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하거나,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눈빛. 분명 그는 생각하는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고, 할 말이 있다. 외국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듯이 강아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어서 모를 뿐이다.
비단 강아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돼지도, 닭도, 새도, 심지어 식물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감정을 무시한다. 무시할 뿐 아니라 심한 고통을 주기도 한다. 비좁은 우리에 가두고, 먹기 위해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나무를 벤다. 그러나 감정을 교류한 강아지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언어는 몰라도 눈빛과 행동을 통해 마음을 나누었으니 그럴 것이다. 친구에게는 친절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죽여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삶의 모순이다.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온 통념이라 잘 인식하지도 못할뿐더러, 먹는 즐거움을 희생하기 싫어서 애써 외면하고 사는지 모른다.
보편적인 삶은 편하지만,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방식의 삶을 추구할 수 있을 때, 안주하지 않는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나면 불편하고 외로울 수도 있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 더 깊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