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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Oct 28. 2020

모든 것은 '초밥' 때문이었다.

아는 맛의 무서움

 리스카로 여행 한지 17일이 지났다. 절약은 몸에 베였지만 그래도 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날 세고비아에서 60유로짜리 주차 벌금 딱지가 붙은 남편은 허리띠를 더 졸라 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앞으로 60유로의 벌금만큼은 더 아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 우리는 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마트 주차장에서 차박을 해야만 했다.


저녁엔 분명 차가 많았는데 다음 날 아침 우리 차만 덩그러니...




초밥 전 핫도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일정을 맞춰 도착한 마드리드. 직관을 할 순 없지만 손흥민 선수가 뛰는 경기를 자랑스러운 한국인 신분으로 그 현장의 열기를 몸소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둘 보단 여러 한국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함께하면 즐거움은 배가 될 테니 말이다. 남편은 인터넷을 통해 마드리드에서 함께 경기를 보기 위한 단톡방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들과 만나는 날, 차박을 해서 찌뿌둥하고 샤워도 하지 못한 채 급히 마트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를 만나는데 씻지도 못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은 나에겐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점심을 함께 먹고 저녁 경기를 보자는 말에 우린 예산부터 걱정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대세에 따라 점심 장소는 '초밥'집으로 결정되었고 모임엔 끼고 싶었지만 돈이 부담이 되었던 우린 초밥을 많이 먹지 않기 위해 초밥을 먹기 전 미리 1유로짜리 핫도그로 배를 채웠다. 그리곤 모임 장소에 가서 다 같이 먹자며 이것저것 시킬 때 '우린 배가 별로 안고파서 따로 시킬게요'라고 말하곤 12피스 초밥 한 접시를 시켰다. 한화로 약 이만 원했던 초밥 한 그릇. 우리에겐 큰 예산이기에 음료도 시키지 않고 심지어 물도 못 마시고 채로 초밥만 꾸역꾸역 넘겼다.


우리처럼 장기 여행자가 아닌 유학생 혹은 단기여행이었던 다른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 위엔 신선한 회 몇 점과 초밥 5-6조각이 남았는데 우리에게 먹으라고 권유했지만 그 찰나 먹으면 식사비용을 더 지불해야 할 것 같은 느낌과 남긴 음식을 먹을 순 없다는 자아 깊숙히 남은 손톱만큼의 자존심이 젓가락을 들 수 없게 했다. 결국 초밥은 식탁에 남겨진채 우리는 초밥집에서 나왔고 남편과 이구동성으로 속삭였다.


'초밥 아깝다.'



지금이라면 넉살 좋게 '잘 먹겠습니다'를 외치고 입으로 들어갔을 초밥. 그 몇 푼 아낀다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알기에 함께 시켜 이것저것 맛나게 먹었을 초밥. 그땐 아쉽게도 우리에겐 넉살도, 쿨함도, 예산에서 하룻쯤 초과해도 된다는 융통성도 부족하였다.


아쉬움 때문 이었을까? 그렇게 초밥 1인 6피스를 감칠 나게 먹고 난 후 딱히 식탐이 있지 않았던 나는 초밥에 눈을 떠버렸다.






열정적 응원 후 남은 건 배고픔과 찝찝함
그리고 지하주차장에서의 차박이었다.


  
톨레도 초밥


스페인 하면 나에게 첫 번째로 떠오르는 도시는 '톨레도'다. 이곳에서 나는 초밥을 향한 '대전투'를 벌였다.

어제 마드리드에서 먹은 초밥은 너무 감칠맛 났다. 이미 입안을 시원하게 만드는 초밥의 청량감에 반했고 한 동안 잊고 살았던 탱탱하고 쫀득한 밥 맛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없던 식욕을 끌어올렸다. 물욕은 있지만 딱히 식탐이 있지는 않았던 나. 유럽여행을 하면서 다행히도 그 나라의 특색 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는 없어 돈을 아끼며 여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한국에서 많이 먹어 본 '초밥'의 유혹을 참는 건 곤욕이었다.  


한편으론 '왜 이렇게 까지 빈곤한 여행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또 떠올라 괴로웠다. 이틀 연속의 차박으로 몸이 찝찝하고 피곤했다. 그리고 육체의 고통은 정신도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사람들 앞에서야 괜찮은 척 했지만 실제로 괜찮은 줄 알았던 내 기분은 점점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먹방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인생에서 즐거운 낙일 텐데... 여행 와서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근사한 식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유는 내가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현지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 맛이 없으면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 등등의 이유였을 것이다. 아닌가? 근본적인 건 돈이었을까? 왜 그토록 식당 가서 밥 한번 안 사줬는지 남편만이 알 일이다.


톨레도는 군사박물관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곳을 구경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오로지 제대로 된 식사 정확히 말하면 대접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 식사,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를 느끼게 해 줄 식사를 원했다.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고 기온은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 지칠 대로 지쳐가던 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외식을 요구했고 결국은 싸움을 번져 울고야 말았다. 주변에 누가 있든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까지 여행하는 내가 처량하고 가여워 눈물을 흘렸다. 내가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쓰고 있던 모자를 내동댕이치고 남편에게 등을 돌려 혼자 걸어가자 그제야 남편이 상황 파악을 한 모양이다. 한 10분쯤 걸었을까 남편이 나를 달래러 뛰어 온다. 그제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그래서, 뭐 먹고 싶은데, 사줄게, 다 사줄게'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우습게도 그 말 한마디에 미소가 숨겨지질 않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먹는 것에 본능적인 사람이었던가.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은 있었는지 어플을 켜서 톨레도 맛집을 검색하고 싶진 않았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초밥집 건너편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초밥집으로 자연스럽게 입장을 하고

난 어제부터 꾹 참아왔던 초밥을 입안에 가득 넣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먹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다' 이 말은 그래서 결국 안 먹는다는 말이다. 별로 새로울 게 없으니까. 하지만 이 말은 이미 알고 있는 맛의 무서움을 모르는 말인 것 같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빵. 그리고 시리얼, 라면만 먹고 버티던 나에게 익숙한 '초밥'의 맛은 한번 생각이 들면 폭주해버리는 마법을 가진 단어였다. 식탐이 없다고 자부하는 나인데 이 또한 처음 마주하는 나의 낯선 모습이었다. 


긴 여행을 진행함에 있어서 예산과 계획에 맞춰 계속 나아가는 것도 좋지만 너무 벗어나지 않는다면 갑자기 찾아온 변수에 대응하는 법을 잊고 만다. 만약 우리가 마드리드에서 함께 배가 터지게 초밥을 먹었더라면 나는 다음날 사람답게 먹고 싶다며 울고 떼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여행을 해야 하나. 하는 자존감 낮아지는 쓸데없는 생각도 그날엔 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물론 좋지. 하지만 가끔은 뜻밖의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함께 섞이면 어떨까. 예산에서 조금 벗어난 며칠이 되더라도 다음을 위한 도약이 될 것이다.




우리의 여행에 가장 필요한 단어는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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