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란을 왜? (5)

명백한 운명의 부활

by 고장 난 배터리

미국의 트럼프는 상식을 뛰어넘는 언행으로 국가 원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껏 이처럼 경솔하고, 이처럼 경박하고, 이처럼 거침이 없는 국가 원수는 없었다.

최소한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라에서만큼은 말이다.


때때로 트럼프는 마치 되는 대로 지껄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의 지껄임에는 외교 우선순위에서 언제나 최상단에 위치해 있던 앵글로색슨 연합(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파이브 아이즈 동맹)도 예외가 아니다.


"캐나다는 우리의 소중한 제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 (Canada should become our Cherished 51st State.)" (2025년 2월)


이 말에 전 세계는 경악했다.

비록 미국이 오랫동안 전 세계로부터 미움을 많이 받기는 했어도 이건 1등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본래 가장 앞서는 자는 칭찬보다 욕을 먹는 게 이 세상 이치다.


그럼에도 세계 최강국으로서 품위와 품격을 지켜왔다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설령 이전까진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과거의 미국이 얼마나 품격 있는 나라였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이 자신의 머리맡에 있는 최우방 동맹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입에 담았다.

만약 2016년으로 돌아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앞으로 미국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할 거라 알려준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야, 미쳤냐? 미국 대통령이 그딴 소리를 한다고?”


미친 건 너다.

이제는 미치지 않으면 정상으로 살 수가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지난 10년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트럼프의 실언은 이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국제 안보를 위해 그것(그린란드)이 정말 필요하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는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우리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One way or the other, we're going to get it.)" (2025년 3월 의회 국정연설)


덴마크령인 그린란드에 대해서도 실언을 이어갔고,


"우리는 멕시코만의 이름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꿀 것이다. 아주 아름다운 어감이다. (We're going to be changing the name of the Gulf of Mexico to the Gulf of America, which has a beautiful ring.)" (2025년 1월 기자회견)


직접적으로 멕시코를 갖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런 의도를 의심할 만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과연 그의 말은 진정 실언이었을까?


19세기 미국은 남북전쟁을 겪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이었다.

그 즈음 아직은 통합되지 않았던 미국 내에서 꽤나 인기를 끌었던 사상 하나가 있다.

바로 팽창주의다.


당시 팽창주의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내놓은 개념이 바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다.


이것은 기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당시의 미국인들이 기독교와 민주정을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캐나다가 속해 있는 북미, 멕시코가 위치한 메소아메리카, 쿠바를 비롯한 여러 섬들이 분산되어 있는 카리브해를 미국에 흡수·통합하려 했던 시도다.


당시 미국인들은 이것이 하늘이 자신들에게 내려준 사명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이미 정해져 있는,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외쳤다.

이건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고.


캐나다가 연방을 결성하고, 멕시코가 저항한데다 미국 내에서도 남북이 갈라져 내전을 겪은 탓에 이 팽창주의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지만 200년이 넘도록 이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없어지지 않고 찌꺼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200년 전의 사상이 다시 부활한다.

‘명백한 운명’의 대상국이었던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언급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나간 200년의 세월만큼 더 진화발전을 한 것인지 이제는 거기에 그린란드까지 추가되었다.


어느 나라든 자국 국경에 완충지대를 두길 원한다.

아무리 미사일이 발전하고, 비행기가 날아다녀도 지리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이 미군기지가 있는 대한민국과 국경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북한의 정권 연장을 돕는 것이고, 러시아가 유럽과의 사이에 있는 발트3국, 우크라이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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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입장에서 좌우는 대양으로 막혀 있기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남북이다.

남으로는 멕시코를 영향권 안에 두고 북으로는 캐나다를 영향권 안에 둔다면 미국은 동서남북에 성(城)을 두른 천혜의 요새가 된다.

물론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들은 덤이다.


그렇다면 200년 전에는 빠져있던 그린란드는 왜 갑자기 끼어들게 된 걸까?


시대가 바뀌면 요건도 바뀌게 마련이다.

200년 전에 그린란드는 그저 얼음 땅에 불과했다.

전략적 가치가 전무한 땅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가치가 달라졌다.

북극항로와 희토류 때문이다.


희토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세계인이 모두 안다.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를 만들려면 희토류가 필수라는 것을.

물론 반도체 말고도 희토류의 가치를 증명해줄 산업은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미래의 패권과 관련이 있는 산업들이다.


현재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은 중국이다.

그렇다고 중국에만 희토류가 있는 건 아니다.

미국도 마음만 먹는다면 희토류를 생산할 수 있다.

문제는 희토류를 생산하는 데 얻는 것만큼 큰 환경적 희생이 따르기에 쉽사리 생산하지 못할 뿐이다.


조금 잔인한 얘기일지는 모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영토가 아닌데 안정적으로 희토류를 공급해줄 수 있는 나라가 절실할 것이다.

그곳의 환경 문제는 내 알 바 아닐 테고.


그린란드는 미국에게 있어 희토류라는 전략적 자산을 제공해줌과 동시에 또 하나의 중요한 지리적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바로 북극항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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