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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Jan 20. 2016

입사 지원자에게 보낸 편지

“이번 맥주는 함께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번 맥주는 함께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나는 몇 번을 창업했고 어느 대기업 홍보팀에서 근 3년을 근무했다.
그러다가 다시 길바닥을 떠돌았고 낯선 수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라면 단연,
지난 2015년 작은 여행 스타트업에서 채용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나날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요즘,
입사 지원자에게 보낸 편지가 떠올랐다.
그때 그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시작은 2015년 2월 말이었다.
여행 스타트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7월 말이 됐고 밑그림이 그려졌다.

채용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신규 입사자를 뽑기로 했다. 그 전까지는 거의 혼자 일을 했다.
때때로 돕거나 멀리서 지원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방향을 나누는 사람이 없었다.
경력보다는 조직의 기반을 갖출 신규 입사자를 채용하기로 했다.

기획과 운영, 디자인 인력을 생각했고
7월 말 계획으로는 정규직 2명과 단기계약 근로자 1~2명이 조직 운영에 필요했다.

작은 기업일수록 좋은 사람들이 붐벼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라 하면 
같이 일을 할 사람이 첫째, 기업이 벌이는 일을 좋아해 줄 사람이 둘째라 생각했다.

8월이 되면서 사업 진행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조금씩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채용을 했고 웹사이트 개발과 오프라인 공간 준비,
주요 사업들과 예산과 홍보와 잡무들을 챙겼다.

잠이 부족했고 행복했다.

며칠 동안 주위를 살피고 사례를 모아 근무 조건을 만들었다. 
근무 조건을 몇몇 사람들에게 펼쳐 의견을 물었다.
누군가 "그래도 괜찮겠냐." 말했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괜찮고 부족하다." 답했다.
계획하고 만들어가던 또는 이미 이뤄진 일들로 분석하면 부족했다. 
방향과 현실보다 보수적으로 제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더 보상해줄 수 있도록 더 고민하고 제안해야겠다 생각했다.

8월 23일(일) 채용설명회를 문득 열었는데 200명이 넘게 참석했다.
작은 공간을 예상했다가 서울특별시청 서소문 별관 대강당을 빌려 열었다.

채용 지원을 받았는데 자료를 내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130명이 지원서를 냈다. 
입력 양식을 간단하게 적고 스스로를 설명할 마인드맵 여행하는 골목을 상상해 내야 했다.
별 작은 기업에서 지나친 요구였지만 필요했다.

우리가 내건 조건들이 가능하냐는 의문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려고요." 정리해 대답했다.

채용에서 주로 어떤 조건을 보냐는 질문이 여럿이었다. 조건보다는 우리가 가진 방향을 꼼꼼히 설명했다.
작은 조직은 큰 조직보다 더 설명하고 더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몇 번에 걸쳐 우리가 가진 ''에 대해 '여행대학, 꿈'이란 주제로 글과 말을 통해 게시하고 알렸으며 방향을 계속 덧붙여 설명했다. 

서류를 받은 130명 중 16명을 1차로 추려 청계천남산한강에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서 궁금한 것을 묻거나 서로가 소비하는 일상에 대해 들었다.
편하게 스스로를 이야기 할 수 있길 바랐다. 



다시 4명을 추려 새롭게 사무실과 광장이 들어설 만리동 청솔학원 어느 강의실에서 
미리 제시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적은 글과 지금 하고 있는 말이 같은 방향을 향하는지 계속 살폈다.
계속 물었고 계속 우리 방향을 꼼꼼하게 설명했다.

결국 채용은 성공적이었다.

예상했던 2명이 아닌 3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나는 꿈을 말했고 사람들이 꿈을 들어준 것이라 믿었다.

부족해도 할 수 있다 말했는데, 결국 이 말은 거짓말이 되었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각보다 깊다.
꿈과 방향 그리고 사람이 있으면 나는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보내온 글과 자료를 읽는 낮과 밤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지원서를 냈던 분들께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고마운 마음을 적고 싶었고 적어 보냈다.

지난 날 적었던 글을 통해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나는 작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배운 그 어떤 일보다
사람에게 미안해야 하고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사실 시간이 흘러 남겨지는 것은 결국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 초대하지 못 한 분들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전달했던 글이다.




○○○○ 채용지원 결과 - "○○○ 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님,
○○○ 입니다. 
채용 지원에 대한 결과를 전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이번 맥주는 함께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문장을 직접 듣게 된다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속상하겠죠.
그런 말을 전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미안한지는 이야기 하지 못 할 정도입니다.
돌려 말하지 않고 이 문장을 처음에 적는 이유는 그만큼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기 때문입니다.
 
밤을 새며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준비하고 기다렸을 마음이나, 우리를 대해주는 고마운 시선들에 작은 마음 표시는 그렇게 했습니다. 
부족하겠지만 단 하나의 글과 사진, 자료들도 허투루 보지 않았음을 전합니다.
 
○○○ 님이 자격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만난 모두는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고
우리가 새로운 일을 하게 됐을 때 연락을 드리고 싶어 꼭꼭 표시해둔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닿아 함께 계획들을 만들어갈 어느 방향이 조금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날에 우리는 새로운 채용을 진행할 계획이며 당신을 꼭 기억하고 앞서 연락하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끝맺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가능하다면 개별로 회신 주는 분들과는
채용과는 관계 없지만 맥주 한 잔 또는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인연이고 우리는 인연을 믿습니다.
가까운 날이 어렵다면 우리 공간이 생기는 10월에는 꼭 걸음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시작될 ○○○○ 이야기에 작은 동반이라도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 님을 만났던 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동이고 고마움이었는지 우리는 꼭 만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의 첫 채용에 지원해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전합니다.
 
당신이 준비해준 마음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맥주는 우리가 당신에게 먼저 부탁하겠습니다.”
(맥주 아닌 콜라도 괜찮습니다.)
 
끝.              




끝을 맺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채용을 진행하면서 어느 질문을 받았다. 

고민 끝에 답변을 했던 기억이 있다.


미안하단 말을 못 했다. 

뒤늦게 연결된다면 미안한 마음을 말해야겠다.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해요.


ㅊ 님께서 여행대학에 질문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했던 고민을 적어주셨고 답변을 하면서 다른 분들도 같은 궁금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긴 글이지만 여행대학 방향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Q. 
이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차마 채용설명회 자리에선 질문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여쭤봅니다. 다소 직설적인 표현으로 들리실 수도 있음에 미리 죄송합니다.

우선, 여행대학이라는 플랫폼에 초기부터 굉장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 조차 배워야 할만큼 수동적인 사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돈을 내고 여행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 한편으론 속이 상했습니다. (여행이라는 자유로운 문화 조차 누군가를 통해 습득해야하고, 또 돈 없는 사람이면 배울 수도 없다는 것에.)

그래서 이렇게나마 질문을 드려봅니다.
"여행을 굳이 분류하자면, 촬영과 같은 기술적인 교육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단체여행이나 음악감상 같은 경험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의문을 가진채 여행대학이 성장하고 있는 것을 꾸준히 봐오면서, 제 생각이 전부는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여행대학이 대한민국의 여행문화를 바꾸려는 것도, 여행객들을 지원하려는 혁신적인 모습에 힘껏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직 여행대학의 방향과 목표를 정확히 몰라서 드리는 질문일 수도 있겠네요.

A. (짧은 요약)
우리는 누구나 여행하고 누구나 여행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보편적인 일상에 편입하고 싶습니다. 여행을 배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지 못 할 여행 정보와 기술,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 없는 사람도 여행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여행을 더 재밌고 특별하게 만들 수단을 제공하고 여행에 준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아끼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재미있게 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기반은 '재미'이고 우리는 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함께 놀고 있고, 그렇게 부정적이고 불편하며 서로 거리를 두는 사이가 아닌 함께 잘 맞고 오래 만난 동네 친구 같은 그런 곳이 지금의 여행대학입니다.

A. (원문)
같은 생각입니다. 여행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을 내고 여행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방향을 달리합니다.

여기서 잠시 밝혀둬야 할 것은,
우리는 '누구나 여행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문화와
'일상 속에서 여행을 만나는' 일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할은 자유여행에서의 자유로움과
패키지여행의 편리를 일상 속에서도 만나게 하는 일입니다.

자유롭게 여행을 말하고
편하게 여행 이야기를 접하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여행을 배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여행을 조금 더 스스로의 방법으로 채우려면 
어느 정도 기술과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반적인 사진과 글, 기획 기술과 정보로는 부족한 점이 있죠. 

그들은 여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여행에 특화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거나
세계여행이나 특별한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전문적이거나 직업적으로 여행을 다루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에 필요한 생활기술을 나누고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일상 속에서도 만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촬영 같은 기술적인 교육도 있고
음악이나 축제 같은 경험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어느 부분이고 사람들 마음대로 입니다.

우리가 정한다고 그들이 하지도 않고 좋아하면 하는 곳이 여행대학 입니다.

앞으로 시작할 새로운 여행대학의 계획을 적는다면,
우리는 곧 여행 과정, 스터디그룹, 자유 수업 개설 등으로 나눠 
새로운 여행대학을 열 생각입니다.

그곳에는 여행 이야기 과정(도전, 낭만, 부부, 이색 등), 여행 작가 과정, 여행 사진 과정 등이 포함되고
이색적이거나 직업적인 여행자/작가/포토그래퍼 등이 스터디 그룹을 열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세계여행을 떠날 사람을 돕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여행 수업을 열 수 있는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스스로의 여행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돕죠.

그리고 말입니다.
'자유로운 문화조차 누군가를 통해 습득해야 하고, 또 돈 없는 사람이면 배울 수도 없다는 것'이란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문화를 누군가에게 습득하라고 한 적도 없고 습득할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과 비슷하고 꼭 맞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돈 없는 사람이면 왜 배울 수 없는지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배우면 됩니다.

우리는 여행하는 문화를 만들려는 상업적인 기업이니 만큼, 상업적인 부분은 온전하게 배제할 수는 없음을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상업적인 부분을 배제하기 위해 사실 우리는 '여행대학'이라고 부르는 ㅊ 님이 알고 계신 부문에서는 거의 상업적인 부분이 배제된 것도 사실입니다. 거의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행 콘텐츠와 문화, 공간으로 수익을 벌 생각이지, 수업을 들으라면서 수익을 얻을 생각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ㅊ 님이 생각하는 
상업적이고 안타까운 부분에서 고려되지 않은 부분은
누군가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어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여행 정보와 기술, 시간을 제공한다면
반드시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반된 구성이고, 수익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개설자 몫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수업을 여는 것에는 비용을 지불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10대의 어느 청소년과 50대의 어느 아저씨는 수업을 열고 수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꿈만 같던 관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우리는 수업을 여는 자격에 제한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편리하게 하려고 집밥, 위즈돔 같은 사이트(http://traveluniversity.camp)를 만들었고 70% 이상의 수익을 여행자가 가져갑니다.

우리는 자유롭고 재미있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 여행대학 3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245명 중 약 70% 이상이 직장인이었고
대다수가 삶에 큰 변화와 활력, 사람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여행을 소수의 문화로 몰고가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여행대학이 10대부터 60대까지 수강생을 받아 함께 어울려 여행을 말하는 것도 우리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문화가 '여행'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행대학만을 위한 문화가 아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상업적이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기에
우리는 다소 상업적이지만 생각보다 경제적이진 않습니다.

그리고 '여행대학이 대한민국의 여행문화를 바꾸려는 것도, 여행객들을 지원하려는 혁신적인 모습'에 큰 관심은 없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방향이고 혁신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왜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어설프게 하지 않아야 하는지, 그 점이 우리 생각의 시작과 끝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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