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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호 Feb 23. 2020

지옥이 있을까?(No140)

나는 지옥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었다. 고통을 주기 위한 곳이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종교에서 말하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지옥은 두려움을 통해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이라 생각했다. 영혼이 병든 존재를 치료하는 곳인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러나 지옥은 저 세상의 일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지옥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지옥 같은 일은 일부 특정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이 다른 존재에게 행하는 지옥은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식탁 뒤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식탁은 피로 만들어졌다. 주방의 도마에는 핏물이 묻어있다. 마트나 정육점에는 사지가 잘린 동물들이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고기 한 점 때문에 무고한 생명 좁은 공간에서 며 강제로 살찌우다가, 죽임을 당한다. 병들 집단 생매장을 당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지각이 없으면 괜찮다. 공장의 제품처럼 아무런 감각도, 존재감도 없다면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슬픔과 고통,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지옥을 만드는 요인이다.

이 세상은 에너지로 되어 있다. 존재가 움직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인간이거나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다 같이 에너지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그 힘으로  움직이는 것은 물질이 운동에너지로 변하는 것이다. 그 운동에너지가 어떤 존재에게 고통을 준다면 특정 에너지가 고통이라는 에너지로 변한다. 그런데 한번 만들어진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로 바꾸지 않는 한은 영원히 그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절대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다.

모든 현상은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내가 만든 고통의 에너지는 우주의 어느 공간에 머물러 있다. 그 에너지는 언제나 나와 연결되어서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만든 에너지를 스스로 상쇄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옥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인과응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한은 반드시 지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든 에너지는 어단가에 저장되어 있다.

 내가 고기를 먹기 위해 누군가는 가축을 길러야 하고 죽여야 한다. 내가 직접 하지는 않지만 원인제공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나는 우아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즐긴다.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묻혀버린다. 매 끼니 나는, 나도 모르게 지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식탁 뒤의 지옥

악순환이다. 고통스럽게 죽은 동물의 에너지가 그 몸속에 담기고 그것을 먹음으로 나의 에너지가 그에 동조되고 또 고기를 찾게 된다. 같은 에너지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서는 마약을 끊듯 큰 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지옥이 있다면 천국도 있다. 비건이 된다는 것은 지옥을 끝내고 천국을 만드는 일이다. 나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가 없다는 것은 내가 고통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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