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꼼꼼함과 집요함 그 사이 어딘가 (2)

다시 판사가 된 변호사

by 고장 난 배터리

과거에는 판사와 변호사가 한 방향으로 흘렀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면 성적순대로 법관, 검사로 임관을 하고 그 외의 수료생들은 변호사가 됐다.

법관, 검사로 일을 하다가 일부는 옷을 벗고 변호사가 되지만 반대로 변호사가 법관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이런 단방향 흐름이 변호사도 법관으로 임관할 수 있는 쌍뱡향 제도로 바뀌었다.

경력법관과 전담법관이라는 새로운 임용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두 제도 모두 일정 기간 법조계 경력을 쌓은 외부 인사를 법관으로 임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제도를 이용해 법관으로 임용되신 게 바로 이 판사님이셨다.


판사님의 과거 경력을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판사님은 원래 부장판사였다.

오래전에는 법조 경력을 법원에서 시작해 부장판사까지 승진을 했었더랬다.

그러다 중간에 면직을 하고 변호사 활동을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동안 변호사로 활동하시던 판사님은 법조 경력이 풍부한 변호사를 법관으로 선발한다는 소식에 다시 법관 임용을 신청해서 평판사 신분으로 법원에 재입성하게 된다.


‘변호사가 성격에 안 맞으셨나?’

‘돈은 벌 만큼 벌어서 이제 굳이 변호사를 할 필요가 없어졌나?’


여러 추측을 해봤지만 내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칫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기에 직접 여쭤볼 수도 없었다.

그저 그런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원래 내부자가 외부자가 될 때 가장 엄격해지고, 가장 무서워지는 법이다.

판사님은 특이하게도 부장판사도 해봤고, 변호사도 해봤다.

그러니 내외부 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그래서 변호사들에게 더욱 엄격하게 구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변호사라는 사람이 이것도 파악을 못하고 있다고?’


아무래도 법원 안에는 평생 법학만 공부했던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보니 선비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물론 판사든 법원공무원이든 소수의 직설적인 사람들이 개중에 섞여 있지만 이건 말 그대로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직접적인 의사표현보다 간접적인 의사표현 방식을 더 선호하는 21세기 선비들이다.


판사들도 법정에서 가끔 마뜩잖은 일을 마주쳤을 때 표정으로, 분위기로 불편함을 표현할 때가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변호사들도 이걸 모를 리 없다.

어찌 됐든 표현을 했고, 상대방이 그 표현을 알아차렸다면 큰 문제없이 원만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판사님은 유독 변호사들의 잘못을 매우 직설적으로 언급하곤 했었다.

이와 달리 원피고 당사자들이 이해 안 되는 주장을 하거나 법률적으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일 땐 딱히 문제를 삼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잦았다.

유독 변호사들에게만 엄격했던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아마 판사님은 전문적이어야 할 전문가가 전문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 그 모습에서 짜증을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자기가 담당하는 사건인데 이걸 몰라요?”


가끔은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종종 이런 면박(?)을 줄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법인이 당사자인 사건에서 법인 대표가 출석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사건 판단에 제법 중요한 법인 운영에 관한 일을 잘 모른다면 판사님의 입에서 대번 이런 질문이 던져지곤 했다.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회사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본인이 대표라면서 그 정도의 회사 운영 방식도 몰라요?”

“아, 이건 따로 처리하는 직원이 있어서……”

“자잘한 업무는 당연히 대표가 모를 수 있지. 그런데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이 정도는 당연히 대표가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아니에요?”

“……그렇긴 합니다.”


판사님의 입장에서는 변호사는 변호사의 일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이 정상이고, 기업의 대표라면 어느 누구보다 기업운영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상식처럼 작동되지 않는 게 바로 이 세상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법정에서 판사님의 질문을 받는 변호사 또는 당사자가 당황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봤던 판사님은 꼼꼼했고, 원칙을 따랐으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였다.

만약 누군가가 결코 몰라선 안 되는 일을 마치 당연한 듯 모르고 있거나 혹은 마땅히 처리해야 할 일을 마치 당연한 듯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때부턴 판사님의 지적 대상이 되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첫 1시간 반의 가르침(?)도 그 원인을 내가 제공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확히 무엇이라고 콕 짚을 수는 없지만 뭔가 내게서 못 미더운 모습을 보았기에 본격적인 업무 개시 전부터 나를 단속하고 시작했던 게 아닐까?


서두에도 언급했다시피 나는 초반부터 숨길 수 없었던 판사님의 꼼꼼함과 통제성향에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꼼꼼함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나의 업무 공백을 채워줄 것이고, 마치 위에서 모든 상황을 조망하듯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통제성향은 오히려 내 일손을 줄여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성실함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꼼꼼함이다.

가끔 일을 하다 보면 순간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들이 있다.


‘어?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정말 신기한 건 그런 생각이 스쳐갈 때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열이면 여덟아홉은 작게나마 꼭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적잖은 신호를 보내며 여러 가지 경고를 해온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무의식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뿐.


꼼꼼한 사람은 뇌리를 스치고 가는 이런 자문(自問)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의문이 들면 그것을 꼼꼼히 체크하고 넘어간다.


‘어? 내가 그거 했던가?’


내면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에이, 했겠지.’라며 확인도 거치지 않고 답을 내려버리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내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귀 기울여도 꽤 많은 일들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


꼼꼼한 사람들은 또한 모든 업무를 체계화한다.

일의 순서를 정해놓고, 그 순서마다 해야 할 작은 일들을 매뉴얼화하며 언제나 같은 루틴으로 동일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저 스스로를 만들어놓는다.


사람은 본디 망각하기 쉬운 존재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듯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오로지 기억에 의존하다 보면 종종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을 체계화해놓는다면 그 실수는 현저히 줄어든다.


나는 유독 꼼꼼한 판사들을 많이 만나봤다.

타고나기를 똑똑하게 태어나 법관이 된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만 남들보다 압도적인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법관의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가 훨씬 많다.

어느 직종, 어느 계층이고 가릴 것 없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함과 꼼꼼함을 장점으로 가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똑똑함은 쉬이 따라 할 수 없지만 성실함과 꼼꼼함은 조금이라도 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마저 무작정 따라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성실함과 꼼꼼함을 따라 하는 게 똑똑함을 따라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쉽지 않을까?

확실히 나는 똑똑할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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