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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Jan 15. 2016

백수가 되면서 약속했던 쉼표를 이제 찍고 있다.

치앙마이 어느 집을 구해 혼자 살고 있다.

긴 멈춤 
긴 휴식 
긴 공백 
긴 글 
긴 걸음 
긴 정리 
긴 수면 
긴 대화 
긴 고민, 하고 있다. 

2014년 1월 1일 백수가 되면서 약속했던 쉼표를 이제 찍고 있다. 
어쩌다 보니, 계속 꼬리를 잇고 사람에 닿아 살아가게 됐다.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그랬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려 했고 
아무 것도 아닌 일상 속에서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됐다. 
자연스러웠다. 요 며칠은 그래서 마음에 든다. 

나날이 헤아리던 사람과 꿈, 목표, 일, 결과, 이득을 잠시 잊고 
치앙마이 어느 집을 구해 혼자 살고 있다. 

외국을 핑계로 아무 일 하지 않아도 
아무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용하다. 계단을 세 번 올라 앉으면 마음이 놓인다. 
현관을 열면 해가 뜨고 반대 편 창문 밖으로 해가 진다. 
타닥타닥 글을 적다가 해가 떴고 다시 허리를 폈고 해가 졌다. 

치앙마이 한복판에서도 한 시간은 걸어 도착해야 하는 이곳에는 
영어 간판도 드물다. 

아는 사람이 주인 아저씨와 팟타이 아주머니에서 멈춰서 좋다. 

손가락 몇 개로 살고 있다. 
밀렸던 일상을 살려니 하루 역시 짧다. 

보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것도 사실 늘 없었다. 
돈 되는 거의 가진 모든 것들을 정리했고 그래서 그래도 괜찮다. 

정리하고 적어내고 비워내고 다시 할 생각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날이 짧다. 

적어내고픈 기억을, 기억하고픈 밤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 일을 하고 싶었다. 

시작하는 글은 '여행대학이 만들어지던 나날'인데 
새벽이 밝도록 꼬박 준비하던 방향과 문화, 계획들을 떠올렸다. 

시작은 이렇게 적었다. 
단지 기록을 하고 잊을 생각이다. 


처음 여행대학을 만났을 때는 낯설었다. 
조직을 이루고자 하면서 조직이 없었다. 
책임은 옅은데 기대는 부풀었고 
결국 관계는 일이 아닌 보상 없는 부탁만이 남아 있었다. 

흩어지기 쉬운 조직을 만들면 지속하기에 부담이 있다. 
의견을 물었더니 기업을 만들길 바랐고 
주위를 살폈더니 계획되길 바라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고생을 해도 괜찮은 재미를 기대했다. 

과연 나는 무엇을 만들고자 했는지 
무엇을 거쳐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기록하고자 한다.



창밖을 보면 이렇다.
현관문을 열고 보면 이렇다.
방은 이렇다.


현관을 열면 해가 뜬다.
뒤돌아서면 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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