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에 익숙해지기

느린 일기 - 그저 시행착오가 길지 않기를

by 블랙스톤

2023년 4월 16일 일요일

텁텁한 공기 우중충한 하늘


쉬는 날이면 왠지 일기를 쓰는 게 더 힘들다. 점점 일기를 쓰는 것도 일하는 것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쉽게, 가볍게 쓰려고 노력 중이다.

이놈의 게으름은 불치병인지도 모르겠다. 퇴사하면서 회사에 게으름은 두고 온다는 것을 깜박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을 가볍게 하려고 노력 중인데 행동할 때가 되면 엉덩이가 무겁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생각만 홀로 나를 앞서 가버린다. 행동이 생각을 따라갈 도리가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쓰는 일기가 귀찮아서 누워서 뭘 써야지 생각만 하다가 잠들어버린다.


첫 번째 현장이 끝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장은 끝나지 않았다. 현장의 다른 작업이 지연되어 우리가 일을 하지 못하고 그저 대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14일 금요일, 언제까지 대기할 수 없으니 우리 팀은 짐을 뺐다.

말단인 나는 그저 짐을 뺐구나 또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겠지 하고 말았지만 일을 잡는 입장인 동생은 주말까지 전화를 돌리고 또 돌렸다. 초보자가 붙어서 어려운 현장을 제외하니 일감이 애매한 모양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미안해지고 왠지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주눅이 든 모습을 보이는 건 서로에게 좋지 못하다. 직장 상사의 입장에선 주눅 든 부하직원을 볼 때 큰일이 있을 때 믿을 수 있는지 의심이 되고 부하는 제 기량을 내기 어렵다.

이제 내일이면 새로운 현장으로 출근해야 한다. 익숙한 것만 선호하는 나로서는 매우 어색하고 불안한 일이다. 불안함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그렇다고 살아오면서 언제나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능 이후부터는 항상 불안했던 것 같다. 중, 고등학교야 자동 진학이니 그렇다 쳐도.

-물론 인문계, 공고, 상고, 문과, 이과, 혹은 자퇴라는 선택이 있었지만. 근데 그건 허락이 필요한 문제였다.

대학부터는 내가 해온 것들에 의거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아직 온전한 나만의 결정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내가 선택해야 하는 부분들이 생기며 불안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나는 항상 미친놈 같은 선택을 해왔다.

그저 내가 다녀보고 싶은 과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을 선택하고 이후에도 진로보다는 그저 흥미 위주로 전공을 선택했다. 졸업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취직보다는 흥미가 있었던 것을 지속할 방법을 먼저 찾았다. 좋아하는 것만 쫒느라 자격증 하나 마련하지 않고 졸업한 이후에도 돈 버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하는 곳에 취직하겠다고 알바만 일 년을 했다. 결국 원하는 곳에 취업하지 못했고 흥미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게임회사에 엉뚱한 취직을 했다.

어릴 때의 나는 미래의 불안감보다는 현재의 흥미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최우선인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냥 근시안적인 사람인지도 모르지.

-마흔 먹고 그냥 그러고 싶다고 대책 없이 일을 관둬버리는 것도 제정신으로 할 짓은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불안함이 자라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빈집에 처음 이사를 와서 점점 나만의 짐들을 채워나가듯이 '나'라는 삶 위에 쌓아 올리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 무게만큼 불안감이 함께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쌓아 올린 무게가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다면 불안이 얼마나 내 안에 굴러다니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를 쌓아 올리지 못한 모양이다. 한때 나를 지탱했던 호기심이 수그러드는 자리만큼의 빈틈은 아직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였기에 한동안 나의 중심은 흔들릴 예정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나. 누구나 이번 삶은 처음이고 처음은 힘들기 마련이다.

-가끔 인생 다회차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초회차다. 겁나 어설프다.

초심자면 초심자답게 이리저리 깨져가며 배우는 수 밖에는 없다.


그저 시행착오가 길지 않기를,

조금만 천천히 다가오기를,

그리고 많이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함은 이번 생을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통행료 같은 것이다. 모르는 길일 수록 통행료는 높아지겠지만 그만큼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일면을 보게 될 것이고 그 풍광 속에서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내가 포기한 것들을 뒤로하고 내 인생의 새로운 맛을 느낀다면 그것은 높아진 불안감, 그 통행료 덕분일 것이다.

이것은 소망이지만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불안하다. 아주 불안해 죽겄다.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_뭉크.jpg
뭉크_태양_오슬로대학교.png
1892,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Evening on Karl Johan Street,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 왼쪽 판화
1911, 태양The Sun,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 오른쪽 오슬로 대학교 대강당 벽화
불안과 질병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방향을 잃고 떠도는 배와 같았을 것이다 - 뭉크



불안은 뭉크를 좀먹고 아프게 했다. 하지만 뭉크는 그런 불안을 안고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냈다. 아니, 안았다는 말보다는 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붓을 놓지 못했을 터이다. 불안을 잊을 수 있는 순간, 그것이 뭉크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고 내게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

불안하다고 발을 멈춰버리면 결국 나는 그 불안의 한가운데 서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조차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발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걷는 것. 그렇게 계속 걷고 있기에 나는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것. 그렇게 자신감을 찾는 것. 그게 내가 택한 불안을 잊는 방법이다.


뭐, 계속 걷다 보면 결국 어딘가가 나오겠지. 내가 선택한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끝이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그 끝에 가서 뭉크처럼 다 극복한 듯이 그거 다 좋은 경험치가 되었지!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독한 허세라도,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만 인생이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작게 소망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