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3년 5월 19일 금요일
땀 한 방울 흐르지 않게 날이 흐리고 선선함
일이 끝났다. 땀에 절은 작업복을 벗어 가방에 챙기고 출근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대충이나마 씻고 모자를 쓰고 지하철을 탔을 때 나처럼 모자를 푹 눌러쓴 무표정한 아저씨들을 마주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방을 소지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바라보게 되는 법이기에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나와 같은 작업자로 보였다. 그들이 다 지긋하게 나이가 들었으며 손끝이 단단하게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내 추측에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어쩌면 이 시간에 등산을 마치고 돌아온다거나 마실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나 혼자만의 추측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와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 내 생각 속에서 그는 여전히 작업자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 눈가의 주름을 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생겼을 눈가의 주름, 그리고 단단한 손끝. 그것을 바라보다가 일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을지 모른다. 혹은 다른 무언가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젊었을 때의 빚을 갚기 위함인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나는 애초에 무엇을 위해 회사를 뛰쳐나와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십 년이나 지냈던 회사에서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진 탓에 다른 일을 찾아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치기 어린 마음에 그만두고 싶어 그랬는지도 모르지.
처음에는 알았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나는 갈라진 목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 오늘 물을 하나 사서 지하철을 탄다는 걸 깜박했구나.
물이 준비된 곳은 내가 일했던 현장에서 너무 멀었다. 대충 물통 몇 개에 물을 채워 현장으로 들고 가긴 했지만 옆에서 용접을 계속하고 쇳가루가 신나게 날려 선풍기를 직방으로 쐴 수도 없었다. 땀이 하도 나다 보니 물을 마셔도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모두 땀으로 배출되는 모양이었다. 퇴근하고 지하철에서 가볍게 세수를 하는데도 그저 멍해서 물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마 그만뒀던 이유를 찾았던 것 같은데. 조금 기억을 되살리려다가 그만뒀다. 하루 종일 서 있어서 다리가 아팠지만 자리가 나지 않았다. 전철 밖의 풍경을 보며 멍하니 있으면 금방 도착하리라.
'어찌 됐든 간에 지금 새로 하고 있는 일을 더 열심히 배워야 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이 일이 아주 편하게 느껴지면 전에 퇴사를 했던 것들이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메모장에 적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조금 더 멍하니 머리를 비운 상태로 있고 싶었다. 잡생각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퍽 나쁘지 않았다.
모처럼 만에 친구를 만났다. 퇴사 이후에 만나는 친구들은 아무래도 한정될 수밖에 없었는데 어쩔 수 없는 자격지심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이 아닌 사회 친구들은 아무래도 같이 일했던 기억이나 그 당시의 추억을 가지고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면 이미 그만둔 상태의 나와 그들의 기억은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기억은 퇴사에 멈춰있고 그들은 그 이후의 지금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들은 내가 무엇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이해하는 이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게 나가서는 회사와 벌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일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지치고 한참 설명하면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이들도 조금 지친다. 각자 사는 방식이 있는 것이기에 그들의 경험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 기술을 습득하기 전인 내가 그들에게 나는 이게 맞다고 말할 당당함이 부족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자격지심이 느껴지는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인 그는 내게 힘들면 언제든 때려치워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다 괜찮다고.
그 말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술 한잔 기울이며 어렸을 적 이야기나 하겠지 싶었는데 불쑥 건네진 위로가 괜히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얼큰하게 취해서는 그를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내가 왜 그만뒀는지가 생각났다.
새벽까지 잔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십 년 후에도 나는 이 새벽길을 걷겠구나 싶었을 때였다.
그렇게 새벽을 걸어 집에 오고 다음 날 다시 출근했을 때 내가 노력한 것들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아무도 그 노고에 대해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을 왜 지금까지는 미리 안 해뒀냐는 식이었다. 승진한 동기들이 말해주는 점장으로서의 생활이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책임만 늘어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럼에도 점장이 되는 것은 몇 년 내에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회식 후 아무리 숙취가 있어도,
장염에 걸렸을 때에도,
다리가 부러졌을 때에도,
어김없이 출근해서 일을 하는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를 편안함을 느꼈을 때.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떤 보람이나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고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출퇴근을 하다 일 끝나면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술 마셔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을 때, 깨달았다. 나의 시간들이 사라지고 있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이 모두 회사에게 돌아가고 있구나.
내가 퇴사한 것은 더 늦으면, 더 적응해 버리면, 정말 어떤 용기도 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늦은 밤 집 앞에서 한참이나 미친놈처럼 웃었던 것 같다. 십 년이나 해오던 일을 그만둘 때에는 나름 대단한 결심이었을 것인데. 불과 두 달 만에 그 결심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내 나이 마흔, 남은 시간이란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면서 다시 나는 모든 시간을 일을 배우는 것에 집중하고 또 집중하고 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듯이 나는 내게 시간을 써보지 않았기에 그 시간이 무엇보다도 무겁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퇴사를 했음에도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조금만 더, 나를 돌아볼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뭐, 작심삼일이라고 일이 바쁘면 또 일에 치여서 나를 잊고 살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알아. 하지만 설명할 수는 없어. 네가 나에게 던진 첫 질문, 기억해?”
“미쳤다는 게 뭔지 알고 있냐고 했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이번엔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대답해줄게.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본 거예요.”
“우린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파울로 코엘류, 이상해 옮김,『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중에서, 문학동네, 2003
미쳤다는 건 그냥 산다는 거고 산다는 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꾸며간다는 거다. 서로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게 되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떨어져 나와야지. 뭐.
아직 나는 친한 친구들 외에 누군가에게 나의 세계를 설명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나의 세계를 상상하기에만 바빴으니. 조금씩 모양을 갖추고 다듬고 나면 누군가에게 나의 세계를 자랑스럽게 보일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친구들은 내 세계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웃더라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같이 걸어준다. 조금 부끄러워도 자꾸 다리를 절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나를 떨쳐내지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가끔은 그 은근한 배려가 너무 고마울 때가 있다.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다짐하거나 가만히 나 자신을 타이르곤 한다.
언젠가 내가 꾸민 세계와 비슷한 세계를 만나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서로에게 미쳐서. 혹은 서로가 미친 것에 감탄하며. 그때가 되면 밤새도록 내 세계를 꾸미던 이야기를 할 거야. 저 돌을 얹을 땐 어떤 생각이었는지, 왜 이런 모양으로 쌓은 건지, 그 바닥을 다지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러면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서로의 가장 깊은 세계를 어루만지듯 그 눈을 한참이나 바라볼 거야. 왠지 모를 울음이 터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