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더 이상 경찰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트럼프의 목표는 2026년 3월 혹은 4월쯤에 있을 미중정상회담에서 유의미한 실익을 거두는 것이다.
중기적으로 트럼프의 목표는 2026년 11월에 있을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트럼프의 목표는 2028년 11월에 다시 공화당, 정확히는 자신의 세력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다.
1월과 2월에 각각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타격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단기목표를 수월하게 달성하기 위함이다.
또한 단기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중기목표를, 중기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장기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초석들이다.
중국의 에너지 수급을 압박해 미중정상회담에서 승기를 가져오면 트럼프는 그것을 업적으로 내세워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려 할 것이고, 중간선거의 승리는 2년 뒤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까지 트럼프와 공화당에 유리한 정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판을 마련해 줄 것이다.
정부와 의회가 같은 편이라면 아무래도 다시 정권을 창출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여기까지가 트럼프가 자신의 임기 동안 실현시키려는 계획들이다.
이렇게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결국 중국 굴복시킨 뒤에 국회도, 정부도 자기들이 가져가겠다는 거잖아?’
어찌 정치인이 권력에서 자유롭겠는가?
이게 현실이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트럼프에겐 아직 ‘초장기 목표’가 남아있다.
그리고 이 초장기 목표는 다음 시대 미국의 패권유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 세기 미국은 전 세계에 해군력을 투사하며 제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상대적으로 약한 육군 전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지구의 바다를 장악함으로써 안전한 해양제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미국의 화폐 시스템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군비를 지원했고, 이것은 미국이 지난 80년 동안 제국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문제는 화폐 시스템은 영원하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 이전의 제국들이 자신의 패권을 내어주었던 원인은 군사력 약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결과에 가깝다.
제국이 쇠락하는 원인은 모두 화폐 권력의 약화, 즉 화폐 시스템의 붕괴에 기인한다.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지 어언 80년이 넘었다.
그 사이 미국의 달러도 타락할 만큼 타락했다.
미국의 부채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고, 이제는 부채 이자로 지출하는 비용이 국방비 지출보다 더 많아졌다.
미국의 무한 부채를 가능케 했던 최대 채권국, 중국은 지금 미국의 채권을 내다 파는 방법으로 달러 화폐 시스템을 흔듦으로써 미 제국의 수명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군사력을 약화시킬 예정이다.
모든 군사력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유지·발전할 수 있다.
즉 현재의 경제력은 곧 미래의 군사력이다.
화폐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건 미국이 앞으로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야 함에도 정작 쏟아부을 수 있는 돈이 없다면?
후발주자들이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걸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전의 제국들과 달리 미국은 이런 상황을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화폐 시스템의 붕괴가 가져올 제국의 몰락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초장기 플랜을 추진하게 되었다.
먼저 지역패권 양성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은 이미 세계 경찰의 역할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자신의 우방국들을 자신의 국방력으로 대신 지켜주는 시대는 끝났다.
현재 유럽의 가장 강력한 위험은 다름 아닌 러시아다.
사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기구도 당초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군사기구였다.
비록 소련은 사라졌지만 그 후신인 러시아는 여전히 나토의 주요 견제국이다.
그런데 유럽의 군사방위 기구인 나토에 절반이 넘는 군사비를 대주던 미국이 이제 점차 지원을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이로 인해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국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처음엔 미국을 비난하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차갑게 말했다.
“너희는 체납자야. 어서 밀린 청구서부터 지불해.”
트럼프의 발언은 국가적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동맹국의 존재를 한낱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다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트럼프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경제적, 군사적으로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다.
물론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 미국은 아낌없이 유럽을 지원했다.
처음에는 유럽도 미국에 협조적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힘이 조금씩 빠지고,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유럽 내에서는 기존에 해왔던 대로 미국으로부터 원조는 받되,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는 추가 이익을 챙기는 얌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뻔뻔한 녀석들을 봤나?”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유럽인들이 뻔뻔해 보였다.
자신들로부터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공짜밥을 얻어먹으면서도 미국이 한 목소리를 내달라 요청할 때는 뻣뻣하기 그지없다니.
"받았으면 받은 대로 협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
유럽에 불만을 가지는 미국인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참고 참았던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그들의 억눌려 있던 불만을 하나로 묶어 터뜨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의 뒤에는 불만을 품은 수많은 미국인들이 있다.
"우리에게 받아간 만큼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거라면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거야. 국방? 알아서 해. 러시아가 너희를 침공하든 말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을 거니까."
미국과 유럽은 이렇게 갈라졌다.
미국은 더 이상 공짜로 지켜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건 유럽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원칙이 있다면 예외도 있는 법.
미국에 있어 유일한 예외는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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