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배석판사마저도 이랬다
법원 공무원들은 튀지 않는 선에서 비교적 편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지만 판사님들은 대체로 정장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사회적인 위치가 있다 보니 외적인 면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터.
물론 법정에 들어가는 재판 날이 아니라면 판사님들도 활동하기 편한 세미슈트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일을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그때 부장님은 언제나 흠 없이 깔끔한 풀정장 차림을 고수하셨다.
깔끔한 정장, 지식인의 상징인 안경, 또랑또랑한 목소리에서 들려오는 확실한 딕션 그리고 모든 사건을 파악한 채로 내리는 업무지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부장님은 내게 로봇 같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행동이나 태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그러했다.
각 사회 영역마다 ‘부장’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무게감과 위치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부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어떤 영역이든 상관없이 공통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배 나온 아저씨.
하지만 당시 부장님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깔끔한 외형을 보면 ‘멋있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인생 처음으로 만난 부장판사는 지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넘사벽이었다.
내 인생 첫 판사님은 이렇게 강렬한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돌이켜 보면 부장판사님만 특별했던 건 아니었다.
다른 두 분의 배석판사들도 꽤나 특별한 점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판사’라고 하면 사회 엘리트계층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재물이 아닌 지식으로 엘리트 계층에 속한 판사들은 당연하게도 매우 똑똑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진 선입견은 똑똑한 사람과 인물이 좋은 사람을 구분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때의 국민참여재판부는 좀 이상했다.
다들 한 인물 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두 명의 배석판사는 남 1, 여 1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
두 분의 배석판사님을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나부터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내 키는 184cm다.
확실히 평균 키 이상이다.
처음 법원에 들어왔을 때 선배들과 계장님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어? 키 되게 크네? 법원에 있을 키가 아닌데?”
‘음……, 법원에 있을 키는 뭐지?’
당연히 칭찬+농담이 섞인 말이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참 신기했던 건 각기 다른 곳에서 만난 계장님들과 선배님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비슷한 농담을 건넸다는 것이다.
‘법원에 다니면 표현력이나 유머 센스도 비슷해지는 건가?’
음, 결코 닮고 싶지 않은 센스였다.
꼭 법원이 아니더라도 나는 어딜 가든 키가 큰 편에 속했다.
그런데 국민참여재판부에는 ‘법원에 있을 키가 아닌 사람들’이 나 말고 두 명 더 있었다.
바로 배석판사님들이었다.
일단 두 분 판사님들 모두 군더더기 없는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두 분 모두 내 옆에 섰을 때도 전혀 작아 보이지 않을 만큼 키가 컸다.
얼핏 듣기로 여자 배석판사님은 판사들 중에서도 능력으로 꽤나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힘들다는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2년 동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야 겨우 임관할 수 있는 것이 법관이다.
지금이야 제도가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연수원에서 2년간 경쟁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최상위권 수료자들이 법관을, 차등위 수료자들이 검사를, 나머지가 변호사로 활동을 하곤 했었다.
물론 법원이나 검찰에 갈 수 있는 성적이더라도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형 로펌에 들어가 바로 변호사 활동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10년 이상 판사 혹은 검사로 임관했다가 부장판사 혹은 부장검사 타이틀을 달고 퇴직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선택이었기에 대부분은 성적순대로 법관과 검사를 지원했다.
즉, 판사가 됐다는 건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들 중에서도 2년 내내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만큼 수재라는 의미고, 그런 판사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정도라면 그 레벨은 감히 나 같은 범인이 범접할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이라는 뜻이었다.
‘음……, 부장님이랑 같은 결인가? 약간……, 천재형?’
내가 속해 있던 국민참여재판부는 부장판사나 배석판사나 능력적으로 모두 천상계 인물들이 포진해 있던 곳이었다.
좌배석 판사는 피지컬적으로 엄청난 훈남이었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세 분의 판사님에 관한 프로필을 스토커처럼 조사하고 다니지는 않았으니 다 알지 못할 뿐 사실 알고 보면 좌배석 판사님도 꽤나 대단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능력과 무관하게 그저 좌배석 판사님의 빛나는 외모가 가장 직관적으로 빛을 발했을 뿐이다.
워낙 외모가 뛰어나다 보니 능력 정도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고나 할까?
좌배석 판사님은 나와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 않는 또래였다.
어린 나이에 판사로 임관할 정도면 일단 능력은 이미 검증받은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잘생겼다는 점이다.
패션도 깔끔했다.
당시 유행하던 새로운 디자인의 백팩을 메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예전 모 시트콤에서 훈남 캐릭터로 인기를 끌던 영화배우 조인성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유~ 너무 멋있어.”
내 바로 앞자리에서 일하던 여자 후배는 대놓고 그 판사님을 찬양(?)했었다.
물론 남자로서 좋아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동경의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매일 좌배석 판사님을 찬양하던 그 후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생의 짝이 될 자신의 동기와 사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백년가약까지 맺었으니.
‘응? 고작 2년 차 공무원이 후배가 있……?’
맞다. 내가 2년 차 때 후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1년 전의 나와 같은 상황의 직원밖에는 없다.
즉, 그 후배는 이제 막 입사한 1년 차 신규였다는 얘기다.
그때 그 후배의 마음은 어쩌면 내가 1년 차 때 나의 첫 계장님으로부터 들었던 ‘판사 바라기’ 이야기 속 주인공의 마음과 비슷했을지 모른다.
법정에서도 판사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스토킹(?)했던 이야기 속 인물도 이제 막 입사한 신규직원이었던 걸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입사하자마자 매일 보는 젊은 판사님이 키도 크고, 잘 생겼고, 예의 바르고, 패션도 훌륭하니 입만 열면 칭찬이 나올 수밖에.
‘흑, 역시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세상은 넓고 잘난 사람은 많다.
과거엔 하나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잘난 사람이라 평가받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지금 이 시대는 지능, 피지컬, 인성, 패션 센스 등 모든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조건을 갖춘 육각형 인물이 되어야만 감히 잘났다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번 생은 틀렸어.’
그때의 나는 매일 이런 어나더 레벨들 사이에서 어설픈 2년 차 공무원 생활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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