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원 첫 발령의 추억

나는 법원에 판사만 있는 줄 알았다

by 고장 난 배터리

2012년 7월 11일.

내가 처음 법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날이다.

한국 나이로 27살, 법원 사무직으로 임용이 되던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고, 지금보다 훨씬 뭘 몰랐다.


처음 법원직 공무원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 나는 막연하게 법원에는 판사들만 있는 줄 알았다.

얼마나 생각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이것은 마치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에 전투병만 있을 거라는 생각 혹은 방송국에는 연예인만 있을 거라는 착각과도 다를 바 없는 무지였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질문을 받지 않지만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12년쯤에는 민원인들로부터 종종 법관과 법원 공무원의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이 들어오곤 했으니까.


당시엔 여전히 사법고시가 존재하던 시기였다.

당연하게도 사법고시와 법원 공무원 시험의 난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더러는 사법고시에서 오랫동안 고배를 마셨던 사람들이 법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들어오기도 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법원 공무원 시험은 사법고시의 하위호환 개념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요즘처럼 학사 자격이 흔해진 시대에 고졸 또는 대퇴 학력을 가진 나는 명백히 저학력자에 속할 것이다.

학력을 보지 않고 오로지 시험의 결과로만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공무원은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내가 공무원이 되던 그때는 버블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경제적 버블이 아닌 직업적 버블, 모두가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던 그런 버블 말이다.

이때를 돌이켜 보면 인간 심리상 버블은 꼭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어느 영역, 어느 시기에나 일어날 수 있는 매우 흔한 현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세계 경제가 한 차례 큰 충격을 받은 탓일까.

201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공무원에 열광했었다.

그때는 IMF 사태 이후 공무원이 가장 주목받던 시기였다.

경쟁률은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데다 합격자들의 스펙을 보면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학력의 소유자들이 적잖았다.


그럼에도 나는 법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에 그리 두려움을 갖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작?’이라는 건방진 생각마저 했었다.

타고난 자신감 덕분이었다.

물론 당초 나의 자신감과는 달리 현실은 꽉 찬 2년이라는 공시생 생활을 거쳐 빠듯이 합격할 수 있었지만.


세상 모든 ‘처음’에는 ‘구분’을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청소를 할 때도 구획을 정하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하는 것이 성공적인 청소와 흉내만 내는 청소를 가르는 핵심이 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이제 막 법원에 들어온 나는 빵점짜리 직원이었다.

모든 게 새로웠고, 모든 게 낯설었으며, 모든 게 신기했다.

그래서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당시의 나는 마치 만물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뭉쳐져 있던 창조 전의 카오스와도 같았다.


혼돈 그 자체인 나를 처음으로 맡았던 분은 웃음 많은 여자 계장님이셨다.

내가 법원에 처음 들어와 모든 걸 신기하게 느꼈던 것처럼 그 계장님 역시 처음 법원에 들어오셨을 때는 모든 게 신기했었더랬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했던 건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던 판사라는 존재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래전 기억이라 이제부터 풀어낼 이야기가 계장님의 경험담인지 아니면 아는 직원의 이야기를 대신 전달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때 어땠냐면……”




꽤 오래전, 한 젊은 여성이 법원 공무원으로 임직 한다.

수십 년 뒤 이제 막 법원에 들어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볼 까마득한 남자 후배처럼 그때는 그녀도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으리라.

그녀는 아직 법원 공무원의 정체성을 채 덧입기도 전에 일찍이 재판부로 발령받아 매주 법정에 들어가는 기회를 얻게 된다.


법정의 구조는 단순하다.

전면에는 법관이 앉는 법대가 있다.

그 바로 아래에는 참여관(계장), 실무관, 속기사가 앉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각각 피고인과, 검사 또는 원고와 피고가 좌우로 거리를 벌려 앉는다.


법정 안에 있는 좌석의 높낮이는 모두 같지만 판사가 앉는 법대만큼은 다른 좌석들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다.

처음부터 법정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래서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법대를 바라볼 때 고개를 들어 올려봐야 한다.


인생 처음 판사를 가까이에서 보게 된 그녀는 몹시 설렜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회사에서 만난 느낌이랄까?

물론 판사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내 평생 보기 힘든 사람이라는 건 법관이나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매한가지일 터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기만 하면 세상 어느 누구보다 판사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아마 이만큼 가까이서 판사를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판사의 가족과 친구를 제외하면 그녀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만큼 법정 안에서 둘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그녀는 신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판사님을 직접 볼 수 있단 말이야?’


그뿐 아니다.

가까이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법정에서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었다.

유명인을 보기 위해 제 돈과 시간을 들여 발품을 파는 팬덤도 있는 마당에 자신은 매달 월급을 받으며 매주 판사님을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매달 받는 월급 값은 톡톡히 해야 했다.

실무관은 법정에서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OOO을 갑 제10 호증으로 제출합니다.”


그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원고로부터 서증을 제출받은 뒤 원본은 재판장에게, 부본은 피고에게 전달한다.

원고가 제출한 서증의 부본을 피고에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송달 영수증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법정송달처리까지 완료한다.


“O월 O일자 원고 제출 청구취지·청구원인 변경신청서는 피고 측에 송달되었나요?”


소송의 청구내용에 관한 핵심적인 주장은 상대방에게 미리 송달을 보내주고 그에 대한 반박의 기회를 부여해야만 법정에서 진술을 할 수 있다.

만약 진술이 필요한 문건을 제때 송달하지 못한다면 고작 송달되지 않은 문건 하나 때문에 불필요한 변론기일을 한 번 더 열어야 할 수도 있다.

판사님의 질문에 실무관은 얼른 송달내역을 확인하여 대답한다.


“네, O월 O일자로 피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송달받았습니다.”


이후로 원고와 피고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서류를 다 제출하고, 쌍방의 법률적 주장이 무르익으면 판사는 다음 변론기일을 지정하거나 선고기일을 지정한다.


“다음 변론기일은 O월 O일 OO시 OO분에 열겠습니다.”


그녀는 또다시 바삐 손을 움직여 이번 회차 변론기일의 출석자와 그 결과 그리고 다음 변론기일의 개정 일시를 기록한다.


[1회 변론기일 원고, 피고, 피고의 변호인 모두 출석, 기일결과 : 속행]

[2회 변론기일 : O월 O일 OO시 OO분]


판사는 실무관의 업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모든 걸 배려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실무관이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을 때도 판사는 다음 사건번호를 부르며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OO시 OO분 사건, OOOO가단OOOO, 원고 OOO, 피고 OOO 사건 진행하겠습니다.”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면 실무관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이미 끝난 사건의 기록을 법대에서 내린 뒤 다음 진행할 사건의 기록을 판사님께 올려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다시 이전과 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아무리 바빠도 썸남 혹은 썸녀가 보낸 카톡을 확인할 짬은 있듯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재판에도 찰나의 공백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공백은 내부 관찰자인 그녀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빤~히.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법원 밖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신기한(?) 인물을 빤히 쳐다본다.

법정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데 유독 작은 법정이라면 판사와 실무관의 거리가 겨우 1미터 남짓이 되기도 한다.

올려보면 상대 얼굴의 잡티까지 다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다.


‘……?’


판사도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하는 실무관의 시선을 못 느꼈을 리 없다.

하지만 아는 척할 수는 없다.

뭔가 좀 민망하니까.

모든 게 신기했던, 특히나 쉽게 볼 수 없던 인물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노골적인 시선으로 판사를 민망하게 만들며 이렇게 법원 공무원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풉, 그때 그랬었어.”


깔깔대고 소리만 안 냈지 배를 잡고 활짝 웃으며 이 얘기를 해주시던 계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얘기를 들을 때 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나와 달리 매우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라면 누군가를 보더라도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 곁눈질로 몰래 훔쳐봤을 텐데.


‘음… 이건 좀 이상한가?’


아무튼……

이야기 속 주인공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마음에 품었던 호기심 하나만큼은 나와 매우 닮아 있었다.


‘판사는 어떤 사람일까?’


나 역시 이제 막 법원에 들어온 터라 판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물론 신규 발령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법원장님이 점심 식사를 사주신 적은 있었다.

그리고 지방법원의 법원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동급인 위치의 판사다.

그런데 법원장님을 법정이 아닌 식당에서 처음 만난 탓인지 판사라는 느낌보다는 기관장이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었다.

법원장님이라고 알려주니 그런 줄 알았지 밖에서 보면 그냥…… 점잖으신 어른?


이야기 속 그분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판사에 대해 약간의 호기심을 품은 채로 종합민원실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2년 차,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판사님을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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