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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Mar 06. 2016

곧 백수가 될 예정이라고 했고 그냥 산다고 했다.

요즘 필리버스터 보고 지내고 있어요. 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목욕탕 옆 인간극장 167 - 김민규(서울)
2016년 2월 27충무로역 스타벅스

나는 요 며칠 헌법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지 체감했다. ‘필리버스터는 끝이 예쁘지 않았지만 서로 배웠다그들은 정치를 한다면서 아직 어른이 되지 못 했다이상한 일이다교과서에서 보던 그런 어른들은 어디서 만나는지 모르겠다

따뜻한 인연을 기다리다가 연락이 닿았다동갑내기 김민규를 만났다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기운을 얻는 사람을 만났다그는 라디오를 하고 싶다고 했다그런 마음으로 팟캐스트 당신의 물건을 꾸리고 있었다시작은 필리버스터’ 이야기였고 틈틈이 그는 관련 소식을 살폈다일상을 듣기로 했다말이 쏟아졌고 주워서 담다가 포기하고 녹음했다곧 백수가 될 예정이라고 했고 그냥 산다고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요즘 필리버스터 보고 지내고 있어요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요즘 하는 일은 어때요?”
팟캐스트 하는 거 계속 하고 있고요 그 외에 특별한 일들은 없어요빵집 알바도 하고 있고요회사의 일을 인수인계 하는 중이고요연애를 해야 하는데 연애를 못 하고 있어요자다가 깬 지 얼마 안 돼서 말을 못 하겠네요.”


좋아하는 일이 있어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라디오도 좋아하고 팟캐스트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제가 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것도 많이 들어요여행도 좋아하는데 요즘은 잘 못 가고요먹는 것도 좋아하고요치킨도 좋아하고요먹는 양이 되게 줄었어요치킨은 한 마리를 혼자 다 못 먹어요예전엔 다 먹었거든요나이 먹은 것 같아요그 외에는 뭐 별 거 없는데제가 그렇게 다채로운 사람이 아니에요.”


연애는 어때요준비하고 있어요?”
연애를 준비하고 있냐고요연애는 늘 시도하고 있어요잘 안 돼요옛날만큼 쉽지 않아요옛날에도 똑같이 어려웠지만요아주 전성기일 때 제 인생 전체를 봤을 때 가장 사람들에게 탁 던질 수 있는 때가 이미 두어 번은 있었구나 생각해요나는 연애에 필요한 운을 다 썼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나를 만나줬던 친구들이 대단한 운을 주고 갔구나 생각해요앞으로 그런 운이 있을까 생각해요전 누군가를 항상 좋아하고 있죠.”


"팟캐스트는 어떻게 하게 된 거에요?"
"제가 당신의 물건이라는 팟캐스트를 하고 있어요원래 라디오 DJ를 하고 싶었고요그런데 아이튠즈가 만들어지고 팟캐스트가 생겼을 때부터 서비스를 주시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에요이건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꼼수보다 더 먼저 그 포맷을 하려고 생각했어요

제가 공주에 살았는데 공주교대를 이전하는 문제가 있었어요그게 시위도 하고 민감한 정치 이슈고 행정 이슈라고 생각했어요공주 쪽에 있는 지역 신문사 기자랑 시의원과 국회의원과 같이 붙여서 같이 논의를 하자고 이메일 보내고 그랬어요이 포맷 대박이라고심의도 없고 무엇도 없으니까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 말했어요그 당시에 제안을 받은 사람이 누가 듣냐고 해서 안 한다고 했어요그래서 그걸 접었거든요. 1년 뒤 나꼼수가 나오고 그래서 피눈물을 흘렸어요역시 김어준은 흐름을 잘 탄다 생각했어요팟캐스트가 직업이 지금도 아니지만 당시 취업하고 올라올 때 물어 보면 난 라디오를 하고 싶은데 방송국 직원이 되긴 싫다고 하면서 팟캐스트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그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사실 팟캐스트가 발전할 때마다 계속 무엇이든 했어요개인 프로젝트도 해보고 지인들에게도 제안하기도 하고요제가 옛날에 일했던 카페에서 팟캐스트 스튜디오 만드는 펀딩도 진행하고요제가 하고 싶은 거라서 계속 만들어서 했어요그리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당신의 물건이란 팟캐스트는 전 제 프로그램을 하고 싶고 같이 하는 향주 씨는 사람 만나는 그런 걸 하고 싶어서 그게 잘 맞아서 하게 된 거예요향주 씨와 제주에서 만났는데 한 번 해봅시다.’ 하다가 결국 하게 됐어요작년에 시작했고요. ‘당신의 물건이란 방식은 제가 컨텐츠진흥원에서 한 번 했던 프로그램 소재예요 사실그때 잠깐 하던 걸 지금도 하고 있는 건 저희밖에 없어요.“


지금 하는 일은 왜 그만두는 거예요?”
전 이제 일을 그만두면 나쁘게 헤어지지 않는 법을 알아요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상처 받진 않아요대신에 며칠 앓긴 하죠내가 되게 못 했구나 자책하기도 하지만요나중에 대표님과 정리하기로 합의하고 식사하면서 서로 잘못했다고 이야기 했어요서로에게 잘못이 있는 거예요배려하지 못 한 거예요새로운 사업을 하려면 기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요우리의 사업이면 받아들여야지 왜 대표님이 불안해하기만 하고 결정을 못 하는지 이해를 못 했어요몇 개월이나 소강상태를 이어가니까 이럴 거면 하지 말자고 했어요밤은 나만 세고 사업은 나만 하냐 했어요 사실스타트업도 아니고 중소기업도 아닌데 신사업을 하려고 하면서 그걸 못 하는 거예요그분이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어도 그곳이 가족 기업 같은 곳이라서 사공이 많았어요꼭 최고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기왕이면 일을 하려면 일을 자랑할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이 일은 내가 자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이 일에 대한 자존감이나 자부심이 있을까 생각했어요힘들다가 그걸 다 털었어요이직해야 하니까 두 달 정도 유예기간을 달라고 했어요.그리고 허허 웃으면서 정리했어요.”


고생했어요.”
재밌어요그래서 요즘 매일 얻어먹고 다녀요이제부터 만날 소고기 먹을 거라고사이는 좋아요농담도 하고요.”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벗어나 볼게요옛날 이야기 해볼게요초등학생 김민규는 어땠어요?”
왕따였어요되게 소심했고요친구 별로 없고요괴롭힘을 당하는 왕따는 아니었어요무관심을 받았죠나를 싫어하는 건 꼭 짱 같은 애들이었어요중간계 애들이 절 싫어하면 조용히 있으면 되는데 젤 센 애들이 절 싫어했어요근데 꼭 걔랑 짝이 됐어요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그런데 전 좀 순수했어요애들 때니까요흙장난도 하고 놀았어요좋았죠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해요초등학교 동창 이런 친구들 한 번씩 만나면 마음이 별로 안 좋아요그때 그대로면 사이 안 좋은 걸 이해하겠는데 그대로 커서 서른이 돼 있더라고요제 첫 사랑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있었거든요고백하려는데 전학을 갔어요세이클럽이 생기면 그 친구를 찾고 카카오스토리여도 그 친구를 찾고뭐가 새로 생기면 그 친구를 찾고 그랬어요요즘 그 친구를 접하면 조금 애잔함 같이 그래요.이제 우리도 순순하지 않구나 그런 생각초등학생 때 노는 거 좋아했어요 진심동네 친구들하고 숨바꼭질 하고요저도 애들 많이 괴롭혔어요주로 여자들이요이쁜 애들그래서 절 다 싫어했어요나중에 알았는데요제 첫 사랑은 제가 싫어하는 줄 알았대요좋아해서 괴롭힌 건데부족한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었어요조금 우울하긴 했지만요.”


중학생은요?”
조금 비슷해요왜냐면 초등학생 친구들이 그대로 같이 올라왔거든요여전히 날 괴롭혔고졸업하고 나서 사회 나와서 연락도 오고 그랬어요전 기억도 안 나요 그 애 이름이미안하다고요중학교 때인가부터 제 사촌하고 같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거든요그래서 편했어요제 사촌은 공부도 잘하고 사람들 하고도 잘 지내고 운동도 잘하고 그랬어요좀 생김새가 닮았어요그래서 사촌이라고 하면 학교 생활은 편했지만 그래도 절 괴롭히는 애는 있었어요너무 싫어하는 애 한 명이 있었고요그리고 중학교 때 우울한 게 심했어서요.자살 시도도 하고 그랬어요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만 들 때였는데요이만한 집에 있는 식칼 가지고 어딜 찔러야 고통 없이 죽지 그런 걸 몇 번을 했어요교복을 입고 다녔고 아버지가 매일 차로 데려다 줬어요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귀찮으셨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하셨을까그게 자식 키우는 즐거움 아닐까 생각해요제가 양산 출신인데요학교가 지금 60년쯤 됐어요역사가 돼서요제가 들어갔을 땐 50년쯤 됐어요교장 선생님이 만날 50년 전통의 50년 전통의 그런 걸 많이 이야기 했어요우리 때까지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는데요선생님에게 대들어도 사회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는 정서가 있었어요사실 대들어도 애들 마음 속이나 부모님 속에서는 사회적인 인식으로는 선생님께 대들면 안 된다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정말 생 양아치들 빼고는 선생님들과 사이는 다 좋았어요.”


고등학생은요?”
그때부터 제가 좀 피기 시작했어요공부를 못 하는 편이고 안 하는 편이었는데요그때 성적이라면 공고나 상고를 멀리로 가야 하는데요아버지께서는 절대 그런 걸 바라지 않았어요선생님이나 상담 선생님은 다 멀리 가라고 하셨어요경주 같은 곳으로요거길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아버지께서 학교를 안 보내면 안 보냈지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전 그때 용도에 있는 방송 기술 배우는 학교에 간다고 했어요그런데 그때 마침 집 근처 새로 지어진 학교에 커트라인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그래서 아버지가 제 동의 없이 그곳을 썼어요아는 친구들이라고는 제 사촌과 몇 명 빼고는 다 처음 보는 거예요절 괴롭히던 애들은 다 멀리 갔고요그때부터 피기 시작했어요방송부 아나운서를 시작했고요우리 학교 1회 축제 MC를 제가 봤어요욕을 엄청 먹었지만요절친이라는 친구들도 그때 만나고요많이 폈어요성격도 많이 바뀌고요그리고 전 예체능 반을 갔거든요. 2학년부터 문과 이과 예체능으로 나눴는데요전 문과도 싫고 이과도 싫었거든요전 방송 작가로 간다고 했어요그래서 예체능이라고 했어요예체능은 한 반이었어요거기가 체육 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요유일하게 통제가 안 되는 게 저였어요자랑은 아니지만전 방송 쪽으로 간다는데 체육 선생님이 도와줄 게 없는 거예요그래서 선생님이 손을 놓는 건 아니었는데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야자 빠져도 뭐라고 안 하시고요야자 다 합쳐서 7일도 들어가지 않았어요야자 분위기가 굉장히 엄숙하고 잘 되어있는 곳이었거든요공부하려면 야자하는 게 맞아요그때 막 시립연극단 만든다고 거기 가서 연극하고 알바 하고요그런데 대학은 또 수시로 갔어요잘 가서 선생님이 잘못한 건 없어요잘 풀어졌어요축제 MC 보고 나서 방송부 그만 두고 사진부 했어요나중에 알고 보니까 축제 MC 노리는 애들이 되게 많았거든요축제 MC를 찾고 있는데 네가 할래그래서 제가 한다고 했던 건데요그래서 절 쫓아냈어요비운의 운명이었구나그때 방송국 쫓겨나고 많이 울었어요그래서 그게 트라우마가 돼서 서울 와서 회사 생활하고 지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들어요애들이 무의식 중에 상처를 준 거거든요학교 지나가면서 방송부 애들 만나면 제가 죄인이 된 기분인 거예요걔네들 입장에서 누구를 쫓아낸 게 처음이라 합리적으로 못 했을 수도 있죠그때 제가 기계 막 부수려고 하고 그랬어요여자들은 합의를 하고 제게 나가달라고 이야기 했고 남자들은 놀랐어요그때 학교 끝나면 집까지 30분씩 걸어갔는데요거의 2주 동안 매일 울었어요억울하고 분하고펑펑 울었어요나가주겠어그래서 사진부로 옮겼는데 너무 좋았어요아버지 필름 카메라 가지고 다녔어요별 거 아닌 사진인데 다 늘어놓고 좋아하고요남은 게 많은 학교 생활이었어요.초등학교 중학교는 기억이 잘 안 나고요사촌하고 많이 비교를 당했거든요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학생회장이고 그래서요방송부 라디오를 시작하고 축제 사회를 보면서 길이 달라졌어요서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대학생 때는 어땠어요?”
대학생 때대학교 가기 전부터 대전에 살사 동호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대학교 OT를 간다는 핑계로 동호회 전체 MT를 갔어요원래 그러면 안 되거든요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원래 초급을 듣고 그러고 나면 서로 면이 있을 때 제안해서 가는 건데요가도 되겠구나 하고요저는 대학교도 수시로 합격했고 공주나 대전에 재밌는 거 없을까 하다가 살사 동호회를 찾았는데 개강 전에 그 동호회에서 MT를 간다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 OT를 핑계로 대전에 1주일을 먼저 올라가서 거길 갔어요웃긴 상황이에요동호회 분들이 보기엔요. 6개월 다닌 사람이 와야 하는 곳인데 100명이 있는 곳에 제가 갔고 막내였어요처음 보는 앤데 여길 온다고 해서 신청했을 때부터 사람들이 놀랐대요살사를 시작하면서 1학년 때 학점을 4개를 받았어요그래서 학사 경고 직전까지 갔는데 그건 안 받았어요살사 다니고 서울에 공연 보러 다녔고요첫 학기 시작했을 때 무전여행도 갔어요드라마 '부활'을 좋아해서요빨간 등대 하얀 등대가 있는 곳이 있어요제가 5만 원 들고 거기 가는 차비를 2만 5천 원을 썼어요거기서부턴 고난과 역경이었어요관광지인데 비수기여서 아무 데도 연 곳이 없고요버스 타고 트럭 빌려 타고 다니고 사람들이 무전여행이라니까 돈을 빌려주고 밥을 사주고 찜질방에 다니면서 그랬어요

2학년부터는 그래도 열심히 다녔어요. 1학년 때는 정말 열심히 놀았고요. 1학년 때 그때 생각나는 게요천안에 있는 살사 동호회 5주년 파티였는데요가장 작은 게 홍삼이고 제일 큰 게 김치냉장고였어요그거 때문에 파티에 6-700명이 왔거든요동호회에 김치냉장고 공장에 다니는 분이 있어서요그때 제가 그 냉장고를 탔어요김치냉장고 '딤채'를 타와서 집에 보냈어요그때 이후로 딤채가 제 별명이 됐어요.

제가 들어간 과가 신설과였어요디지털방송과였어요애들이랑은 별로 안 친했어요질서도 없고 술만 먹어서요공부를 했으면 자주 갔을 텐데요그래서 외부 취미를 많이 했어요서울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어요지금이라면 못 할 짓들을 많이 했어요그때 버스가 서울까지 한 시간 걸리는데요학교 버스를 타도 되고요주말마다 갔어요그때니까 그랬죠선배들이나 동기들과 이야기 할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필드에 나와서 많이 만났어요."


대학을 나온 다음은 어떻게 지냈어요?”
대학을 나왔을 때 제가 20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만드는 곳에 들어갔었는데요무보수였어요대표와 제가 아는 사람이었어요마케팅 팀장과 면접을 봤는데 코드가 잘 맞았어요당신들이 고시원비만 내주면 생활비는 제가 어떻게 해보겠다 했어요그래서 거기서 고시원비를 내주고 3-4개월을 다녔어요제가 운이 없다고 생각한 게 뭐냐면요그곳이 지금이면 스타트업인데요밤을 새고 미래 구상을 하는 시점을 지나고 제가 들어간 거예요초기 창업자들은 번아웃(Burn-out)이 돼서 제가 들어온 시점에 나가고요그런데 이 회사에 투자한 회사는 그때 이곳은 수익을 내야 한다고 광고를 따와야 한다는 분위기였어요제가 지금이라면 비디오머그 같은 영상을 만들려고 했는데요그런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그러다가 회사를 나와서 백수를 지내면서 친구 집을 전전했어요집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공연기획사에서 인턴 일을 했어요정직원 제안을 받을 때에는 그 판이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일은 재밌는데 더 못 하겠다고 했어요그때부터 카페베네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그 분야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래도 살겠는데생각했어요지금 생각하면 저는 섹터를 다양하게 넘나들었던 사람이에요의도하지 않았지만요되도록이면 진짜 다양한 걸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또 노가다를 하다가 팟캐스트를 하다가 비즈니스 쪽을 하다가 그랬어요일을 하다보면 청년의 감수성이었다가 NGO 감수성이다가 그래요

전 제가 뭐가 될지 모르지만요전 그래도 일을 배울 만큼은 다 해보고 나왔어요며칠 해보고 저하고 안 맞네요하고 나오진 않았어요.나도 월세를 내야 하고 카드값을 내야 하니까요당연히 일을 해야 하지만나쁜 일만 빼고 다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제가 서울에서 주유소 알바를 하고 있으면 정말 뜬금없겠지만요주유소 알바는 밑에 내려가서 해도 되니까요서울에서 있으면서 묘하게 걸치는 다리가 있거든요라디오를 하기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확실한 제 사업을 하기 위한카페 알바를 하더라도 여기에 그래도 있는 거죠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묘한 그런 게 있어요서른쯤 되면 지방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요올 한 해 계속 그 생각을 해보려고 해요왜냐면 집이 계약이 1년 정도 남았거든요지금 집이 되게 좋거든요지금 집에서 10년 살라면 10년 살겠어요결혼 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올해나 내년에는 결혼을 할 계획이었지만 지금 결혼은 뭐 헤어졌으니 파토가 났고요결혼하면 한 단계 성장하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아쉽죠나는 내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요나 하나는 먹여 살린다는 걸 알았어요결혼을 하면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고 다른 도리를 해야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더라고요.

생각보다 서울 온지 얼마 안 됐어요. 5-6년밖에 안 됐어요대단한 걸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지만 요즘은 제 평범함을 받아들이려고 해요먼지 같은 존재라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솔직히 친구들과 자기고백 같은 걸 하면요전 어릴 때부터 제가 평범함을 받아들이기 싫어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어릴 때부터전 평범한 걸 피해갔어요그렇다고 제가 학생회장 한다거나 시민운동 한다거나 하진 않았지만요그래서 제가 있는 모임에서는 저 같은 사람이 없거든요그래서 모이면 제가 있고 없고 차이가 굉장히 커요제 친구들 다 직업 군인이거든요전 공익인데 그래도 고생담은 제가 제일 많아요그래서 최근까지 그걸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제가 평범한 사람이고 미미하고 먼지 같은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기 정말 힘들었어요별거 아니구나 나스스로 뽕 맞는 듯 위안을 삼고 자기 위안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는 요즘이죠난 평범해난 평범한 걸 받아들이기 싫었던 사람이야이렇게 정의되고 있죠 요즘전 팟캐스트를 하고 그런 걸 어디서 배웠네 뭐 그런 게 특이하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그러지만 그냥 전 그냥 당연한 거거든요그냥 하는 거거든요되게 어려운 일을 아무렇게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전 그런 사람이 될까 그런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요.”


요즘은 그래서 어떻게 지내요?”
요즘은 그래서 몇 가지 구상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일을 그만두면 늘 회사 하나 차릴까 싶은 병이 늘 오거든요그래서 우리 회사 대표님은 우리는 사무실 빌려주고 법인 만들어주는 게 일이니까요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여름 때까지 알바 하면서 목돈이나 좀 만들까 생각해요이제 추울 땐 지났으니까요추울 때 쫓겨나면 억울하니까요우리 집은 채광이 잘 들기도 하고요요즘은 이것저것 구상을 하고 있어요내년에는 유럽에서 하는 라디오 국제 컨퍼런스도 갈 거고요올해는 당장 다음달에 행사라서 못 가고요유럽 라디오 시장의 미래 같은 걸 다루는 곳인데요전 팟캐스트를 사실 우회해서 하는 거거든요라디오를 하고 싶은 마음을 돌아 돌아서 하고 있는 건데요그런 부분을 공부하고 있어요본업을 하면서 라디오를 하는 게 쉽지 않아서요그런데 해외는 라디오만 하는 것들에 대한 시장이 있어서 실제 그쪽 모델이 한국에서 가능할까 생각해요팟캐스트 네트워크가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 다 있거든요각자 컨텐츠들이 있으면서 네트워크를 연대하고 광고를 받고 수익을 만들면 다 할 수 있거든요해외는 이 시장이 분명 커지고 있거든요잘 만들면 이 모델을 잘 꾸리면 어느 땐 tvN에서도 인터넷 라디오 채널을 만들지 않을까그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그래서 내년에 그 컨퍼런스를 가려고 영어와 이태리어를 공부하고 있고요그 비행기 티켓을 마련하려고 알바를 하고 있거든요거기 가면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거든요작년에 그 행사에 우리나라 PD가 두 명밖에 안 갔다고 해요올해는 더 간다고 하지만요가서 들어야 아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제가 좋아하는 일이니어쩌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지 않을까 느낌이 들기도 해요.”


앞으로는 어떨 것 같아요?”
조금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사실 지금도 제가 살고 싶은대로 살긴 해요살고 싶은대로 사는데 여유가 없는 거죠그게 금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말이죠턱밑까지 올라와도 제가 살고 싶은대로 사는 거죠가고 싶은 데 가고 먹고 싶은 거 먹고는 있지만요.나이 들면 그런 여유는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제가 살고 싶은대로 살지만 좀 여유 있는전 그 장면이 좋았는데요미생에서 보면요 장그레가 오과장과 피티(PT)를 하고 나서요우리는 상사맨이잖아그렇게 하는데요그 회의를 주관하면서 들었던 사장이 그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거예요그래서 회의 끝나고 나가면서 골프 약속이 있었는데 오늘은 회사에 좀 있고 싶다 기분이 좋으니까 그러면서 약속을 미루는 거예요회사에 더 있고 싶다면서 말했던 그 여유가 좋았어요그건 직급이나 직함이 아니라 나이나 경험보다는 그 마음의 여유회의하러 모였는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요 하면서 산책도 조금 할 수 있는 여유요어떤 것이 되었던지요누군가 상담해 줄 때도 세상 빡시게 살아야 돼세상이 얼마나 힘들지 알아그러는 게 아니라요그냥 안 그래도 돼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나 같은 사람을 많이 만들어서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버킷리스트처럼 해봐야겠다 싶은 일들이 있어요?”
이탈리아 베니스에 가서 5년 정도 가서 사는 거요베니스나 그리스나세계일주 이런 건 바라지 않고요그곳 게스트하우스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여행객들 계속 만나면서 있다가 오고 싶어요정말 좋겠어요되게 당연한 건데요진짜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어요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왜인지 모르겠지만요전 결혼은 하긴 할 거 같거든요기왕이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하고 어떤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결혼을 하고 싶어요내가 있으면 그 사람이 의지되고 그 사람이 있으면 내가 의지가 되고요우리 아버지처럼 우리 부모님처럼 하고 싶어요.”


이상형은 어때요?”
오연수요전 이거 확실 하거든요손지창 와이프 되시는 분이요지적이고 가끔은 섹시하고단발머리가 엄청 잘 어울리는 사람이요.제 이상형이에요짧은 머리가 잘 어울려야 해요지금은 거기까지 욕심내진 않아요아니 나는 오연수 그리고 단발머리까지는 지금도 욕심 부리지만요사실 하나가 더 있었거든요하의실종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요즘은 하의실종은 이제 포기했어요이제 그런 사람은 못 만나겠구나 생각해서 뺐어요오연수 씨처럼 지적으로 보이면서 짧은 머리도 어울리면서 장난을 치고 싶으면서도 안 드러내도 섹시한 거 있잖아요그런 사람이 그런데 있더라고요사실 아이리스2가 너무 재미없어서 싫거든요그런데 오연수 씨가 나와서 다 챙겨봤어요어떤 계기로 오연수 씨를 알게 됐는데요뭐지 이 사람이렇게 생각했어요.”


본인에게 죽는 건 어떤 의미 같아요?”
언제든 올 수 있는 거죠그리고 제발 고생 좀 안 시키고 죽었으면 좋겠어요그게 누가 됐든지마음고생이든 수발이든제가 아시는 분이 웰다잉(Well-Dying)이란 주제로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죽음을 준비하는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되게 사람들 고생 안 시키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제가 사고가 나서 병원 신세지고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의향서 쓰는 게 있는데요예전에 제가 그걸 썼어요좋을 때 행복할 때 죽었으면 좋겠어요혹시라도 공중파 PD가 돼서 첫 방송을 하게 되면 그때는 그 다음에는 죽어도 좋겠어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괜찮다 지금도지금 자체로도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으세요?”
그 말도 똑같아요스스로가 모자란다고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괜찮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저한테도 많이 하려고 해요조급해 하는 건 자유지만 그렇게까지 자기 삶을 갉아먹을 필요는 없잖아요스스로 채찍질 해서 발전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스스로의 노력으로 부자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든요.”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아야 할까요?”
현재를 살아야죠. ‘필리버스트를 하면 그걸 봐야 해요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이고 현재 문제가 무엇인지 그걸 외면하지 말고 봐야 해요누구나 땅을 딛고 살잖아요뒤늦게 이야기 해줘야 해요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어 그때 그 사람들 노력했어 하고요그래야 자식을 낳아도 해줄 말이 있어요대단하지 않아도 현재를 살아야 해요.”


그런 말을 듣게 되잖아요민규 씨 잘 지내요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그냥 살죠.”


그래요여기까지예요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박준우 씨 있잖아요마스터 쉐프 코리아 2등 하고 냉장고를 부탁해 나온 분이 있어요그분이 인터뷰 하면서 그런 말을 했어요당신은 글도 잘 쓸 줄 하고 기자인데 요리도 잘 하고 벨기에도 살고 오고요어떻게 그렇게 된 거예요물었어요그러니까 박준우 씨가 그냥 살았어요.’ 말했는데요그냥되는대로 살았다는 그 말이 멋있었어요.”


우리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너무 멀리서 대단한 걸 찾지 마없어.
일상 속 대단한 만남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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