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법원에서 찾은 가족

멀고도 가까운 관계, 인척

by 고장 난 배터리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재물이든 정보든 상관없이 처음 벌어진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비대칭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굳어진다.

물론, 불공평함을 두고 거창한 사회적 논쟁을 벌이려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가 이런 세상의 불공평에 저항하고 분노하기보다 이것을 인간세상에서 영원히 제거할 수 없는 0.01%의 불순물이라 여기며 일정 부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니까.


사실 내가 언급하는 불공평은 엄밀히 말해 ‘효율적 시장 가설’에서 일컫는 ‘비효율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처음부터 가진 재화가 다르고, 가진 정보가 다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 차이는 현격한 격차를 만든다.

어떤 면에서 이런 사소한 불공평, 즉 정보의 비효율적인 사례는 법원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명 ‘법원가족’이라는 개념에 관한 이야기다.


법관은 분명 이 사회의 지식 엘리트 계층이고, 당연하게도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이 직책이 가계로 승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관 혹은 변호사를 가족으로 둔 판사님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오로지 능력으로 승부를 보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현상은 다른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교수의 자녀가 교수가 되고, 운동선수의 자녀가 운동선수가 된다.

법관도 이와 다를 바가 없고, 법원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주로 법관의 가족 중에 법관이 배출되고, 법원공무원의 가족이 또 다른 법원공무원이 되곤 한다.


당연히 비리는 없다.

정치 음모론에서 주장하는 취업비리는 공개적인 경쟁을 하는 곳에서는 좀체 일어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런 비대칭적인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건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인 경우가 적잖다.


나는 우연히 법원공무원이라는 존재를 알기 전까지 법원에는 판사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법대를 다니는 학생들은 일찍부터 법원공무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판사에 도전할지, 변호사에 도전할지, 법원공무원에 만족할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일단 여기서부터 정보의 격차가 벌어진다.

단순히 직업의 존재를 아느냐 모르느냐 하나만으로도 준비기간, 입사시기가 달라진다.

법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법원공무원의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 준비시기를 자신이 조율할 수 있다.


만약 가족 중에 법관 혹은 법원공무원이 있다면 이 정보를 아는 시기는 어릴 적으로 훌쩍 당겨지게 된다.

가끔 이런 소식이 들려온다.

모 국장님의 따님이 이번에 신규로 들어왔다더라 혹은 모 과장님의 아드님이 이번에 합격했다더라 같은 이야기들이.

이런 신규들을 보면 동기들의 평균 합격연령보다 월등히 낮은 경우가 많다.

이게 바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만들어내는 불공평이다.


세상 모든 게 완전히 같을 수는 없기에 이 불공평은 사실 부정적인 의미이기보다 중립적인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찌 세상 모든 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겠는가.

그건 빅뱅 이전으로 돌아가기 전엔 절대 실현시킬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다.


내가 경험한 법원가족의 형태에는 네 가지가 있다.

법관의 가족이 법관이 되는 경우.

법원공무원의 가족이 법원공무원이 되는 경우.

법원공무원의 가족이 법관이 되는 경우.

각각 따로 법원에 들어와 인척으로 엮이는 경우.


언젠가 한 판사님의 아버지가 법원공무원이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일 늦은 저녁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와 나머지 근무를 하신 덕분에 그 판사님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단순 작업은 많이 해봤더랬다.

내게 이 판사님의 얘기를 전해준 직원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판사님이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유독 다른 판사님들보다 일반직 공무원들을 더 챙기곤 했었어.”


매우 특이한 케이스이긴 했지만 아주 가끔 이런 법원가족도 존재했다.




비록 혈연으로 묶인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법원가족을 둔 사람 중 하나다.

내 경우는 앞서 열거한 네 가지 경우 중 네 번째에 속하는 케이스다.


내게는 세 명의 누나가 있다.

그리고 내가 법원에 들어가던 시절에는 셋 다 미혼인 상태였다.

발령 후 내가 처음으로 앉게 된 자리 바로 뒤엔 여덟 기수나 높은 대선배가 제증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선배는 내가 있던 법원에서 그 명성이 자자하던 3대 노총각 중 한 명이었다.


내게 누나가 세 명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그 선배는 대놓고 내 옆구리를 찔렀다.


“누나 전화번호 넘겨.”


내가 바보도 아니고 넘기라고 넘길 리가 없지.

나는 그때부터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한 채 그 선배를 관찰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누나에게 소개 정도는 해줄 수 있을 테니까.


일단 그 선배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었다.


“나 원래는 결혼하고 싶어서 인사 희망원 쓸 때 1 지망으로 OO법원 썼었어. 거기 여자 직원들이 많다는 소릴 들었거든. 근데 튕겨서 여기로 왔어. 원래는 여기가 더 오기 힘든 곳인데 이상하단 말이야.”


가끔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법한 얘기까지 할 만큼.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얘기를 던지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남들이 오해할까 봐 자기 자신의 생각을 숨기거나 꾸미려 하지 않고 저가 생각하는 내용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말할 뿐이었다.


‘괜찮은데?’


속에 담아두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예측할 수 없고 그 속을 헤아릴 수 없다.

정제된 행동 속에 어떤 본심이 숨겨져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외려 이런 솔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종종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평을 들을 수는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이리 투명하게 자기 스스로를 내보이는 사람을 나는 더 선호하는 편이다.


‘1차 테스트 통과.’


이후로도 나의 검증은 계속됐다.


“OO선배 군 부사관 출신이잖아. 그래서 호봉이 웬만한 계장님들보다 높을 걸.”


지나가다 우연히 들은 검증대상자의 호봉.


‘그렇다면 이것도 볼 필요 없이 통과.’


어차피 공무원이라면 호봉이 하나라도 높은 게 더 낫다.

아무래도 가족에게 소개해줄지 말지를 고민하는 입장이었기에 검증의 영역은 점차 넓혀졌다.

성격, 태도, 가치관, 종교 등등.

주로 내면에 관한 것들을 검증한 나는 시간이 조금 흐른 어느 날 큰누나에게 검증대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회사에 괜찮은 선배가 한 명 있는데 누나 전화번호 줘도 돼?”

“엥? 하지 마.”


1차로 거절당했다.

진정한 의지의 화신은 거절을 당한 뒤에도 다음 도전 때까지 결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나는 누나에게 또 한 번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뜸을 들이는 기간 중에도 검증대상자를 추가로 관찰하며 더 심도 깊은 검증을 이어갔다.


“저번에 말했던 선배 있잖아. 대화를 나눠봤는데 진짜 괜찮은 것 같더라고. 누나 전번……”

“응. 하지 마.”


또다시 거절당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 수도, 안 들 수도 있다면 만나라도 보는 게 좋지 않겠어? 안 만나면 무조건 0이지만 일단 만난다면 경우에 따라서 0일 수도, 100일 수도 있는 거니까.”

“……”


약간의 침묵.

잠자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누나의 모습에서 뭔가 나의 설득이 먹혀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좀 더 몰아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만났다가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해. 혹시 내가 곤란해질까 봐 꺼리는 거라면 괜찮아. 결과가 안 좋다고 주선자에게 함부로 할 수준의 인성이라면 애초에 내가 걸렀겠지. 그 선배 그럴 사람 아니야. 부담 없이 만나봐.”

“……”

“번호 줘도 될까?”

“……그래.”


다음 날 나는 그 선배에게 큰누나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그러고 1년 뒤, 그 선배는 내 매형이 되었다.


지금 두 사람은 애 둘 낳고 잘 살고 있다.

속사정이야 두 사람만 알겠지만 최소한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때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법원 들어와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 매형 아닐까?’


사람의 인연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게 나의 신념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족으로 묶인 사람을 혈족이라 부른다.

각자 살다가 운명의 이끌림으로 가족이 된 사람을 인척이라 부른다.


매형과 나는 남남이었지만 나의 혈족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며 나의 인척이 되었다.

비록 태어날 때부터 가족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법원에 들어와서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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