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소중한 시간은 뜨거운 라떼가 된다(3)

-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by 블랙스톤

첫째의 존재를 알린 순간부터 양가 어른의 기쁨과 관심은 온통 그녀를 향했다. 사내의 나이가 적지 않았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사내의 부모님은 소식을 듣자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그녀에게 고생했다, 장하다, 네가 복덩이구나! 하고 말했다.

뒷전으로 밀려 머쓱하게 서 있던 사내는 연신 칭찬하는 부모님의 뒤에서 그녀에게 슬쩍 엄지를 치켜주었다.

부끄러워하던 그녀가 작게 웃었다. 웃는 그녀를 보며 사내의 부모님은 엄마가 예쁘게 방끗방끗 웃는 걸 보니 아기도 아주 예쁘겠다며 좋아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소식을 듣고 음식을 싸들고 찾아왔다가 사내의 부모님이 냉장고 가득 음식을 채워놓은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사부인이 내 새끼를 잘 챙겨주시네.

어떻게든 냉장고에 모든 음식을 넣어두신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울먹이느라 제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아버님은 뒷짐을 지고 사내 앞에 서서 임신한 아내를 잘 보살피는 법을 강의하면서도 연신 어머니와 그녀를 곁눈질했다. 그 곁눈질하는 눈에도 물기가 가득했다.

한참을 그녀의 손을 쓰다듬고 울먹이던 어머니는 결국 그녀를 꼭 끌어안고 한참이나 울었다.

우는 엄마를 따라 훌쩍이는 그녀를 끌어안고서 어머니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작게 한탄했다. 아직 어린 내 새끼가 어떻게 새끼를 낳니, 어떻게 엄마가 되니. 그거 너무 힘든데, 정말 힘든데. 조금만 더 커서 하지.


사내는 만삭이 되면 곁에 있어 줘야 한다는 이유로 공장장을 졸라 사무직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공장장은 처음에는 사내의 요청을 못 미더워했다. 하지만 붙임성 있고 필요하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배짱을 가진 사내는 거래처와의 소통도 곧잘 해냈다.

공장장은 자신이 맡은 일을 하면서 퇴근 이후 따로 시간을 내어 또 일을 배우는 사내를 보며 노총각이 장가가더니 눈이 돌아버렸다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금방 배우는 사내를 데리고 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지 나중에는 영어를 따로 배워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사내를 맞이하며 그녀는 몸이 무거워질수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그녀가 투정 부리며 했던 말을 잊지 않은 사내는 언제나 두 손에 그녀가 말했던 음식을 들고 돌아왔다.

그럴 때면 그녀의 미간에 찌푸려진 주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르르 녹아 웃음이 되곤 했다.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사내는 자신이 뭔가 큰일을 해낸 것만 같아서 뿌듯해졌다. 그리고 그런 뿌듯함을 주는 그녀의 존재가 고마웠다.


사내는 퇴근하면 매일 그녀가 잠들 때까지 손을 만져주고 부은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아버님께서 임산부를 잘 보살피는 법이라며 가끔 마사지를 해주라고 알려주었기에 사내는 매일 마사지를 했다.

몸에 좋고 잠도 잘 온다는 차도 구해서 자기 전에 조금씩 마시게 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발라드 가수의 음반을 몽땅 사서 매일 틀어놓기도 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웃음도, 울음도 많아진 그녀에게 한 번이라도 더 편안한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사내는 그녀가 만삭이 되자 사무직 업무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직급은 작업반장이지만 실질 업무는 사무실에서 거래처, 본사 등과 소통하는 역할을 맡았다.

평소에 인맥을 술에 잘 절여 놔서인지 주변 사람들은 그냥 한번 고개를 젓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신입 하나가 슬쩍 저분은 직급이 어떻게 되냐고 묻자 고개를 젓던 신입의 사수가 대답했다. 갓 결혼한 데다가 덜컥 애가 들어서서 정신 나간 노총각.

그리고 잠시 텀을 두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작업반장이면서 파트장이기도 하고 이제는 예비 공장장이 되려는 늦깎이 신랑. 늙다리 팔불출.


주변에서 뭐라고 부르든 간에 사내는 퇴근 시간이 되면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점심때 들었던 그녀가 원하는 음식과 퇴근 때 통화하며 들었던 음식을 구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 그녀가 맛있게 먹으며 흐물흐물 녹아 실실 웃는 것을 보노라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럴 때면 사내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곤 했다.


어느 날 부른 배에 숨이 가빠하는 그녀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던 사내가 말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우리 아이와 당신, 우리 가족을 위해서. 더 성실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부른 배에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숨이 가쁜 그녀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실하다는 건 그저 일에서만 필요한 건지 알았는데, 오히려 나와 아이에게 성실한 남편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사내는 헤벌쭉 벌어지는 입꼬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칭찬에 신바람이 나서 더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녀는 살짝 코를 골며 잠이 들었고 사내는 그녀의 배에 귀를 살짝 대보았다. 아이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 꿈틀거림에 갑자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과 아직 어린 아내를 항상 웃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것은 때때로 사내를 덮치곤 하는 불안이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이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사내가 귀를 떼려고 할 때쯤에 툭, 툭, 아이가 그녀의 뱃속에서 사내의 머리 쪽을 발로 찼다.

그 태동이, 마치 걱정 말라는 듯이 툭툭 치는 것만 같아서 사내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놈 나오기도 전부터 효도하네.


다행히도 사내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에 그녀가 말했다. 아이가 나오려나 봐요.

예정일보다 빠른 소식에 사내는 너무 놀라 그녀를 업으려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내가 어떻게 업혀요!

한 대 맞고 나서야 택시를 부를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몇 시간의 진통 끝에 작은 핏덩이를 볼 수 있었던 사내는 자신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하얗게 핏기가 가신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언제나 곁에 있겠노라고, 언제까지나 가족을 지키겠노라고, 울면서 몇 번이나 다짐하고 약속했다.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성실한 사람이니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믿어요.


몇 년 후에 낳은 둘째는 첫째와 달리 아들이었다. 사내는 여전히 작업반장이었으며 파트장이기도 했다. 그녀의 배가 불러오기 전까지 교대근무를 하다가 배가 불러오면 다시 공장장을 졸라 사무직 업무를 맡았다.

매일 그녀가 원하는 음식을 구해서 퇴근했고 매일 그녀의 부은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잠이 잘 오는 차를 구해서 그녀에게 주는 것까지 같았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퇴근할 때에 첫째가 좋아하는 음식도 같이 챙겼다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미간도 여전히 잔뜩 찌푸려졌다가 사내가 챙겨 온 음식에 사르르 웃음으로 녹아내리곤 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사내 스스로가 안도했다. 웃음이 묻어 있는 말랑거리는 일상이었다.

사내는 자신의 노력이 웃는 그녀와 깡총거리는 첫째에게 이 말랑한 일상을 가져다주었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끝없이 노력하는 하루하루를 살 수 있었다.


둘째는 첫째와 다르게 예정일에 출산했다. 사내는 한 번 겪어 봤다고 병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미리 가방 하나에 준비해 뒀다가 그녀가 진통을 시작하자마자 가방과 아이를 둘러업고 그녀를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운전해서 병원을 향하는 동안 그녀가 이를 악물고 씹어 뱉듯이 말했다. 아오. 한 번 해본 건데도 이거 너무 아픈데.


사내는 그 말에 도저히 대꾸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앞만 바라보며 운전했다.

자다가 아빠에게 달랑달랑 들려 나온 첫째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엄마가 아프다는 소리에 울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마저 참아야 했다.


첫째를 달래며 분만실 앞에 선 사내는 아이를 돌봐줄 부모님이 오시길 기다리며 그녀의 아픔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지만, 내일 하루를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지만, 그녀가 아픈 것은 싫었다. 그리고 그저 복도에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이 싫어졌다.


사내는 성실한 것 외에는 자신에게 장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사내에게 버티고 참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출나게 잘하거나 특별하게 원하는 것이 없었기에 사내는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말과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견뎌 낼 수 있었다.

장남으로 태어났으니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돕는 것은 당연했던 것이고 아이가 생긴 지금도 그것을 탓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런 사내가 그녀를 만나고 첫째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느꼈던 확신은 단 한 번의 기회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놓치기 싫었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버티며 살아오던 사내가 앞만 보며 달렸다. 그 앞에는 그녀와의 행복한 미래가 있었다.

이제는 그 미래에 첫째와 둘째가 추가되었다. 그랬기에 사내는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미래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 미래를 지키는 것은 남편, 아빠, 그리고 가장이 된 사내가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병원 복도에서 칭얼대는 첫째를 달래며 그녀와 아이들에게 무조건 좋은 것만 주겠노라고 백번, 천 번도 넘게 다짐했을 때 둘째가 태어났다.


사내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언제까지나의 다짐과 약속을 이번에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그런 사내에게 미소를 보여주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사내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 것인지 혹은 뭔가를 느낀 것인지 아니면 곁에 엄마와 아빠가 없어서인지 복도에서 첫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이 당황해서 달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지만 왠지 우렁찬 첫째의 울음소리가 사내의 탓인 것만 같아서 사내는 손으로 쓱쓱 얼굴을 문질러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는데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사내의 손을 막았다.

사내가 그녀의 말을 어기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손을 뻗은 상태로 멈춰 서자 그녀가 말했다. 여보.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울어놓고 그걸 다 손으로 문질러 닦았잖아요. 더러워. 그 손으로 내 얼굴 닦지 말아요.

사내는 한참이나 웃었다. 그래, 그녀는 이런 사람이었다. 어떤 순간에도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 다시 한번 사내는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와 가족의 행복을 지키겠다고.


둘째가 걸어 다니는 시기가 올 때까지 사내는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려 노력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남편이기에, 아빠이기에, 가장이기에, 사내는 단 한 번도 게을러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시기가 오고 지출이 늘어갈수록 가족에게 무언가를 더 해주어야 한다는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녀의 웃음을 지켜주겠다고, 내가 반했던 그 고운 모습을 지켜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사내에게 고왔던 그 시절의 이름보다는 아내,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느꼈지만 아내가 된 지금도 그녀는 단호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사내의 월급으로 어떻게든 가계를 꾸리고 적금을 부어 조금씩 살림을 늘려나가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아이들의 교육비를 위해 적금 하나를 깨고 지출을 조금 줄여보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내는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더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사내의 눈에 해외지사 지원 포스터가 보였다. 사내는 일말의 고민 없이 해외지사에 지원했다.

그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당연한 것에는 단 한 번도 ‘탓’을 해본 적이 없었던 사내였기에 해외지사 생활도 문제없이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노인은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성실할 필요는 없었는데. 가족에게 조금만 더 눈길을 줬어야 했는데.

퇴근하면 늘 그랬듯 아이들을 만나고 그녀를 만나왔기에 겨우 몇 년의 시간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을 탓했다.


그 몇 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과의 시간이란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단순하게 자신이 살아온 사십여 년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겨우 몇 년이라고 생각해 버린 자신을 탓한다.

어린아이들이 보고 배워야 할 집 안의 어른이어야만 했던 그녀는 더 단단하고 올곧아야만 했다. 그 몇 년의 시간이 그녀에게 억척스러움과 독립성을 주었다.

그녀는 사내가 없이 아이들과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아야만 했다. 아이들의 앞에선 사내의 몫까지 모두 해내야만 했다. 그것이 사내가 생각한 겨우 ‘몇 년’이 가진 힘이었다.


가족을 위하겠다며 떠나버린 자신을 탓한다.

서로를 위해 더욱 똘똘 뭉쳐야 했던 그들에게 사내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다시 스며들기까지 몇 배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은 가족에게 성실하겠다는 이유로 일만 몰두했던 자신의 탓이란 걸 노인은 잘 알았다.

가족에게 부족함 없는 삶을 주겠다는 이유로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일을 하러 갔다. 그곳에서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면서도 가족을 위한다는 핑계를 댔다.

일이 끝나고 나면 시차가 나서 자고 있을지 모른다고, 피곤한 날이면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으니 이해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편지나 연락을 한 번씩 넘기기도 했다.


그저 매일을 견뎌내는 자신과는 달리 한국에서 아이와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리는 가족이기에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이어져 있다고 믿었다.


가족이기에 다 알 거라고, 다 이해할 거라고.


겨우 그 믿음 하나로 아이와 그녀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네지 못했다. 가족에게 든든한 등판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이들이 나중에 보게 될 아빠의 등을 낯설게 만들고 말았다.

모든 것은 가족을 위한다던 자신의 탓이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탓이 그저 핑계라는 것을 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몇 년’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몇 년의 파견 근무 후 둘째의 초등학교 졸업 즈음에 돌아온 사내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섰어야 했다.

서먹해하는 아이들을 배려하겠다고 한걸음 떨어진 상태로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바랐던 것은 자신이었다.


나이가 들어 예전과 같지 않다는 핑계로 주말이면 쉬는 것을 선호했다. 아이와의 시간은 가끔 날을 정해서 나들이 가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제 자신에게는 다시 회사로 나아가 일할 수 있도록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만은 아니었다. 사내는 자신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약간의 서운함을 감춰두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그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아이들은 알아봐 주지 않았다. 그 노력을 알고 있을 그녀도 이제는 자신보다는 아이들의 곁에 서서 홀로 선 사내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웃고 떠드는 아이와 그녀는 분명 사내가 꿈꿔오던 것이었지만 그곳에 함께 웃고 있는 사내가 없었다. 그 서운함은 그녀에게로 향하기도 했다.

애들 엄마가 아이들에게 잘 말해주어 이 순간을 극복했으면 했다. 그녀는 가끔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가끔은 아무런 표정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때때로 아이들과 그녀에게서 자신이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곤 했다.


노인은 그런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어쩌면 자신은 당연하게 모든 시간을 버텨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버티는 순간을 누군가가 알아봐 주었기에 그 모든 세월을 견뎌내 온 것이다. 하지만 사내일 적 노인은 그저 자신이 혼자서 당연하게 버텨온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연’에 사내의 노력을 본 이가 칭찬하고 격려하고 지켜봐 주는 것이 포함된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랬기에 ‘당연’하게 그 노력을, 그 세월을, 그 힘든 하루들을 알아봐 줄 것이라 생각한 가족이 자신을 어색해하는 것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것을 남편이며 아빠이고 가장이라는 이유로 속에 담아두고 곪아버리게 한 것은 결국 사내였다. 그렇기에 노인은 숙인 고개를 한참이나 들지 못했다.


노인은 그녀를 위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원하는 것을 묻지 않았다.

임신했을 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화해서 그녀가 원하는 것들을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노인은 이 긴 꿈으로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무엇을 놓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자신의 ‘궤도’에는 가족이 원하는 것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에게 원하는 것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노인의 ‘궤도’와 가족의 ‘궤도’가 모두 일치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제는 그녀와의 ‘궤도’도 엇갈렸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오히려 노인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이 될 만큼 살아오면서 늦었다고 생각한 적도 꽤 많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순간이 늦은 것만은 아니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도 많았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것들도 돌이킬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노인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 긴 꿈에서 깨어나면 제일 먼저 그녀의 이름을 불러줄 요량이었다. 오래간만이라 서로 어색할 테지만 곧 적응이 될 것이다.

이후에는 아이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외면한 세월만큼 단단한 벽이 있겠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벽이 깨어지지 않더라도 계속 두드리면 언젠가 그 울림이 너머로 가 닿을 텐데.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 있다면 노인은 얼마든지 그 벽을 두드릴 생각이었다.


노인은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다. 과거에도, 노인이 된 지금도. 나이가 들었다는 핑계를 걷어내고 나면 노인은 아직 사내일 적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머쥐었던 사내는 아직 노인의 마음속에 생생히 살아 있었다.

비록 느려지고 이제 빠릿빠릿한 면은 볼 수 없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고 나아갈 힘, 그 마음만은 여전히 사내일 적과 같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이 긴 꿈이 노인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다시 가족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 가족을 위해 얼마나 성실하게 달려 나갈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

노인이 된 지금도 성실한 것에서는 누군가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노인은 이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