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출근, 다른 마음

느린 일기 - 자꾸 건네주면 가끔, 돌아오는 것들도 있다

by 블랙스톤

2023년 4월 10일 월요일

맑은 하늘 선선한 바람


태안에서 쭉 지내다가 8일 토요일에 서울로 올라왔다.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고 밤에는 친구들과 만나 정신없이 마셨다. 많이 마셨으니 일요일 아침에는 아팠다가 저녁에 또 나가서 퍼마시는 하루를 지내고 다시 아픈 월요일, 오후에나 겨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아니, 오늘 돌아올 것은 아니니 출장이 맞겠지. 내일의 출근을 위해 오늘 미리 숙소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일.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일이다.


다행히 내겐 아예 특이하고 어색한 일은 아니다. 자취를 한답시고 동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방을 잡은 적은 두 번이나 있었다. 어찌 됐든 나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한 적이 두 번이나 있는 것이다. 다만 분가라고 부르기엔 내 생활이 너무 본가에 치우쳐 있었다.

분명 평일에는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본가에는 주말에만 들렀다. 한데 이상하게도 혼자 있는 자취방보다 왠지 본가의 내 방이 더 편했다. 한창 술을 마시고 돌아다닐 때라 그런지 언제나 국이 상비되어 있는 본가가 편했을지도 모른다.

길면 이 주 정도 자취방에 들러 생활하다가 주말이 되면 본가로 들어가는 생활이었다. 방금의 문장이 딱 그 당시 내 마음이었다. 더 오래 머무르고 있는 자취방이 그저 '들러 생활하는'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분가가 되지 않을 수밖에. 어쩌면 자취방과 본가와 회사가 다 같은 지역에 붙어있었기에 심리적인 독립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 같다.


불완전한 독립을 겪어보았기에 출장 같은 출근을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왠지 가슴이 요동치고 불안했다. 그래서 짐을 꾸리며 내 마음도 추슬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주나 두 주 후에 돌아올 예정인데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간다는 것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물리적 거리라는 것이 그저 거리에서 벗어나 사람의 마음에도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짐을 하나씩 큰 가방에 던져 넣으며 큰 한숨도 함께 집어넣었다. 그러다 왠지 가슴이 가빠 오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제야 난 홀로 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완전한 분가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안에서 돌아온 날, 가족들에게 유난을 떤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저녁밥은 너무나 따뜻했다. 세 그릇이나 먹고 나서야 그 따뜻함에 가슴이 든든해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들을 만나러 가겠다 했다. 엄마는 아쉬워했다. 나는 왠지 낯간지러워 그저 씩 웃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친구들은 그저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내가 얼마나 멀리에서 왔는지, 고생했는지보다는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한 궁금증만 한참 늘어놓다가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다투기 시작했다. 그 쓸데없는 소리들 속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툭, 보고 싶었다 이야기해 주었다. 놀란 친구들은 욕을 한참 동안이나 늘어놓았다. 내가 그리움을 표현하는 만큼 어색해하던 친구도 마냥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도 보고 싶었다 말했고, 술 먹었으면 곱게 들어가 자라며 등짝을 때려주셨다. 왠지 그것도 좋았다.

홀로 서 본 적이 없기에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에 조금 어색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들을 몸소 겪어야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얼마나 더 지나야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싶다.


나는 원래 친한 친구들에게도 잘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짐을 챙겨 집을 나오며 오래간만에 많은 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오는 이도 있고 아닌 이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에게 내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다녀오면 한 번 만나자고 말해주었다.

물리적 거리감을 넘어 살며시 그들의 일상에 노크할 수 있는 수단이 나에게 주어져 있기에 표현을 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그들에게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모든 것은 돌아온다고 말해주셨다.

그것이 호의든, 악의든, 목적이 있건, 없건 언젠가는 모두 다 돌아오는 것이니 베풀며 살라고 하셨다.

내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삶은 내겐 이렇게 보였다.

'자꾸 건네주면 가끔 돌아오는 것들도 있다.'라고. 그것이 '그리움'과 '애정'과 그리고 '진심'이라면 조금 더 건네볼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돌아온대도 그것이 그들의 '그리움'과 '애정'과 그리고 '진심'이라면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것 따위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또 언제쯤 익숙함과 변덕이 찾아와 나를 그만두게 할지 모를지라도.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것입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출처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2004, 「20」중에서





몸이 멀어지니 조금 더 용기가 난다.

'잘 다녀올게요.'라는 안부 앞에 '몸 건강히'를 붙이고 뒤에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보고 싶을 거라고 적었다. 한참이나 후에 겨우 사랑한다는 마지막 말이 적인 문자를 어머니에게 보낼 수 있었다.

핸드폰을 덮어놓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집에서 다 큰 아들이 빤스만 입고 돌아다녀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어머니지만 괜히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자꾸 건네주었으니 가끔 돌려드리는 것뿐이다. 가끔이 자주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많이 낯간지럽다. 거리가 멀어져 오늘 다시 볼 일이 없으니 전송할 수 있었다. 괜한 안도와 아쉬움이 가슴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