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그때에는 제발 내 삶이 흔들리지 않기를
2023년 4월 6일 목요일
여전히 날은 덥고 바람은 차가움
일기가 한 번 밀렸다. 금방 써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몸이 피곤하니 생각도 잘 나질 않는다. 조금씩 적어놓은 메모들이 아니었다면 아예 쓰지도 못할 뻔했다.
언제나 시간은 내 추억을 지우며 쫓아오고 있으니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
태안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새로운 일을 배운 지 딱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나름 젊었을 때 용달일도 해보고 원래 하던 일도 몸을 아예 쓰지 않는 사무직도 아니었으나 운동 부족에 악력이나 근력이 조금 모자란다는 것을 느낀 일주일이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쫓아다닌다.
그저 '기술자'라는 말에 홀려 너무 멀리만 보고 있었나 보다. 그전에 있을 고된 과정들을 조금은 쉽게 생각했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금방이라도 기술자가 된 것 같았으니까. 나이 마흔이 되어도 이런 착각은 떨쳐내기가 어렵다.
가볍게 구박을 듣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의 궤도와 워낙 다른 일이기에 사소한 것에서 혼난다. 예를 들어 작업하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작업하러 이동할 때에 가볍게 주변을 치워야 한다고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닥을 쓸다가 혼났다. 대충 큰 잔해만 치우고 이동하는 게 맞다고 한다.
급하면 옆에 일하는 아저씨들에게 가서 공구나 사다리를 빌리기도 하는데 같은 곳에서 일하는데도 서로 데면데면하다. 가끔은 공격적인 사람도 있어서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현장에 자기 물건을 들고 왔다가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이쪽 일이 끝나면 저쪽으로 이동하는데 깜박하면 서로 현장 끝날 때까지 얼굴 한 번 못 보는 수도 생긴다고.
자재는 다 돈이라서 자투리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는 자투리를 쓴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쓰는 자투리고 버리는 자투리인지를 모르겠다.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조금씩 나를 고쳐나가고 있다. 그 과정이 가끔은 내가 버티고 살아온 삶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어 자꾸 버벅거리게 된다.
내 상식과 일에서의 상식이 맞지 않다면 당연히 나를 깎아 일의 상식에 맞춰야 한다. 그 과정이 조금 쉽지 않다. 분명히 들었는데 한 번에 바뀌지 않고 한 번씩 더듬는다.
시행착오는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얼른 고개 숙여 사과하고 고쳐나가고 있다. 각오했었기에 사과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자꾸 튀어나와서 문제지.
어찌 됐든 간에 발걸음을 이미 뗀 상태에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죽어라 버텨내면 일에 맞춰서 내가 깎여 나갈 것이고 그러고 나면 나도 좀 편해지겠지. 나는 초심자이고 계속 틀려가면서, 혼나가면서 배워나가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동안 살아온 삶의 경험이 지침처럼 선명하게 내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결국 일에 적응하게 될 것이고 또 처음에 느끼고 있는 이 이질감 역시 해결될 것이다. 지금은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이후에 익숙하지고 나면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이 끝나고 혼자서 바다로 나가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한참이나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나면 마음이 조금 안정된다. 내가 바다로 갈 때면 따라 나오던 동생은 며칠 따라오다가 이제는 따라 나오지 않는다. 가만히 바위에 앉아 바다를 보는 것이 지루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 저 노을과 어우러지는 파도소리가 질리지 않는다. 아니, 이거 평생 질리긴 하는 걸까?
어젯밤 동생과 맥주를 마시며 잠깐 여행을 꿈꿨다. 그리고 동생은 자신의 SNS에 올려놓은 수많은 여행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산이며 바다며 계곡이며 관광명소까지.
SNS의 동생은 일주일이면 한두 개씩 여행지 풍광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일 년이면 적어도 마흔 곳 이상의 사진이 있었는데 동생의 SNS 친구들은 그의 여행을, 그리고 그 삶을 마냥 부러워하고 있었다.
한창 지방에서 일할 때 참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동생은 맥주캔을 만지작거리며 이야기했다.
이십 대 후반에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동생은 이삼십 년 차이가 나는 아저씨들과 지방을 다녔고 일과가 끝나고 아저씨들과 술을 마시기보다는 가벼운 여행을 했다. 처음엔 진짜 여행이었는데 나중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동생은 SNS에서 친구들이 부러워할 때마다 왠지 묘하게 기분이 좋아져 지방에 올 때마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로에 절어있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거울 속 남자는 SNS의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근심걱정 없이 매주 다른 곳을 여행하는 남자는 거울 속에 없었다. 갑자기 아득한 피로감과 귀찮음을 느낀 동생은 차려입은 옷을 휙 내던지고 그냥 잤다. 이후부터는 굳이 여행지를 찾아가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동생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보는 것과 겪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접 겪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더라고. 그러니 일이 힘들어도 잘해보자고 했다. 나는 맥주를 한잔 마시고 동생에게 웃어 보였다. 동생의 그 쓴웃음이 어쩌면 내 웃음과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우리와 다르게 SNS 속 동생은 참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절로 따라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삶의 단면에는 그 삶이 남긴 나이테가 남아있을 테지만 나이테만 보며 그 고난을 직관적으로 읽어내기는 어렵다.
내게도 몇 년 후면 또 다른 나이테가 생겨날 것이다.
옹이가 졌을지 혹은 매끈한 나이테로 남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에는 그저 그러한 것들이 나를 조금 더 성장시켰기를 바라본다.
혹은 조금 더 안으로 충실하여 그때에는 제발 내 삶이 흔들리지 않기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The Guardian(1977년)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찰리 채플린의 죽음을 알리며
세월이 지나 멀어진 지금의 시간들이 웃어넘길 수 있는 농담거리가 될 수 있기를,
그렇게 모든 고난이 그저 한 편의 희극이었던 것처럼 대수롭게 않게 툭 내려놓을 수 있기를, 아직 오지 않아 멀리 있는 미래의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