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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Feb 16. 2016

스무 살 때 저는 학교 가기가 싫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인간관계가 힘들었어요.

목욕탕 옆 인간극장 163 - 홍은총(치앙마이) 
2016년 1월 27일, Bodhi Tree Cafe 

재작년 여름이었다. 일상을 듣기로 했으면서 시간을 찾지 못 했다. 서로에게 밀려드는 내일, 다시 내일은 만남에 기약을 두지 않았다. 계획하지 않고 치앙마이에서 만났다.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하고 있었다. 라이카 필름사진기를 손에 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때때로 외롭다고 했다. 배에 탈이 났고 음식들이 아른거려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느낌으로 찾겠다며 골목을 헤매다가 어느 카페에 앉았다. 수다를 떨었다. 


“안녕하세요. 그냥 이야기 해요. 요즘 잘 지내요?” 
“네, 여행 와서 나름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여행은 어때요?” 
“혼자라서 좀 생각보다 재밌을 때도 있는데 생각보다 외로울 때도 있고요. 순간순간 다른 것 같아요.” 


“오늘은 어떤가요?” 
“좋아요. 여기 카페를 찾았잖아요. 여기 카페가 마음에 들거든요.” 


“어제는 뭐했어요?” 
“어제는 치앙마이 아는 분이 있어서 오전에 온천에 갔다가 커피를 마시고 마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힘든 일정이었어요. 너무 뻔했던 여행이라서요.” 


“내일은 뭐해요?” 
“오늘 요가 클래스를 등록을 해서 내일부터 요가 클래스를 갈 생각이에요. 나머지는 책 읽다가 사진 찍다가 걷다가 그러겠죠.” 


“좋아하는 것들 이야기도 해주세요.” 
“혼자 있는 거 좋아해요. 카메라 들고 걷다가 사진 찍는 거 좋아하고요. 뜬금없이 내가 좋아하는 게 나타나는 거 좋아요. 이 카페처럼요.” 


“또 있어요?” 
“초록색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녹차도 좋아해요. 아 또 있어요. 책 읽는 거 좋아하는데요. 그 작가 중에 이병률 작가 김동영, 윤대녕 작가도 좋아해요. 좋아요.” 


“어떤 책들 좋아해요?” 
“주로 사람 이야기 써져있는 거 좋아해요. 그래서 산문집이나 여행집이요. 그런데 너무 그러 것만 읽다보니까 생각의 폭이 좁아지는 것 같아서 조금씩 소설도 읽고 있어요.” 


“어떤 사진들 좋아해요?” 
“가까이 클로즈업 된 사진이요. 뭔가 풍경 사진보다 사람도 가까이서 찍는 게 좋고요. 벽이나 사물들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사진이 좋아요.” 


“요새 읽는 책 있어요?” 
“비브르사비. 배우 윤진서가 쓴 책이에요. 이번 여행에 책 두 권 들고 왔는데 그 중 하나예요 가벼운데 내용은 또 가볍지 않아서 여행 때 읽기 좋은 책이에요.” 


“어릴 때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초등학생 홍은총은 어땠어요?” 
“뭔가 엄청 까맸던 걸로 기억해요. 만날 남자애들이랑 노는 걸 좋아해서요. 롤러스케이트 타고 말뚝박기 하고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그랬어요. 학교 끝나고 만날 남자 애들이랑 놀러 다녔어요. 아 그리고 일기 쓰는 걸 좋아했어요. 만날 일기를 초록색 일기장에 일기를 빼곡하게 써서 선생님한테 답장 받는 걸 좋아했어요. 선생님이 만날 빨간색으로 답장 써주시잖아요.” 


“중학생 홍은총 때는요?” 
“저 전교회장이었어요. 엄청나죠? 머리가 바가지 머리에다가요. 전교회장인데 파란색 잠바 입고 다녔거든요. 중학교는 그런 잠바 입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만날 입구에서 걸려서 혼나서 회장인데 회장 같지 않은 회장이었어요.” 


“고등학생 홍은총 때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나 어땠지? 뭔가 많은 일이 있어서 뭐라고 정리하기 힘든 시기예요. 학교에서 제기 지휘를 했거든요. 어쩌다 보니 하게 됐어요.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서요. 그래서 구령대 위에서 키가 작은데서 지휘하고 남자애들이 놀리고요. 학생회도 했거든요. 그래서 축제 때 양동이 들고 나르고 축제 기획하고 그랬어요. 남녀공학이어서 남자친구도 잠깐 있었고요. 고3 때 사귀어서요. 독서실도 같이 다니고요. 뭔가 그때 저는 제일 행복했던 시기 같아요. 고3 때요. 애들 힘들다고 하잖아요?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고 지냈던 것 같아요.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는데 스트레스 덜 받았어요. 제일 행복했던 시간 같아요.” 


“이제 나이를 조금 더 먹었네요. 스무 살 홍은총은 어땠어요?” 
“스무 살 때 저는 학교 가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뭔가 사람들이랑 겉으로는 잘 어울리는데 집에 와서는 속앓이 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자퇴할 거라고 6월까지 그랬어요. 학교 가기 싫다고요. 인간관계의 가벼움 때문에 힘들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인간관계가 힘들었어요.” 


“스무 한 살 홍은총은요?” 
“스무 한 살 때 전과를 했어요. 원래는 국문과였는데요. 의상디자인학과로요. 사실 의상디자인이 중학교 때부터 하고 싶었거든요. 드디어 하게 됐는데요. 스무 한 살 때도 좌절을 많이 겪었어요. 그림을 엄청 특출나게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요. 디자인을 엄청 잘 하는 것도 아닌데요. 수업 들으면서 재밌긴 했는데 그때도 종종 좌절을 겪었죠. 만날 좌절만 겪나요(하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스무 두 살 홍은총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지금 하고 있는 가방 사업을 시작했었죠. 창업에 대한 강의를 들었었어요. 3달 동안이요. 그걸 들으면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요. 우연히 유튜브에서 시각장애인 아이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점자 가방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제 손으로 가방을 만들고 제 이야기를 준비하고 가게에 가서 설명도 해보고 뭔가 도전이었어요. 안 해봤던 걸 해보게 됐고요. 제가 제 이야기를 하는 걸 어색해 하거든요. 그런데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하게 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녀는 ‘MELT THE ICE'라는 이름으로 읽을 수 있는 가방을 만들고 있다. 가방에는 이야기 있는 점자가 담긴다.) 


“스물 셋 때는 어땠어요?” 
“스물 셋 때 뭐했죠? 그때도 휴학을 했어요. 제가 휴학을 2년을 했는데요. 휴학을 했었죠.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때도 가방 만드는 일을 계속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었고요. 그해 12월에는 동남아시아 배낭여행 갔었어요. 뭔가 그때 집에 엄청 오래 있었어요. 그때 엄마랑 시간 많이 보냈던 게 좋았어요. 대학 다니면 집에 오래 있기 힘들잖아요. 스무 살 넘고 나서 엄마랑 그렇게 시간 많이 보낸 게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벌써 스물 넷이에요.” 
“가면 갈수록 왜 이러는 걸까요. 저 아직 스물 다섯인데요. 학교를 다시 갔죠. 모든 것은 학교 위주죠. 기억할 시간이 필요해요. 아, 학교를 다시 갔고요. 이제는 내 나이가 많은 나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끝.” 


“스물다섯 요즘은 어때요?” 
“지금 좋아요. 왜냐면 지금이 폭풍 전야 같은 시간이거든요. 5월에 졸업 패션쇼를 하는데요. 그 전에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지금 여행 온 거예요. 지난 학기도 너무 할 게 많아서 생각할 게 너무 많으면 생각할 수 없는 시기였어요. 지금은 보고 싶은 거 보고 걷고 싶은 데 가고 그래서 좋아요. 그래도 잘 할 거예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지금처럼 좋을 것 같아요.” 


“문득 하고 싶은 일 있을까요? 버킷리스트 같이 말이에요.” 
“전 일단 제가 쓴 글이나 사진이 너무 좋거든요. 그걸 엽서나 책 같은 걸로 만들어서요. 우리나라에도 팔고 제가 여행했던 나라에도 팔고 다른 사람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고요. 저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요. 그게 카페가 됐든 게스트하우스가 됐든. 아이슬란드 꼭 가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사랑은 어떤 거예요?” 
“관심 받고 가까이에서 들여다가 보는 거요. 만날 들여다가 봐요 해요.” 


“어떤 연애를 하고 싶어요?” 
“뭔가 눈빛만 봐도 통하는 그런 연애요.”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요. 결혼을 하면 또 다른 행복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결혼을 하고 싶어요?” 
“눈빛만 봐도 통하는 그런 결혼이요. 결혼해서 애 낳고 나면 서로에 대해서 싸늘하게 식고 그런 게 없지 않아 있잖아요. 없을 순 없겠지만 매일매일 뭔가 그 마음이 새로운 결혼을 하고 싶어요. 결혼을 하고도 같이 가족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지금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요?” 
“엄마요.” 


“왜요?” 
“사실 이번 여행 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셨거든요. 엄마도 아빠도요. 오기 3일 전엔가 엄마랑 잠깐 얘기를 했었는데요. 그 전까지 제가 하는 말을 이해를 못 하시다가요. 어느 포인트 한 부분에서 제 마음을 이해하게 되신 거예요. 나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없지만 그 한 마디가 이해가 된다고 잘 다녀오라고 해주셔서 그게 감동이었어요. 솔직한 대답 같았어요.” 


“죽는 건 어떤 것 같아요?” 
“죽는 거죠. 언젠가는 죽는 거죠. 언젠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떻게 죽으면 좋을까요?” 
“자다가요. 자다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5월만 잘 넘기면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을까요?” 
“혼자 여행을 해보니까 나름 좋은 것 같아요. 충고 그런 걸 잘 못 해서요. 해줄 말이 이것밖에 없어요.”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아야 할까요?” 
“음, 어떤 일상. 뭔가 내가 시간을 채워간다는 느낌 같은 하루하루. 시간에 밀려서 사는 느낌이 너무 싫어요. 제가 채워간다는 하루하루면 엄청 행복한 하루 같아요.”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나요?” 
“원래 이렇게 인터뷰가 긴가요? 뭔가 너무 어색해요. 제 이야기를 하는 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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