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귀인 판사 (1)

인사이동, 그것은 대형사고였다

by 고장 난 배터리
사고 : 뜻밖에 갑자기 일어난 좋지 않은 일.


살다 보면 가끔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할 때가 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듯 우리 삶의 한 부분인 이 ‘사고’도 참 다양한 형태를 띤다.

나 역시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나의 사고는 법원 내 인사이동으로 발생했다.


법원 내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인기 있는 부서는 단연 ‘민사과’다.

이 외에도 형사과, 종합민원실, 민사신청과, 총무과 등의 부서들이 있지만 이곳들은 제 나름대로 뚜렷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이에 반해 민사과는 단점보다 장점이 월등히 많다.


민사 소송 업무는 다른 부서인 종합민원실 그리고 민사신청과의 업무와도 연계가 되기에 법원 직원이라면 필수적으로 배워봐야 하는 업무다.

짧으면 6개월, 길면 1~2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겨야 하는 법원공무원들의 경우 젊은 시절에 들어와 60세에 정년퇴직을 한다면 평생 동안 적게는 20회, 많게는 40회 이상의 인사이동을 겪어야 한다.

그 수십 번의 자리 중 태반은 민사 절차와 관련이 되어 있는 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모든 법원 업무의 기본이 되는 민사 업무는 일찍 알아둘수록 좋다.


물론 업무량이나 민원의 강도 측면에서 봤을 때도 민사과는 법원 내에서 가장 선호할 만한 조건을 갖췄다.

그래서 인사이동 시기만 되면 민사과를 가려는 직원들의 눈치 싸움이 물밑에서 조용히 시작되곤 한다.


나 역시 신규직원이던 시절부터 매 인사이동 때마다 줄기차게 민사과를 1 지망으로 적어냈다.

처음엔 형사과로 밀렸고, 그다음엔 등기소로 보내졌고, 그다음엔 민사신청과로 이동했다.

그렇게 지나간 4년.

나는 법원에 들어오고 5년째, 네 번의 인사 희망원을 써내고 나서야 겨우 민사과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민사과에 가게 되는 건가?’


난 기대에 부풀었다.

정작 민사과가 어떤 곳인지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음에도 워낙 선배들의 민사과 찬양을 많이 들어봤기에 저도 모르게 민사과 발령에 한껏 설렜다.

그런데 내가 가게 된 보직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


‘응? 민사 보존?’


지금은 전면 전자화됐지만 당시엔 대부분의 민사소송이 종이기록으로 진행됐었다.

당연하게도 종결된 사건의 재판기록은 법에서 정한 일정기간 동안 보관을 해두어야 한다.

법이 정한 순서에 따라 법이 정한 방법대로 민사소송 기록을 창고에 보관해 두는 게 바로 민사 보존계 담당자가 할 일이었다.


“보존계 나쁘지 않아. 물론 민사 업무를 못해보는 게 좀 아쉽긴 해도 업무적으로는 널널해서 괜찮을 거야.”

“일이 편해요?”

“지금 있는 실무관은 기수가 많긴 한데 원래는 고참 선배들이 가던 자리야. 승진 앞두고 있는 선배들.”


고참 선배들이 가는 자리라면 일이 힘들 리는 없었다.

민사 재판부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건 좀 아쉬웠지만 업무량이 그리 많지 않을 거란 선배들의 말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하지만 그 모든 판단은 나의 그리고 내게 조언해 준 선배들의 오판이었다.

막상 가게 된 그 자리는 처참한 자리, 말 그대로 개똥 같은 자리였다.


법원행정처에서는 매 인사이동 때마다 각급 법원의 정원을 정해준다.

그리고 각급 법원의 총무과는 할당받은 인원을 각 부서에 배치한다.

이전에 일했던 인원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배정한 인원이 한 명씩 늘어나거나 줄어들 때도 있다.

이때가 마침 내가 일하던 법원에서 정원 한 명이 줄어들던 때였고, 그 희생양으로 선택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그 자리를 가기 전에는 두 명의 실무관이 나눠서 업무를 했다.

그런데 내가 민사과로 발령받았을 때 두 자리가 하나로 합쳐지며 내게로 왔다.


‘……사고, 대형 사고다.’


두 명의 업무가 내게로 집중됐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업무량 자체가 2인분은 아니었다.

아마도 전임자 때처럼 두 명이 나눠서 일을 한다면 그럭저럭 해볼 만한 업무량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병목현상이다.

도로를 달리는 차동차든 배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이든 한 구간에 집중되는 병목현상이 발생하면 유입되는 수량의 총합 이상으로 과부하가 발생하니까.


수학적으로 1+1=2이지만, 만약 병목현상이 발생한다면 현실에서는 1+1은 3이 될 수도, 혹은 4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트래픽이 확 줄어들면 2-1=1이 되는 것이 아니라 0.5가 되기도 하지만.


나는 보존계에 가자마자 혼란에 빠졌다.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은 ‘민사소송기록 보존’, ‘승계집행문 발급’, ‘소송비용액확정 보조’였다.

굳이 이게 무슨 업무인지 구구절절 말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확실히 1명이 처리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는 거다.


앞서 말했듯 1+1=2가 아니다.

사건 하나가 늘어나면 단순히 한 건 더 처리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전화민원과 열람복사민원 등 추가적인 업무를 생각하면 실제로 체감되는 업무량은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다.


그곳에서 매일 야근은 기본이었다.

사실 야근이라는 것도 퇴근 후 한두 시간 더 일하다 가는 것과 매일 11시, 12시까지 남아서 일을 하는 건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개념의 야근이다.

그런데 나는 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나와 불 꺼진 사무실에서 홀로 일을 처리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렇게 해도 일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집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아껴도 좀 더 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젊은이의 패기였을까?

나는 급기야 법원에 상주하며 미친 듯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상 속 짧은 영감들은 https://www.instagram.com/battery_note에서 더 자주 나누고 있습니다.

팔로우하고 소통해요!

월, 수, 금 연재
이전 06화6. 꼼꼼함과 집요함 그 사이 어딘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