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리지만 꾸준한 그대를 위한 환상곡
어라? 영감님 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죠?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라고요? 그러죠. 뭐.
그러니까. 꿈을 꿀 때였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기타를 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곡을 끄적이고 길을 걷다가도 떠오르는 가사를 끄적이던 그때.
엄마는 다 큰 녀석이 집에서 뒹굴며 기타만 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대학도 못 간 녀석이 기타나 퉁기면서 노는 것처럼 보였을지 혹은 아들이 기약 없는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일 년 넘게 참아주던 엄마는 결국 제게 생활비라도 보태라고 요구했고 제게 그런 돈은 없었죠. 기타 스트링 사기도 바쁜데. 사실 술 마실 때 쓰던 돈이 더 많긴 했지만요. 엄마는 제가 중학교 때 사온 거북이를 돌보는 것으로 생활비를 갈음해주셨어요. 감사한 일이었죠.
거실 큰 어항에 있는 그 거북이는 분명히 손바닥만 한 크기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했었어요. 중학생 손바닥이니 얼마나 크겠어요? 그런데 자꾸 커지더라고요? 나중에는 제 팔뚝만 해졌으니까요. 녀석의 이름은 태진이예요. 저는 진태구요. 중학생 때 제가 동생이라며 붙여준 이름인데 나중에는 이름을 따라가는지 엄마가 진짜 동생이 생긴 것처럼 저보단 태진이를 더 아껴줘서 샘이 날 때도 있었어요.
엄마는 태진이를 동생처럼 돌봤어요. 어릴 때는 좀 뚱뚱해야 나중에 키가 큰다면서 먹을 거 달라고 입 벌리고 가만히 있으면 바로 사료나 생먹이를 주었죠. 그래서 그런지 이 비만 거북이 녀석은 나중에 제 등딱지에 얼굴을 넣지도 못했어요. 팔과 다리도 반 정도밖에 들어가지 못했죠. 놀라게 하면 얼른 등껍질 안으로 숨었는데 팔다리가 반 정도만 들어갔어요. 그러고는 목만 등딱지에 넣고 얼굴이 튀어나온 상태로 시선을 아래로 깔곤 했어요. 마치 자기 눈에 안 보이면 잘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사실 챙겨주는 게 귀찮으면서 좋기도 했어요. 제가 기타를 튕기면 가만히 다가와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거든요. 가끔 발을 까닥거리기도 했어요. 박자에 맞춰서요. 그럴 때면 역시 내 동생, 역시 우리 가족이라고 말하곤 했죠.
와. 이 안주 진짜 맛있네요. 살짝 매콤한 것도 좋고 씹는 맛도 있고 마지막엔 녹아서 넘어가는 것까지 딱 제 취향이에요.
그날 이야기요? 아아. 그날. 엄마는 급한 연락을 받고 나가셨어요.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할 정도로 놀라신 상태였죠. 너무 서두르기에 제대로 묻지도 못했어요. 다만 살짝 들린 통화 내용으로 엄마 지인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죠. 급하게 달려 나가는 엄마의 모습에 왠지 저도 가슴이 두 방망이질 치더라고요.
그렇게 마당에 조금 앉아 있었는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한 게 진정이 되질 않았어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지만 정말 많이 놀란 얼굴이었거든요. 그렇다고 전화해서 무슨 일인지 묻기도 그렇더라고요. 병원이고 급한 연락이면 누가 다친 것일 텐데 거기에서 전화를 받은 엄마가 ‘아들, 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이야기한다면 막상 다친 사람들은 기분이 어떻겠어요.
맞아요. 전 걱정이 많아요. 그래서 뭔가를 잘 시작하지 못해요. 내가 이걸 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하고 걱정이 먼저 앞서죠. 웃긴 건 기타를 들면 주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로지 음 하나하나를 조형하는 그 즐거움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게 무대여도, 무대에 선 제게 관심이 없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죠. 그래서 전 언제까지나 음악을 하게 될 줄 알았어요. 그래요. 그랬었죠. 그랬네요. 제가.
그렇게 엄마 걱정을 하다가 마당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하늘이 참 환하다는 게 느껴졌어요. 좀 전까지는 몰랐는데 말이죠.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 보름달이 참 예뻤죠. 그때, 톡톡 하고 태진이가 어항을 두드렸어요.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렇게 머리로 어항 벽을 두드렸거든요. 돌아보니 태진이가 입을 아, 벌리고 있다가 머리로 톡톡 벽을 두드렸어요. 또 배가 고팠던 거죠. 왠지 웃음이 났어요. 태진이가 제 기분을 알고 환기해주려 한 듯한 느낌이었죠.
간단히 술상을 보고 태진이를 어항에서 꺼내 마루 위에 올렸어요. 간식을 한 입 먹은 태진이도 산책이 나쁘지 않은지 슬금슬금 움직이면서 여기저기 기웃기웃했어요. 한발 뻗고 최대한 얼굴을 빼서 왼쪽을 보고 두어 걸음 걷고 얼굴 빼서 오른쪽을 보고.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 환한 달에 구름이 피어오를 때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흥얼거렸을 거예요. 태진이는 제가 기타를 치면 최대한 가까이 와서 머리를 땅에 내려놓고 가만히 그 음악을 들어주거든요.
한 곡을 연주하고 한잔하고 한 곡 부르고 또 한잔했어요. 태진이는 가만히 제 옆에서 기타 소리를 듣다가, 노래를 듣다가 음악이 멈추면 머리로 제 다리를 툭툭 쳤죠.
그리고 아마 꿈을 꿨던 것 같아요. 꿈속에서 저는 여전히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었어요. 태진이가 벌떡 일어나서 음악에 맞춰 춤을 췄어요. 제 음악은 끝날 줄을 몰랐고 한참이나 춤을 추던 태진이가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더니 너무 더웠는지 등껍질을 벗어던졌어요. 등껍질에서 나오자마자 뱃살이 투웅! 하고 튀어나왔죠.
그 뱃살이 웃겨 한참이나 웃는데 태진이가 다가와서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며 그 살찐 팔로 제 머리를 후려쳤어요. 분명 이게 꿈이라는 걸 아는데도 눈물이 나올 만큼 아팠어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는데 태진이가 한 번 더 제 머리를 후려쳤어요. 그러더니 말했어요.
일어나 인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더워서 벗었는데 춤춰서 더운 게 아니었나 봐. 야. 계속 이러고 있을 거면 나 먼저 튄다?
그딴 소릴 지껄이더니 태진이는 두 손으로 튀어나온 배를 붙잡고 어디론가 두 발로 뛰어가기 시작했어요. 저는 아픈 머리를 문지르다가 어이가 없어서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야! 어디가! 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죠.
눈을 뜨고 처음 느낀 감상은 뜨겁다는 거였어요. 그래요. 아주 뜨거웠죠. 둘러보니 마루 어딘가에 불이 붙어서 사방에 불씨가 날리고 있었어요. 놀래서 기타만 붙잡고 일단 밖으로 튀어나왔죠. 밖에는 어느새 소방관이 도착했고 저는 그제야 안방 이불장 안에 인감이 들어있는 엄마의 통장 가방이 생각났어요. 대장으로 보이는 소방관에게 다가가 통장 가방만 부탁드린다고 말했죠.
감사합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좀 답답했는데, 이 칵테일은 아주 시원하네요. 속이 좀 풀리네요.
그 뒤는 별거 없었죠. 불은 금방 진압됐고 원인은 아직 파악할 수 없다고 했죠. 들어가 보니 마루만 다 탔더라고요. 제가 앉았던 자리도, 그 밥상도, 그리고 어항도.
그래요. 어항. 그 까맣게 그슬린 어항을 보고서야 태진이가 생각났어요. 평소에 그렇게 동생이라고 불렀으면서 말이에요. 한참 잔해를 뒤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제가 앉았던 자리 근처에서 나무판자에 깔린 거북이 등껍질이 보였어요.
한참을 서 있었어요.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죠. 몇 번이나 머뭇대다가 겨우 다가가 나무판자를 치우고 등껍질을 들었어요.
그리고 한참을 웃었어요. 도저히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고요.
비어있었어요. 등껍질 안은 텅 비어있었고 아무리 찾아도 거북이는 찾을 수 없었죠. 사실 빈 등껍질을 보고 확신하긴 했어요. 살이 쪄서 안으로 들어가기는 힘들었을 태진이가 꿈에서처럼 껍질을 벗고 시원한 물가로 뛰어갔을 거라고. 그 출렁이는 배를 부여잡고서 파도 소리를 따라 떠나갔을 거라고.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지금도 믿고 있죠.
혹시 제가 그때 태진이를 안고 밖으로 뛰어나왔다면, 전 음악을 계속했었을까요? 가끔 태진이에게 하소연하고 음악을 들려주면서 그렇게 꿈을 부여잡고 있었을까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그날 불길 안에 두고 온 것이 태진이였는지 제 꿈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