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우정, 그 가벼운 이름

- 삶의 파도에도 뇌리에 항상 둥둥 떠있는 그 존재감

by 블랙스톤

생각만 해도 웃긴 친구 하나씩은 꼭 있지 않나요? 제게도 그런 이상한 녀석들이 둘이나 있어요. 추석이 지나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꼭 생각이 나요.

가끔 제가 잊을 때도 어머니가 먼저 전화를 해서는 그 녀석들은 잘 지낸다니? 하고 묻곤 하세요. 명절 때마다 크던 작던 명절세트를 하나 꼭 보내주는 것 때문에 잊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어머니가 잊지 않고 안부를 물을 때마다 붙는 수식어만 들어도 알 수 있죠. 보통은 이렇게 물으세요. 그래, 그 ‘웃긴’ 녀석들은 잘 지낸다니? 저만 웃긴 녀석들이라고 여기는 게 아닌 거죠.


아버지는 암으로 일 년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다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덜하지는 않았죠.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고 병원 복도에 기대 서 있는데 자꾸 몸이 흔들리더군요. 뭔가가 울렁이는 기분이 들 때마다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어요.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어머니와 멍하니 서 있는 동생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결정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저는 제일 마지막에 슬퍼하자고 다짐했죠.


연락을 받고 가장 빨리 달려온 녀석들이 그 둘이었어요. 둘은 늦은 밤까지 자리를 지키고 다음 날에도 함께 있어 주었죠.

예상보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찾아주신 분들이 많았기에 자리를 지켜준 친구들에게 몇 마디 말조차 건네지 못했어요. 친구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오신 어른들에게 먼저 감사를 전하는 게 먼저였죠.


아버지를 선산에 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조금 실감이 나더군요. 감사의 문자를 돌리고 집에 와서 옷을 벗는데 단단히 묶어둔 무언가도 같이 벗겨져 버리는 기분이었어요.

샤워기를 틀고 머리에 물을 적시니 귀에는 물소리만 들리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더군요. 그때서야 비로소 나 혼자 서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씻는다는 핑계로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아요.

눈물을 흘리고 나니 그때서야 내가 아버지 아들이 맞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아무리 나중에 슬퍼하자고 다짐을 했다고 해도 상을 치르는 동안에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으니 스스로도 너무 하다 싶었거든요.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눈물이 지금이라도 나와서, 그리고 상을 다 치른 지금 눈물이 나와줘서.


한참 씻고 나오니 어머니가 장부를 정리하고 계셨어요. 힘들 때 도와준 사람들은 꼭 잊지 않아야 하는 거라며 장부에 적힌 이름과 봉투에 적힌 이름들을 옮겨 적고 계시더군요.

쉬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그렇게라도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어머니는 와주거나 마음을 보내준 사람들의 이름을 두 번, 세 번 곱씹어가며 깨끗하게 옮겨 적었어요.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것이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시더군요.


“얘,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뭔가 싶어서 보니 제일 먼저 달려온 친구들 둘의 이름이 같이 적힌 부의금 봉투더군요. 나중에 집계해서 적어 넣은 금액을 보니 23,000원이 적혀 있는 봉투.

어머니는 슬쩍 제 눈치를 보면서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어쨌든 제일 먼저 와서 선산까지 같이 가준 고마운 친구들이니 꼭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해주셨어요.


사실 처음 그 금액을 봤을 때 괜히 창피한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찰나였어요. 바로 웃음이 났거든요. 뭘 해도 어설픈 것이 딱 이놈들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취업을 준비하는 녀석들이었기에 이게 최선일 거라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그거랑 별개로 티격태격 대며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모습이 떠오르니 슬슬 웃음기가 입가에 퍼지더라고요.

어머니와 동생에게 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어요. 물론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는 힘들었지만요.


“차비는 빼느라 동전은 안 들었나 보네요. 그래도 비율로 따지면 거의 전재산을 준 거니 가장 무거운 봉투네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쓰다듬었어요. 그 모습이 꼭 그 안에 담긴 마음이 고맙다는 듯한 손짓이어서 저도 어머니에게 고마워졌어요.

동생은 어디서 빌릴 데도 없었나, 하고 말했지만 이내 그 둘의 이름을 외울 듯이 작게 몇 번 중얼거렸죠. 이후에는 특별한 것 없는 장부 정리였고 모두가 쉬는 밤에 어머니가 몇 번 흐느낀 것을 제외하면 조용히 지나간 하루가 되었죠.


어머니는 아버지가 명절을 피해 주었기에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왔던 것 같다고 말하곤 하셨어요. 아버지 없는 첫 명절이 돌아왔을 때도 비슷한 말을 하셨죠.

그리고 그 첫 명절에 선물세트 두 개가 도착했어요. 제 어설프고 웃긴 친구 둘이 보낸 선물세트였죠.


드디어 직장에 들어간 녀석들이 마음이 불편하다며 보내온 선물. 그 선물세트는 몇 번의 명절이 지나도 잊지 않고 어머니에게 전해졌어요.

몇 번 보내다 말겠지 하고 말하던 어머니는 이제 그만 보내도 된다고 전하라 했지만 친구들은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저에겐 신경을 끄라고 하더군요.

그때 둘이 머리를 맞대고 투닥거리면서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고. 그 불편한 마음이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는 거라고.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우리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는 그냥 두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죠. 한편으로는 꼭 이 친구들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어요.


동생은 여전히 친구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어요. 제가 친구를 만난다고 하면 제일 먼저 그 둘의 이름을 말하고 안부를 묻곤 하죠. 어머니는 이상할 정도로 그 둘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세요. 다른 친구들과 헷갈려하시죠.

그래서 제가 실실 웃으며 23,000원 만나러 가요,라고 하면 어머니도 웃으며 걔들은 잘 지낸다니? 하고 물으시죠. 명절에 선물 안 보내도 된다는 이야기도 꼭 전해달라고 하시고요.

이번에 결혼하는 녀석이 생겼다고 말하니 어머니는 따로 봉투를 전해 줄 테니 어머니 이름으로 따로 내달라고 하시더군요. 동생도 슬쩍 한마디 거들었어요. 나도 따로 해줘.

그래서 저는 웃으며 말했어요. 우리는 셋이 합쳐서 23,000원 하면 되겠다고요.


웃으며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한마디 덧붙이시더군요.


“그래서 너는 언제 장가갈 건데? 만나는 여자는 있고?”


동생은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저는 친구 청첩장을 받으러 가는 길에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 자국을 등에 숨기고 가야 했고요.

다행히 예비 신부님께서 괜찮은 친구를 한 번 찾아보겠다고는 했는데 그분은 알고 계실까요. 그 소개팅에 따라서 우리 가족의 축의금 봉투 무게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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