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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Jan 18. 2016

마음이 단단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스리랑카 1, 스스로 가진 편견이 지나치게 무서웠다.

스물 아홉. 작은 스타트업을 했는데 의견이 대립했고 결국 벗어나게 됐다.

일을 하며 나날이 밤을 새웠다. 기반을 잡고 어느 경계를 벗어나려던 어느 날, 갑자기 퇴직을 했다. 


아무 계획과 준비도 없이 덩그러니 백수가 된 날,

나는 할 일을 찾지 못 했다.


여행이면서 문화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아직 스스로에게 여행을 주진 못 했다.

진짜 여행을 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나날이 계획을 그리고 사람을 세우고 밤을 새웠다.


몇 시간쯤 고민했을까. 지도를 펼쳤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행 이야기를 만들고 듣는 일을 했으면서 꼭 가고 싶었던 곳을 찾지 못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곳에 가기로 했다. 그냥 '스리랑카'였다. 이유는 정말 없었다.

검색하고 찾아내 '스리랑카'로 향하는 편도 향공권(에어차이나)을 예약했다.

여행은 약 2개월 동안 할 계획을 했지만 사실 돈이 떨어지면 돌아올 생각을 했다.


나는 2015년 12월 10일까지 일을 했다.

항공권은 12월 16일 인천을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17일 스리랑카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22만 원에 예약했고 몇몇 준비를 했지만 꼼꼼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나는 늘 그랬다.


경유 시간이 23시간이었다. 항공사에 문의해 무료로 호텔 숙박권을 얻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여덟 시를 넘겼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군것질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침이 밝아 공항에 왔다. 말도 안 되게 맛이 없는 스타벅스 그린티라떼를 마셨고 크게 후회했다.
스리랑카로 향하는 알록달록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항공기를 탔다.
뽀얀 어느 경계를 넘어섰을 때 하늘이 드디어 맑았다.
스리랑카 공항에 도착했다. 갑자기.


정말 말 그대로 '갑자기' 스리랑카 공항에 도착했다.

준비도 드물고 정보도 드물며 보고 싶거나 가고 싶은 여행지도 없는 여행자는 그렇게 도착했다.


막막했지만 작은 보험이라면 그래도 스리랑카 콜롬보 어딘가에 호텔은 예약해 두었다는 점이었다.

그냥 일단 밖에 나가보기로 했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유심(USIM)을 장착하고 검색을 했다.

어딘가 시내로 향하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어딘가, 그래 어딘가 있었다.

갑자기 몰아친 더위와 불안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그래도 탔다. 


그냥 누군가 미니버스 안에서 "콜롬보?" 물었고 "오케이"만을 외쳤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겁도 없이 탄 이후에 "팔려가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구글맵으로 1초에 한 번씩 위치를 확인하며 그래도 어떻게 콜롬보 어느 구석에 떨어졌다.

그 불안이란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이 콩콩 뛰어 식은 땀이 나는 정도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다.


버스에 내리기 전 버스 요금을 계산하려 했다. 차장은 1인에 300루피를 불렀다.

나는 인도 여행에서 그래도 배운 습관을 떠올렸다. "무조건 깎아야 한다."

100루피를 불렀고 결국 150루피로 합의했다.

뒤늦게 찾아본 정보로는 120~150루피로 합의하면 합리적인 요금이라고 한다.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향했다. 낯선 이동수단 '툭툭'을 타고 또 다시 "팔려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버스 요금을 내면서 느낀 차장 눈빛이 이상하게 선했다. 깎자고 하면 그냥 깎아줬다.

길을 물었더니 지도를 보면서 설명해주려 애를 쓴다.

'툭툭'을 잡아주며 여행 조심하라며 걱정을 한다. 의심되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낯선 이동수단 '툭툭' 아저씨는 전화를 걸고 물어 물어 생각보다 긴 시간에 걸쳐 호텔에 도착했다.

며칠 뒤에 알게 됐다. 아저씨가 돌아간 게 아니라, 미리 예약했던 호텔 위치가 그냥 외곽이었다.


그리고 이제 늦게 일어나고 그냥 늦게 보고 싶은 만큼만 움직일 생각을 했다.

산책을 거듭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나는 사실 보고 싶은 게 없었다. 쉬고 싶었고 걷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났고 낯선 곳이었다. 문을 열자 훅 바람이 달려들었다.
노점에서 바나나를 구입해 먹었다. 맛있다.


웃음이 예쁜 분들을 만났다.
교통 체증이 생각보다 심했다.
비가 왔고 곧 그쳤으며 사람들은 익숙하게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곧 크리스마스였고 복잡한 곳곳에는 'MERRY CHRISTMAS'를 잊지 않았다.
스리랑카는 음주 문화가 폐쇄적이다. 'WINE STORE'를 통해야 술을 구입하 수 있다. 큰 슈퍼마켓에도 종종 판매하지만 계산을 별도로 해야 한다. 판매 시간 역시 제한적이다.


덥다. 툭툭은 비쌌다.

나는 계속 걸었고 걸어갈 수 있는 한계를 걷고 멈췄다.


물을 샀고 물을 마셨으며 시원한 곳이 등장하면 계속 눌러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 생각 하지 않았던 날이 언제던가.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경계가 사라졌고 사람들이 느껴졌다.


그들도 단지 이곳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일 뿐이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만나면 인사해야지, 만나면 웃어야지 했는데 순서를 내어줬다. 

사기 맞지 않아야지 했는데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스스로 가진 편견이 지나치게 무서웠고 
필요를 남기고 대부분 덜어냈더니 마음이 편하다. 

여행, 잠시 그들이 가진 일상을 빌렸더니 마음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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