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사십 대가 되어서 세상에 혼나는 중이다.
2023년 5월 14일 일요일
살짝 구름 낌
대청소를 했다. 주말을 맞아 등산을 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잠시 앉아서 멍을 때리다가 문득 창문 너머로 구름이 참 하얗게 보여서 빨래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잠시 앉았다가 세제를 넣고 세탁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앉았는데 문득 웃음이 나왔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완전히 변해버린 내 삶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웃음이 나오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 웃음이 나오지 싶기도 하고, 이게 바로 자포자기한 웃음인 것인가 싶기도 하고, 회사에 다닐 때에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지금도 마찬가지인 게 재미있었다.
온전한 내 시간이 있다면 하겠다 마음먹었던 것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배워보겠다던 운동이나 도서관 다니기 등은 새로 시작한 일 덕분에 시간대가 애매해지고 피곤해져서 하기가 어려워졌고 분명히 전보다는 규칙적이고 이르게 퇴근을 함에도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집에서 밥을 먹고 나면 기절을 하곤 한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기간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핑계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경험이라는 것은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쉽게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것인지 제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일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여기 사람들은 적어도 나만큼은 다 열심히 한다. 대충 하는 사람들은 얼마 안 가 사라지더라. 그렇게 버티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밤에 술을 마시고 밥 먹고 나면 현장 아무 데나 드러누워 잠을 자면서도 일을 할 때는 빠릿빠릿했다.
-물론 베테랑 중에서 설렁설렁하고 슬쩍 사라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어딜 가나 있으니까.
또한 이전까지 해오던 노력의 방식이 새로운 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를 지치게 한다. 나만큼 노력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니 조금 더 열심히 해보려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현장에는 위험한 것들이 많기에 함부로 뛰어다니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걸어 다니면 당연히 안되고. 그저 적당히 남들에게 욕먹지 않을 정도로 빠릿빠릿하게. 이런 규칙이 거의 모든 일에 적용된다.
피스를 박아 벽에 고정할 때 너무 세게 하면 속으로 다 들어가 이후 작업이 힘들어지고 너무 튀어나오면 고정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적당히. 속도는 빠르게 하되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작업해야 하니 서두르지 말고 적당히. 본드는 너무 많이 쓰면 옆으로 다 튀어나오고 나중에 모자랄 수 있으며 적으면 안 붙으니 알아서 적당히. 나사 하나 조이는 것도 상황 봐서 적당히.
하다못해 스크래퍼로 벽에 잔해를 긁어내는 일을 할 때도 깨끗하게 벗겨내다가 욕을 먹었다. 그거 어차피 덮을 건데 본드 바를 부분과 피스 박을 부분만 깨끗하게 하고 나머지 부분은 적당히 벗기면 더 빠르지 않겠느냐고.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도무지 그 적당히의 범위를 잘 모르겠다. 이 부분은 그저 경험이 해결해 주겠지 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동생에게 물어도 그건 경험적인 부분이라 매번 다르기에 확실히 말해주기가 어렵다고 하기도 하고.
이 지점에서 내가 지치는 부분이 생긴다. 노력하고 싶어도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에 앉아 상상해 보는 것뿐이다. 상상해 보고 아침 조회 전에 동생에게 묻는다. 거의 대부분 상상의 방향이 틀렸다고 지적받는다. 동생은 차라리 집에선 푹 쉬고 나와서 쉬는 시간에 칼질 같은 기초부터 연습해 보라고 말해주었다. 며칠간 줄자와 칼로 긋는 연습을 했다. 이상한 버릇이 들었다고 지적받았다. 나도 모르게 조금 한숨이 나왔다. 동생도 슬쩍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센스나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랬기에 무식할 정도로 배운 대로만 하려고 한다. 내 개인적인 느낌이 들어가면 항상 잘 안되기에. 배운 대로만 하는 것. 그게 몸에 밴 이후에 조금씩 방식을 달리 해보는 것. 그게 내가 노력하는 방식이었다. 한데 일단 처음 관문도 통과할 수가 없다. 똑같이 하는 것 같은데 계속 다르다고 지적받는다. 노력할수록 틀려지고 있다고. 그게 스스로의 노력마저도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다. 연습을 하면서도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한 직장에서 십 년을 일했던 경험이 있기에 적응기만 지나고 나면 큰 문제없이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아직 포기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앞으로도 제대로 된 방향 설정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게 뻔하게 보이는 상황이라 조금 답답해진다.
뭐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순조로울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아무도 없는 휴일의 집 안에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아무리 그래도 일 때려치울 때 마음이 심란했던 것만 하겠어?
내 나이 마흔,
스물보다 패기 없고 서른보다 겁이 많아진 시기.
무엇보다도 나를 보는 모두가 이제는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시기.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는 시기라고도 하더라.
더 나이 들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회사만 다니다가 끝날 것만 같아서. 정말 남아 있는 모든 용기와 치기를 모아 저지르고 봤다. 이래도 저래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자 싶었던 게 겨우 몇 달 전이니까.
아직은 더 노력해야 하는 시기다.
십 대는 공부 하느라 혼나고,
이십 대는 취업 하느라 혼나고,
삼십 대는 회사에서 혼나고,
사십 대가 되어서 세상에 혼나는 중이다.
조금만 더 혼나면 이제는 어른이 되고 더 이상 혼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의 사십춘기는 이제 시작이니까.
-어쩌면 평생 헤멜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를 제일 주저하게 만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한 번도 확신을 가지고 살아본 적은 없다.
-아직도 망설이고 아직도 확신이 없는데 이제 시작이라니, 조금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에두아르 마네는 열다섯 살을 두고 '세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고 싶은 나이'라고 말했다. 꼭 그런 기분이 드는 시절이었다. 나는 늘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 있었는데 그 분노의 정체는 대체로 터무니없거나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링이건 세상이건 안전한 공간은 단 한 군데도 없지. 그래서 잽이 중요한 거야. 툭툭. 잽을 날려 네가 밀어낸 공간만큼만 안전해지는 거지. 거기가 싸움의 시작이야.
서른쯤 되면 세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게 된다. 자잘한 일들로 너무나 바빠져 버려서 다이너마이트를 한 트럭 가져다줘도 세상을 폭파시키는 일 따위에는 관심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잽 같은 건 날릴 생각도 못한다.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주먹을 내밀지 않고 있는 고요한 세상이어서 도대체 어디다 잽을 날려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김언수, 『잽jab-jab!!』, 문학동네, 2013,「잽」중에서
잽을 배운 적도 없고 날릴 생각도 없다. 잽을 날려 공간을 확보하라는데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가만히 있고 싶지만 그러면 굶어 죽는다. 어쩔 수 없이 잔뜩 웅크리고 링으로 나선다. 어쩌면 링으로 내밀리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저 잘 맞고 싶을 뿐이다. 최대한 안 아프게. 그런데 어디서 주먹이 날아오는지 알아야 최대한 덜 아프게 맞으며 버텨낼 것이 아닌가. 여전히 잔뜩 웅크린 채로 묵묵히 버텨낸다. 가끔 아픈 주먹에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아무도 뭐라고 하고 않는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죽을 것 같이 소리를 질러댄다.
다운은 싫고 KO는 더 싫다. TKO는 극혐이다. 다운이든 경기 끝이든 주먹에 맞아서 자빠지거나 못 일어날 만큼 아프다는 거 아닌가. 이제 그만 아프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링을 내려설 수도 없다. 링을 내려가서도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맷값은 벌어놨어야 한다. 그런 게 쉬울 리 없지.
아픈 주먹은 맞고 싶지 않지만 아픈 주먹이어야 맷값을 더 주는 것 같아 천천히 더 전진한다. 여전히 주먹은 보이지 않고 아프기는 오질라게 아파서 계속 죽을 것 같이 소리를 질러댄다.
가끔, 아니 매일, 왜 이러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주먹이 쉬는 그 라운드와 라운드의 사이에 비치는 이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그 한두 가지의 것들이 너무 즐거워서 앞으로 나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하도 맞다 보니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주먹에도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며 버티는 재주도 생겼다.
그래도 아픈 것은 아픈 거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 아파야 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