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호 Feb 16. 2016

열심히 돈만 벌었어요.

저는 꿈 대신에 돈을 선택했기 때문이에요.

목욕탕 옆 인간극장 162 - 김현정(치앙마이) 
2016년 1월 21일, 치앙마이 올드타운 

지난 한 해는 숱하게 벌였던 일에 파묻혀 지냈다. 그때를 떠올렸을 때 아쉬운 일이 있다. 사람에게 덜 다가가고 덜 마음을 열고 덜 이야기 했던 일이 아쉽다. 나는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말할 시간을 찾지 못 했다. "쉬운 사람이에요." 말만 하고 이야기 꺼내지 못 했다. 

늘 따뜻하거나 미련하거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를 구분하거나 제한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랬다고 믿었다.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스스로를 낮추면 곁에 두고 싶었다. 

지난 한 해는 과거 그 어떤 날보다도 여유를 찾지 못 했다. 어느 꿈을 꿨는데 그러면서 숨을 들이쉬다가 턱턱 숨이 막혀 체하곤 했다. 생각이 흩어져 잠이 들면 사람들은 걱정을 했고 이불을 덮어줬다. 바닥에 쓰러져 잠들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걱정을 했다. 

어느 날 일을 접었다. 나는 단지 꿈으로 향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말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고 일을 접는다는 사실이 서운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큰 파도처럼 후회가 밀려왔다. 일은 후회를 남기지 않았는데 사람이 미련처럼 남았다. 그 기간 동안은 어쩌면 사람을 잃고 얻었고 실망했고 배웠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보다 내게 놓인 현실이 단지 '일'로 엮였던 범위가 컸을 때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포항에서 틈틈이 서울로 올라와 인사를 했다. 여행을 한다면서 스스로는 여행하지 못 하던 때를 그녀는 기억해줬다. 가끔 새벽이 닳도록 자리가 이어지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정리를 거들곤 했다. 치앙마이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야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래요. 제가 이런 사람이었어요.” 말했다.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걷기만 해요. 하루에 한 4시간씩이요. 그리고 책도 보고요.” 


“최근에 다녀오신 곳이 있으세요?” 
“빠이요.” 


“어떠셨어요?” 
“우선 너무 추웠고요. 그리고 따뜻했어요. 사람 구경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어요.” 


“책은 어떤 걸 보세요?” 
“최근에는 세종 때를 다룬 역사소설 ‘구텐베르크의 조선’을 보고 있어요. 전차잭으로요.” 


“그리고 또 뭐 하는 건 없으세요?” 
“정말 먹고 자고밖에 없어서요. 걷는 거 4시간 책 보는 거 4시간 그렇게 나뉘어져 있는 것 같아요. 나머지는 그냥 먹고 쉬고 사람 구경하고 그래요.” 


“여행 다녀보니까 어떠세요?” 
“쓸 데 없는 걸로 살았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나라 정말 살기 좋은 나라구나 같은 생각도요.” 


“어디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방콕에서 시작해서 미얀마랑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그 다음에 다시 태국으로 왔어요.”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나요?” 
“캄보디아에서 캄보디아 친구를 알게 됐어요. 그 친구를 통해 그 지역 사람들과 친해졌어요. 매일 커피 한 잔을 먹는 커피 트럭이 있어요. 그런데 매일 오는 외국인은 제가 처음이래요. 헤어질 때 그러더라고요. 그 아저씨가 영어를 못 하셔서 혼자 갈 때는 손짓 발짓하고 그 친구랑 갈 때는 통역해주고 그랬어요. 제가 안 오면 서운해 하시고요. 그래서 캄보디아가 사람 때문에 제일 좋은 지역이 되더라고요.” 


“오늘은 뭐하셨어요?” 
“오늘에 일어나서 원래 기차 티켓 사려고 여행사를 갔는데 기차 티켓이 없다고 해서 버스 티켓을 샀어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 
“방콕이요. 방콕 가서 이틀 있다가 끄라비 가려고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우선 책 좋아해요. 그런데 책을 전차책으로 봐요. 그리고 걷는 걸 좋아해요. 버스 타고 하루 종일 버스만 탈 때도 있어요. 친구랑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해요. 그리고 빵 좋아해요. 빵 무지하게 좋아해요. 제 여행을 살리는 건 빵이 일조를 하고 있어죠. 아, 수영 경기 보는 거 좋아해요. 어릴 때 수영 선수였거든요. 중학교 때까지 수영 선수 생활을 했거든요. 그리고 소수의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으면 집중력을 잃어서요. 아, 구룡포라는 지역 좋아해요. 미술 작가 크림튼 좋아하고요. 여행하면서 시아누크빌을 좋아하게 됐어요. 캄보디아의 해변이에요. 지금은 그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나요.” 


“구룡포라는 지역은 왜 좋아하세요?” 
“어릴 때 고향이기도 하고요. 어릴 때 살던 지역이어서요. 저한테는 놀이터 같은 곳이에요. 그 지역 전체가 놀이터였거든요. 뒷산 갔다가 낮에는 바닷가 가서 놀다가 오후 되면 학교 운동장 가서 놀다가 그랬어요. 집이 목욕탕을 했거든요. 목욕탕으로 시작해서 목욕탕으로 끝나는 하루였어요.” 


“어제는 뭐하셨어요?” 
“어제는 빠이에서 마지막 쇼핑을 즐기고요. 아주 아주 싼 쇼핑을 즐기고요. 매일 가던 커피숍 사장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요. 그리고 100밧짜리 숙소 친구들과 마지막 밥을 한 끼 하고요. 그리고 차를 탔어요.” 


“내일은 뭐하세요?” 
“내일은 방콕 가서 숙소 찾아야 해요. 정말 여행할 때는 자는 거 찾는 게 제일 일인 것 같아요. 여행하면서 만났던 한국인 친구가 일요일에 출국한대서 그 친구 만나려고요. 음, 그리고 계획 잡고 살질 않아서요.” 


“초등학생 김현정은 어땠나요?” 
“너무 자신감이 넘쳤죠. 그냥 다 되는 줄 알았어요. 그냥 내가 대장인 것 같은 느낌이요. 어쩌면 지금 생각하면 철없이 이기적이었어요. 당연히 나랑 놀아줄 거야. 당연히 나랑 놀게 되어 있어. 당연히 우리 집에서 놀 거야. 상대방의 생각을 읽으려고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중학생 김현정은요?” 
“그 철없었던 김현정이 바보 같았구나 생각해서요. 중학교 때는 저 친구는 이 말에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상대를 먼저 생각하느라 내가 먼저 행동하려고 안 했어요. 굉장히 소심하게 조용히 어느덧 3년이 지나갔어요.” 


“고등학생 김현정은 어땠어요?” 
“고등학교 때는 아까 말했듯 힘들었어요. 그 힘들었던 순간 중에 인생 살아가는데 가장 고마운 선생님을 만나서 가장 감사해요.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책임감의 무게를 알게 됐어요.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어떤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 방어 능력 같은 게 생겼어요. 하지만 가장 소중한 친구도 만난 게 고등학교 때더라고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 책임감을 알게 돼서 반작용으로 책임 질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해요.” 


“대학생 김현정은 어땠나요?” 
“신났죠. 세상 술은 내가 다 먹겠다는 용기 백배의 자신감으로요. 한없이 열심히 놀았어요. 친구들과 함께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대학교 와서 다 풀어보겠다는 마음으로요. 근데 또 바쁘기도 했어요.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엄마 아빠 눈치 보여서 공부도 해야 하고요. 좀 계획적인 활동을 할 걸 하는 후회도 있어요. 전 오로지 학교 집 그랬거든요.” 


“졸업 그 이후로는 어땠어요?” 
“열심히 돈만 벌었어요. 저는 꿈 대신에 돈을 선택했기 때문이에요. 돈을 열심히 벌었답니다. 그 전에는 사람이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지키면서 살았는데요. 그러다가 오로지 돈만 보면서 그냥 살았는데 30대 넘어가면서 후회를 했어요. 예전에 대가없이 사람을 만날 때가 생각났어요. 너무 열심히 일만 해서 너무 일찍 지쳤구나 생각했어요.” 


“요즘은 어때요?” 
“완전 행복하죠. 역시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재밌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던 게 아니어서 그런 것도 같아요. 그리고 한편으로 나이가 걱정되는 게 한국 생활이더라고요. 여행하면서 외국 친구들에게 나이 얘기하면 놀라하더라고요. 여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제 ‘해볼까?’ 하는 용기가 생기고 있어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앞으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 굳이 먼 미래를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여행에서 알게 됐어요. 여행 떠나기 전에는 3개월 뒤에는 어디 있을까 숙소를 미리 예약해야 할까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여행을 떠나니까 그냥 오늘 내일을 걱정하게 되더라고요. 여행을 떠나면서부터는 몇 개월 뒤 1년 뒤를 생각하지 않게 됐어요. 지금 현재는 그래요. 지금만 생각하고 있어요.” 


“스스로에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요?” 
“의리. 사랑은 의리. 그리고 타이밍 같아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으세요?” 
“적어도 힘든 걸 못 알아보지는 않는 사랑이요. 예전에 힘들었구나 하고 지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하지 않아도 힘든 걸 알아보는 사랑을 하고 싶어요.” 


“결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까 얘기했듯 고등학교 지나면서 책임지는 걸 두려워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요. 책임이 있는 결혼이란 걸 회피하고 싶어요. 힘들었을 때 그걸 책임지지 못 하고 회피할까 봐요.” 


“스스로에게 버킷리스트가 있다면요?” 
“생일 축하해주는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어요. 그냥 혼자인 사람, 아무에게도 생일 축하를 받지 못 하는 사람 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오면 그날은 생일 축하를 엄청 많이 해주는. 생일에만 와도 되는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요?” 
“엄마.” 


“왜요?” 
“보통의 엄마 딸 관계가 아니거든요. 엄마하고 정말 웬만하면 말을 안 해요. 웬만한 아들만큼 말을 안 해요 그런데 여행하면서 10대 때부터 한 번도 말을 제대로 안 했던 엄마와 같이 여행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 엄마와 관계가요. 농담을 가끔 하긴 해도요. 하루에 1분 정도? 그것도 농담만이요. 진지한 얘기 절대 하지 않는 사이예요.” 


“죽는 건 어떤 걸까요?” 
“책임감을 놔도 되는 거요.” 


“어떻게 죽고 싶어요?” 
“적어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죽음. 살 때 잘 알리고 살지 않았으니까 죽을 때만큼은 잘 갔구나 인사를 해줄 수 있는 죽음이요.”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나요?” 
“잘한다. 잘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아야 할까요?” 
“할 때 제대로 하는 일상. 이왕 할 거면 제대로 이왕 놀 거면 제대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 
“그냥 고마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