이었다. 사진과 너무 다른 객실 컨디션에 할 말을 잃었다. 더군다나 이 객실은 이미 다른 대가족이 사용하고 있었다. 벌컥 문을 열어 객실에 침입한 우리가 불청객 된 느낌이었다.

배낭을 내려놓은 곳이 보이지 않았다. 소파도 테이블도... 결국 침대 위에 올려두고 1분도 더 있고 싶지 않은 객실을 급히 빠져나왔다.


스타벅스에 앉아 마감시간까지 버텼다. 이동을 해서 피곤했지만 숙소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마감시간은 결국 다가왔고 우린 나사 베가스로 돌아가야만 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 마주한 객실은 더 참혹했다. 침대의 눅눅한 시트에서 비에 젖은 양말 냄새가 올라왔다. 그날 밤, 혹시나 침대에 올라올 바퀴벌레들을 경계하며 배낭을 끌어안고 버텼다.

내가 날을 새거나 말거나 같이 날을 세겠다는 남편은 먼저 잠에 들고 홀로 현실을 부정하며 바퀴벌레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핸드폰 충전선은 새롭게 등장한 놀이터였는지 인기 만점이었다. 밤새 침대에 올라오는 녀석들을 쫓으며 버텼고 날이 밝아 다음 날이 되었다.

1박이 더 남은 상황이지만 2박 연속 날을 센다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결국 결혼기념일이라는 찬스로 남은 1박을 버리고 나사 베가스를 빠져나와 호스텔로 향했다.


눈치없이 돌아다니는 바퀴벌레들


 

1주년엔 이태리 여행을 했었고 2주년엔 정성 가득한 통장 편지와 200만 원을 받았었다.

그리고 결혼 3주년은 바퀴벌레가 가득한 숙소에서 벗어나는 찬스와 배낭여행객에겐 사치인 한화로 약 14,500원 정도의 호텔 뷔페를 먹었다. 4주년엔 부디 한국에 돌아가는 티켓을 선물 받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4주년은 멕시코에서 보냈다. 


여행 전, 나는 그동안 내가 너무 큰 행복을 누리면서도 복인 줄도 모르고 지냈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니 고마움을 잊은 것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었고 더 원했다.


여행 후, 자포자기 상태인 걸까? 정말 여행이 나를 바꿔놓은 것일까? 시간이 좀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 값비싼 레스토랑, 명품가방에 행복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지금으로써는 그냥 오롯이 단둘이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우리의 여행 에피소드를 회상하면서...



2주년 때 받았던 잊지 못할 통장 편지




모든 게 다 경험이었다
심지어 나사 베가스까지도...
하지만 굳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우리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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