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같은 인연
새로운 자리로 옮긴 뒤부터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 실제로 내가 실행했던 루틴이다.
일요일 오후, 교회에서 돌아오면 6일 동안 입을 옷과 속옷 그리고 수건을 챙겨 법원으로 출발한다.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 캄캄한 사무실에 불을 켜고 일을 시작한다.
밤 12시가 넘어가면 슬슬 세면도구를 챙겨 당직자를 위해 마련된 법원 내 샤워장으로 향한다.
간단하게 씻고 차로 내려가 조수석에 눕는다.
‘덥다.’
내가 민사 보존계로 가던 날이 무더운 여름의 한복판이었던 7월 11일이었다.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에어컨을 켜고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
[31세 법원 공무원,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하다 차량 안에서 에어컨 질식사. 왜 법원은 그를 방치했나?]
이런 기사가 나온다면……
‘난 꼭 생존할 테다.’
내게는 책임져야 할 노모와 이제 사귄 지 4년 차가 된 어여쁜 여자 친구가 있으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에 몸을 부르르 떨며 조금이나마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차창을 아주 조금 내린다.
그리고 10초 만에 곯아떨어진다.
자다 보니 등이 쑤신다.
아무래도 조수석의 쿠션은 184cm의 건장한 몸을 감당하기 한없이 부족한가 보다.
나는 눈을 떠 핸드폰 시계를 본다.
‘새벽 6시’
꽤 많이 잤다.
유독 더 덥거나 혹시라도 차 안에 모기라도 한 마리 들어와 잠을 설치는 날엔 4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나는 때도 많았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을까 눈을 감아보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잠이 깬 김에 차 뒷좌석에 걸려 있는 옷 한 벌을 꺼내 다시 당직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장으로 향한다.
그렇게 무겁고 암울한 하루가 또 시작된다.
이런 생활을 시작하고 첫 한 달은 젊음의 패기로 버텼다.
최대한 일을 떨어내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화되겠지 생각하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가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정상적인 직장생활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내 주변 직원들은 나의 심각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매일 주차장에서 잠을 자며 일을 할 만큼 업무량이 많은데 모를 수가 없었겠지.
그렇다고 그들이 도울 수 있는 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네 왔다.
‘위로가 전혀 안 돼.’
나는 T다.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하나의 알파벳으로 나를 설명하라 한다면 고민하지 않고 T라는 알파벳을 말할 것이다.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자 내게 하소연을 해도 감성적 위로보다는 실질적인 조언이 입 밖으로 먼저 나가는, 반대로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땐 별 도움 안 되는 위로보다는 실질적인 도움에 더 감동받는 그런 사람.
나의 이런 성격 탓에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반응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내게 없는 모습을 억지로 꾸며내면서까지 사회생활을 하기엔 당시의 내 상황이 너무 벅찼으니까.
지금은 그때 내게 위로를 건넸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내겐 너무 여유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동안 내가 받았던 가장 큰 감동은 잘 모르는 후배가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내 책상에 올려둔 작은 과자 한 봉지였다.
그저 말뿐인 위로에 감사하지 못할 만큼 마음은 메말라 있었고, 위로의 의미로 점심을 사주겠다는 분들에게 내 점심시간을 내어주기엔 식사 후 짧게나마 갖는 휴식이 너무 간절했다.
힘내라는 메시지와 작은 과자 한 봉지.
그것이 당시 내게는 부담 없이 감사할 수 있는 딱 적당한 수준의 위로였다.
한 달이 지나가던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나 죽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가 나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냈던 것 같다.
이대로는 위험하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라고.
나는 20살 때부터 1형 당뇨를 앓아왔다.
일명 소아당뇨라고도 일컫는 병인데 주로 미성년 시기에 많이들 발병한대서 소아당뇨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의 경우 만 나이로 18세 때 발병해 만 나이로 30살이던 당시 13년째 투병 중이었다.
지금은 당뇨 환자들이 많이 늘어 당뇨병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1형 당뇨가 뭔지, 2형 당뇨가 뭔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을 만큼 아직은 우리 사회가 젊은 당뇨 환자에 대해서는 그리 익숙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 역시 굳이 직장에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
나 혼자 잘 관리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고, 매일 법원 주차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다 보니 점차 몸에서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와는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왜 사람들이 회사에서 무리하게 일하다가 작고(作故)하는지 그때 조금이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운동하자.’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공노비는 아무리 힘들어도 감히 퇴사를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친구 OO은행, 내게 빌려준 돈을 빌미로 정년까지 일하게 만든 고마운 내 친구.
나는 내 친구 때문에라도 법원에서 쓰러질지언정 퇴사를 할 수는 없었다.
생존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운동이었다.
그전부터도 검도를 수련하며 꾸준히 운동을 해왔었는데 새로운 자리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는 검도는커녕 방구석에서 팔 굽혀 펴기 한 번도 해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다행이었던 건 당시 그 허름한 청사 내에도 작은 헬스장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법원에서 숙식을 해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나는 살기 위해 퇴근 직후 헬스장에 올라가 1시간씩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내가 제일 지루해하는 운동이 헬스인데 그걸 매일 하게 되다니……
나는 거의 매일 근력운동 20분, 유산소운동 40분을 채우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이어갔다.
그런데 헬스장에서 유독 한 분과 자주 마주치곤 했다.
‘모르는 얼굴인데 판사님인가?’
그때의 나는 ‘생존’을 제외한 그 무엇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상 가족과도, 연인과도, 친구와도 잠시 연을 끊은 채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던 중이었으니까.
어느 날 그분이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되게 빨리 달리시던데 체력이 굉장히 좋으신가 봐요.”
낯선 이와의 바람 같은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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