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매일 힘들지만 어떻게 지나가고, 행복하고 그런 거야
2023년 5월 5일 금요일
공기가 텁텁하고 약간 흐림
밀린 일기 쓰기는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나 항상 나를 괴롭힌다. 예전엔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숙제였다면 지금은 그저 변해가는 나를 기록하고 싶은 취미라는 게 다른 점이겠지.
엄밀히 말하자면 나를 기록한다기보다는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내 생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 더 크기는 하다.
스무 살 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던 생각들의 편린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후에 언제든지 아이디어로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기억을 전부 떠올려도 앞 뒤 사정을 기억해내지 못하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까먹고 만다.
깨끗한 유리 위에 뭔가가 스친 자국은 확연하게 보이지만 얼룩덜룩한 유리 위에 뭔가가 스친 자국은 식별해 내기 어려운 까닭에, 세월을 통해 경험이라는 좋은 자산을 가지게 된 대신 비슷한 일들이 있을 때 언제 있었던 것인지 정확한 가늠이 어려운 부분이 생겼다.
-뭐 물론 통박을 굴려서 비슷하게 해결해 낼 수는 있겠지만.
-왠지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들이 나를 답답하게 한다.
그래서 더 기록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데 취미로 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고 나니 하기 싫은 날은 밥 먹고 밥상을 발로 슥 밀어놓듯이 자연스럽게 딴짓을 하다가 잠이 들곤 한다. 조금은 마음을 다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하나에서 느슨해지면 어느새 모든 것에서 느슨해져 시간에 허덕이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
오늘은 즐거운 어린이날.
지하철마다 피곤에 절어버린 부모님과 신나서 곧 하늘 위까지 뛰어오를 것 같은 아이들이 목격되는 날이다. 가끔 방방 뜨다 못해서 주체를 못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들이받아버리는 애들도 보인다. 그럴 때면 재미있는 것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보이지도 않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아. 니들에게도 곧 등짝을 한대 얻어맞고 시무룩해지는 엔딩이 기다리겠구나.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달라서 공공장소에서 줘터져 가며 사고를 치는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나이 마흔 아저씨가 회고하기에 그때는 한 대라도 안 맞고 크는 친구들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참 많이도 혼나고 다녔다. 눈치가 없는 편이다 보니 그랬는데,
-지금도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장난을 계속하다가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고 어머니께 혼나다가 그럴 거면 나가라는 말에 울면서 짐을 싸다가 빗자루로 얻어맞은 적도 있다. 학교와 집에서 혼나면서 배운 것들은 왜인지 잘 잊히지 않아서 사람들의 주목에도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무조건 맞아가면서 배우는 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전에는 예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했으며 지금은 지금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 퇴근하는 중에 지하철에서 몇 번이나 나를 들이받은 아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다가도 반복이 되니 나도 모르게 아이의 부모를 돌아보게 되었다.
엄마는 이제 걸음마를 뗀 듯한 갓난아이를 안고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고 아빠는 그 앞에 서서 여자아이를 품에 안은 채로 손잡이에 매달려 서서 꾸벅이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아빠의 어깨에 턱을 걸친 채로, 아빠는 손잡이에 매달린 채로 기절한 듯 보였다.
자그마치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둘을 기절시켰으니 엄마 아빠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모습에 뭔가 말을 하기가 조금 어려워졌다. 그래서 그냥 부딪쳐온 사내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돌아섰는데 조금 있다가 이 녀석이 노약자석에 앉은 할아버지 다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할아버지는 다리를 주무르며 여자아이를 안은 아이의 아빠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아빠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서 연신 사과하고는 아이에게 얌전히 있지 않으면 오늘은 뽀로로 못 보게 될 거라고 으름장을 놨다.
왠지 조금 웃음이 났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했던 내 어릴 적과 다른 대응임에도 아이는 확실히 얌전해졌으니. 문제는 할아버지의 큰소리와 아버지의 인사에 매달려 있던 딸아이가 깨어났고 깨어난 아이가 보채고 그 소리에 엄마와 갓난아이가 눈을 떴다는 점이었다.
아이 둘이 울고 엄마 아빠는 사과하고 할아버지는 슬쩍 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혀를 차고.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팔을 툭툭 쳤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과자 몇 개를 꺼내 아이들에게 다가가 어르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애 둘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는 또 주머니에서 과자와 초콜릿 몇 개를 꺼내서 아이의 엄마에게 쥐여주었다.
힘들지? 괜찮아 잘하고 있어.
매일 힘들지만 어떻게 지나가고, 행복하고 그런 거야. 그렇게 애들 덕분에 사는 거지.
어휴, 셋이라니 새댁.
장해. 아주.
할머니의 말은 지하철 안임에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아이의 엄마는 붉어진 눈으로 할머니에게 감사를 전했다.
어른이 되면서 어릴 때와 달리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밥을 먹다가 화장실을 다녀와도 되고, 쩝쩝거리며 밥을 먹어도 된다. 약속 없는 날이면 씻지도 않고 누워서 만화책이나 보고 티브이를 켜놓고 잠들어도 문제없다. 무서운 영화를 본 날에는 방에 불을 켜놓고 잠이 들기도 하고 땡기면 부모님과 식사를 하면서도 술을 권하거나 내가 한잔 할 수도 있다. 게다가 가끔 피곤한 날은 씻지 않고 그대로 잠들기도 한다.
헌데 웃긴 건 그에 비례하듯이 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아지더라. 단순히 나이가 들어 할 수 없어진 것들 말고. 자라면서 혹은 경험이 쌓이면서 분명히 옳은 일임에도 뭔가 불이익이 생길 것 같으면 하기가 꺼려지는 일들이 생긴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뛰어다닐 때 어른으로서 제재를 해야 하는가. 나는 하지 않는 것을 택했고 제재를 하는 할아버지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른 할아버지를 찌푸린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을 달래고 새댁에게 다가갔다. 새댁의 손을 붙잡고 등을 쓰다듬어주는 할머니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손주를 달래고 딸을 위로하는 듯한 편안함이 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는데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할아버지는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젊은 부부 앞에 서서 헛기침을 계속하셨다. 옆에 선 할머니는 웃으며 '이 양반이 미안해하네요. 아가야. 할아버지 미워하지 마?'라고 하셨는데 할아버지의 헛기침 톤이 두 배는 높아지는 듯했다. 내가 내릴 때쯤 젊은 부부는 큰 애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번갈아가며 가운데의 큰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었는데 아이는 엄마아빠와의 대화가 좋았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오늘 본 것들을 이야기했다. 엉덩이는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리면서도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시간이 흐르면 나는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낳은 나이가 이미 훌쩍 넘었음에도 나는 아직 어른이 뭔지 잘 모르겠다. 법적으로 성인의 자격을 보장받고 어딜 가도 민증검사를 받을 일도 없는 외모와 가끔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극존칭을 사용하기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나이가 몇이냐는 물음에 몇 년생이라고 말하는 게 더 편하다. 변화하는 내 나이를 생각하기도 귀찮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어른이라도 느끼지 않는다.
양장을 입으신 할아버지 부부와 반바지에 라운드티를 입은 젊은 부부는 외형에서부터 살아온 시대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들이 서로 붙잡고 토닥이고 위로하며 감동받아 울먹일 수 있는 건 모두 삶을 살아내고 있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보고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살아가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느낀 부끄러움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주 조금 어른이 되는 방법을 찾은 것 같기도 했다. 자꾸 부딪히고 깨지고 느껴나가는 것. 상처 나고 아물어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책으로 읽고 생각만 하던 것을 실제로 보고 느낀 날이었다.
더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저 회사를 나와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돈을 받아가며 기술도 배우게 되었고 어떻게든 따라붙겠다는 의지도 있다. 그렇기에 잘 풀리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느끼기에는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전 회사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저 출근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단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목표로 세운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볼 필요를 느꼈다. 그저 시작했기에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저 직업만 바꿨을 뿐이지 오늘까지의 나는 그저 떠내려가는 대로 표류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나온 지 두 달.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벌써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하긴 누군가 방향을 가리키는 대로 살아온 세월을 벗겨내기에 두 달은 너무 짧긴 했다.
-가끔은 인생에도 가는 길마다 상세한 이정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머니를 보며 했던 날이었다.
- 출처 김경옥 저, 하수정 그림, 마음이 커지는 사회성 그림책,
교원, 2020년 04월 01일,『사탕 할머니의 요술 사탕』중에서
-언젠가 도서관에서 봤던 그림책. 할머니의 넉넉한 미소가 마음에 들었었다. 오늘 본 할머니의 미소도 참 넉넉했기에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할머니들을 장난처럼 확대범이라 부르곤 하더라. 손주나 애완동물을 맡기면 사랑하는 마음에 양껏 먹여서 넉넉하게 만들어준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 나는 할머니를 만나서 정신, 정서, 생각 확대를 당했다. 이거 좀 기분 좋더라.
-항상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더 좋고 편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오늘은 누군가가 곁에 있어서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을 도와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