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란을 왜? (8)

포트녹스엔 금이 있을까?

by 고장 난 배터리

"미국이 지구의 암호화폐 수도(Crypto capital of the planet)이자 세계의 비트코인 초강대국(Bitcoin superpower of the world)이 되도록 하겠다."


트럼프 정부 2기가 시작되기 전 트럼프가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했던 발언이다.

이 말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고작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 비트코인을 미국 대통령 후보가 언급한다고?”


설령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게 보통의 정치인들이 취하는 자세다.

그런데 트럼프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워낙 이상한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헛소리 하는 거겠지.”

“저거 암호화폐 지지자들 표 가져오려고 발악하는 거잖아. 저래놓고 대통령 되면 입 싹 씻는다에 내 전 재산이랑 내 손모가지 건다.”


트럼프가 비트코인을 언급해도 사람들은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양치기 소년 효과였다.


1기 때의 트럼프를 겪어본 세계인들은 이미 그의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의 말을 반쯤은 거짓말로 생각하고 접근했다.

그런데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부터 트럼프의 암호화폐 관련 정책들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어? 이걸 진짜 한다고?”


트럼프는 암호화폐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범죄에 사용된 비트코인을 몰수하여 정부 비축분으로 모아두기까지 했으며, 미국 근로자들의 퇴직연금(401K)으로도 비트코인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수정했다.


정부 산하의 기관들도 트럼프 정부의 기조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리플(Ripple Labs)의 증권성 소송, 코인베이스(Coinbase) 미등록 영업 소송, 바이낸스(Binance) 및 창펑 자오(CZ) 민사 소송, 저스틴 선(Justin Sun) 및 트론(Tron) 관련 소송.

SEC(미증권 거래위원회)는 이전에 암호화폐 업계를 상대로 제기했던 위 소송들을 줄줄이 취하하며 암호화폐 업계에 숨통을 트여주었다.


미 의회도 본격적인 암호화폐 관련 법안을 심사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 하원에서 통과된 후 상원에서 계류 중인 CLARITY 법안 (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는 핵심적인 법안이다.

이 법이 상원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암호화폐는 명실상부 미국이 공인한 자산의 지위를 얻게 된다.

또한 미국이 공인한다면 전 세계 각국은 서둘러 미국의 기준을 따라 법안을 제정하게 될 것이다.

대{大}암호화폐 시대의 서막이다.


“이 정도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해 했던 립서비스가 아닌데?”


그렇다.

이 정도 수준의 정책 추진은 국가적으로 전략적인 가치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미국은 암호화폐를 단순히 ‘돈벌이 수단’ 혹은 ‘표를 얻기 위한 소스’ 정도를 넘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로 판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의 키워드는 자산 그리고 화폐다.


암호화폐를 설명하려면 그전에 먼저 미국이 패권을 잡게 된 배경부터 설명해야 한다.

미국의 패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세계의 리더가 된 건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굴복시키고, 유럽에서 나치독일을 몰아내며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이 패권을 거머쥔 건 당시 금의 70%를 미 정부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무력은 단기적으로 다른 나라를 굴복시킬 수 있지만, 돈은 장기적으로 다른 나라로 하여금 내 뒤를 따르게 만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미국으로부터 전쟁물자를 공급받았던 유럽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금의 대부분을 미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렇게 미국은 전 세계 국가들이 가지고 있던 금의 70%를 단독으로 보유함으로써 자신들의 로컬 통화였던 달러를 전 세계가 무역결제에 사용하는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그러다 1971년 닉슨 쇼크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들이 보유한 막대한 양의 금을 담보 삼아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었던 미국이 갑자기 충격적인 발표를 한 것이다.


[본인은 코널리 재무장관에게 달러를 금이나 다른 준비 자산으로 교환해 주는 것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단, 통화 안정과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금액과 조건은 예외로 합니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달러=금’이었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미국 정부의 약속이었고, 국제무역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미국 정부는 자신들의 통화와 금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일시적이라던 이 조치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결국 달러는 담보력 없는 순수한 명목화폐(Fiat Money)가 되어버렸다.

담보 없이 오로지 신용으로만 돌아가는 위험성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71년이라면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일이다.

이 말인즉슨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법정화폐가 ‘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내 윗세대만 하더라도 ‘진짜 돈’은 오직 금뿐이었다-물론 이 지식은 윗세대 중에서도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은 사람에 한 한다.


국가가 찍어내는 지폐는 그게 아무리 미국의 것이라 할지라도 진짜 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닉슨 쇼크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오래도록 속고 있었다.

달러가 곧 진짜 돈이라고.


명백한 사실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내내 돈이었던 건 오직 금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가 찍어낸 법정화폐도 ‘돈’으로서의 속성을 가지고는 있다.

다만 법정화폐의 수명은 그것을 찍어낸 국가의 수명에도 미치지 못할 뿐.

금은 인류 역사 내내 돈이었지만 법정화폐는 그 나라가 존재하는 동안, 더 짧게는 그 나라의 안정성이 유지되는 동안만 돈일 수 있었다.


그래서 기축통화의 지위에 올랐던 달러도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

처음엔 순전히 금의 가치에 연동되어서야 겨우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71년부터 금과 달러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금은 여전히 관념적 돈의 지위를 유지했고, 달러는 석유를 살 수 있는 실용적 돈의 지위로 새로이 태어났다.


미국이 해외로 달러를 공급하고, 미국 외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받은 달러로 다시 미국의 국채를 사주는 부채 사이클이 이때부터 더욱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금이라는 진짜 돈을 70% 이상 가지고 있었기에 비로소 얻을 수 있었던 기축통화의 지위가 금 태환 폐지 이후부턴 채권의 수요가 뒷받침되어야 유지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의 연동을 깨버렸을까?

이에 대한 미 정부의 설명은 없었다.

그저 우리가 추측해야만 한다.


‘뻔한 거 아니야? 줄 게 없으니까 못 준다고 한 거지.’


적잖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의심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에는 더 이상 금이 없다.]


실제로 수많은 투자자들도, 심지어 정통 경제학을 배운 지식인들도 이러한 의심에 어느 정도 합리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애초에 금 보유량이 충분했다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금 태환을 폐지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물론 이건 조금 극단적인 추측일 수도 있다.

어쩌면 없어서 못 주는 게 아니라 없어지기 전에 안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금을 보관하고 있는 금고의 이름이 ‘포트녹스(Fort Knox)’다.

이곳은 1943년, 1974년 2017년 이렇게 단 세 번밖에 열리지 않은 금단의 영역이다.

그래서 이곳에 금이 없을 거라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뭔가 구린 게 있으니까 못 보여주는 거지. 있으면 안 보여줄 이유가 있어?’


난 개인적으로 이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

물론 금이 없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단순히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생각하는 건 조금 억지스럽다고 느낄 뿐이다.


금은 여전히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즉 금은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국가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걸 굳이 매년 보여주어야 할까?

중요한 자산일수록 안 보여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핵을 매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핵이 없는 게 아닌 것처럼 금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금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 미국이 왜 금 태환제를 폐지한 건데? 그건 바꿔줄 돈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


없어서 못 바꿔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바꿔주기 싫어서 안 바꿔주는 것일 수도 있다.


달러가 금과 연동되어 있던 때에는 금 1온스에 35달러로 가격이 고정되어 있었다.

1온스는 약 31.1그램이다.

당시엔 35달러를 은행에 가져가면 실제로 금 1온스를 돌려줬다고 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게 국가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정책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미국의 달러는 전 세계에 풀리는 기축통화가 되었다.

이 말인즉슨 달러는 앞으로도 무한정 해외로 빠져나가게 될 거란 뜻이었다.


‘어? 그럼 외국 정부가 엄청난 양의 달러를 확보한 다음에 미국에 금태환을 요구하면?’


순식간에 금 보유량이 뒤바뀌게 된다.

전 세계 정부 보유량의 70%를 홀로 가지게 됨으로써 경제 패권을 거머쥐었던 미국이 기축통화 달러로 인해 그 지위를 잃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즉 금태환제는 오히려 달러가 미국을 공격할 수단이 되게 했다.

그리고 ‘금과 연동된 기축통화 달러’라는 미국의 이 약점은 달러가 세계로 더 많이 풀려나갈수록 더 심각하게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처음부터 기축통화와 금태환제는 함께 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금태환제를 유지하려면 금 유출을 야기할 수 있는 달러의 해외 유출도 막아야만 한다.

그럼 영원히 달러는 기축통화가 될 수 없다.


반대로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금이 유출되기 전에 금과의 연동을 끊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달러가 전 세계로 뿌려지며 마음껏 기축통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금태환제를 폐지했다.

금이 없어서라기보다 구조적으로 이 둘이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었던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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