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8인의 판사, 그 버거움 (4)

두 부장판사

by 고장 난 배터리

<시어머니는 한 명도 많다>


8명의 판사들 가운데 두 분은 부장판사였다.

그중에서도 한 분은 원칙주의자였는데 8명의 판사들 가운데 가장 깐깐한 인상을 주는 그런 분이었다.

그 분과의 첫 에피소드는 이러했다.


전임자가 일러준 대로 125건의 결재를 한 바퀴 돌린 상태에서 나는 판사님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결재 다 했어요. 기록 가져가세요.]

[네,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결재가 완료되면 판사님들은 메신저를 이용해 결재 완료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면 나는 기록을 가져와 수정할 것은 수정해 다시 결재를 올리고, 수정할 필요 없이 결재완료 된 것들은 순서대로 정리해 정해진 날짜에 피고인과 검찰에게 송달처리를 했다.


‘유독 이 판사님 결재가 늦네.’


비슷한 시기에 올린 다른 판사님들의 기록은 이미 결재가 완료되어 내게 넘어왔는데 유독 한 부장님으로부터 결재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결재를 받는 입장에서 결재권자를 재촉한다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번에도 흔한 결재지연 상황이라 인식하고 연락을 주실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기존에 올렸던 결재물과는 별개의 문제로 그 부장님을 찾게 됐다.


“결재 다 끝났는데 약식 기록 왜 안 가져가요?”

“네? 부장님께서 결재 다 되었다는 말씀을 안 하셔서……”

“전자 결재물이 결재 됐으면 알아서 가져가야지.”

“……아, 네. 알겠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졸지에 일 안 하는 사람 됐네……’


그렇다고 나 역시 잘한 건 없다.

설령 125건의 무지막지한 기록들은 판사실에 올라와 있더라도 약식명령문은 전자적으로 결재되는 문서였기에 부장님의 말씀처럼 내가 찾아본다면 결재 완료 여부를 전산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판사님들이 메신저로 결재 완료 여부를 알려주기에 ‘이 부장님도 그런가 보다.’하고 쉽게 생각해 버린 탓도 있다.


‘판사님들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다는 걸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법원 공무원으로 살아온 지 어언 14년째.

프로답지 못한 생각이었다.

이후 나는 이 부장님께 올린 사건들만큼은 전자결재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곤 했다.


이 부장님은 기록을 검토할 때도 다른 판사님들에 비해 기준이 좀 더 엄격한 편이었다.

다른 판사님들에 비해 검찰에 공소장 수정을 요구하는 빈도가 훨씬 많았다.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과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것 사이에서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FM대로 한다면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매일 야근을 해야 한다.

야근을 한 대도 남들이 처리하는 만큼 속도를 맞출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되는 대로 일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실무자들은 중간지점을 찾는다.


중간지점


그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저 스스로 중간지점을 잘 찾고 있는 균형의 수호자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쉬웠다면 유가(儒家)에서 중용(中庸)을 강조하지도 않았겠지.


판사들마다 업무스타일이 제각각이다.

그리고 나 같은 공무원들은 판사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춰주는 것이 일이다.

그런데 유독 약식명령이라는 이 자리에서는 이것 때문에 초반에 애를 먹었다.

무려 8명.

만약 시어머니가 8명이라면 어떨까?


"에미야, 국이 좀 짜다."

"에미야, 넌 뜨거운 물에 배추만 동동 띄웠냐? 뭐 이리 싱겁냐."

"에미야, 이게 밥그릇이냐 국그릇이냐."

……


물론 판사들이 마치 수십 년 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어머니들처럼 직원들을 구박하고 못살게 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업무 지시를 받는 입장에서 때로는 깐깐한 시어머니를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소심해서 그런가?’


아무튼 직장인에게 시어머니는 한 분이면 족하다.

8명은 좀……, 아니다.




<소탈함 그 치명적인 매력>


두 명의 부장판사 중 또 다른 한 분에 관한 이야기다.


“기록에서 가려져 있는 이 부분은 다 사진인가요?”

“네, 검찰 단계에서도 피고인이 기록을 복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검찰 측에서 피고인에게 열람복사 불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의 얼굴이 나와 있다거나 이런 건 없는 것 같던데요. 검찰에서는 왜 이걸 가려놨을까요? 혹시 그런 규정이 있나요?”

“검찰의 내부 업무 규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게 하나요?”

“법원의 열람복사에 관한 규정에는 영상 또는 사진이라고 해서 일괄적으로 열람복사를 불허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음……, 그럼 우리는 허가해주죠.”


판사들은 업무적으로 법원 직원들에게 궁금한 걸 잘 묻지 않는다.

설령 공무원들이 더 잘 알만한 분야에 관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단순히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거나 판사와 법원 공무원의 격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쩌면 판사라는 직업을 수행하며 몸에 밴 것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모르는 것을 사람의 입으로 확인하기보다 명백히 활자로 인쇄된 내용을 찾아 확인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부장님은 당신이 궁금한 건 서슴없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판사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니까.


그러다 하루는 조금 더 특이한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날, 일반적인 사건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사건 하나를 부장님께 결재 올린 적이 있었다.


“혹시 다른 판사님들은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OOO 부장님 재판부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 OOO 부장님도 현재 사건 검토 중이십니다.”

“음, 두고 가면 내가 좀 더 알아보고 알려줄게요.”


잠시 뒤 나는 항상 그랬듯 8명의 판사님을 찾아다니며 한 차례 순회결재를 이어갔다.


똑똑!


다른 재판부 판사님께 결재를 받고 있을 때 방금 전 뵀던 그 부장님이 들어오셨다.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마도 방금 전 대화를 나눴던 사건에 관해 의견을 묻고자 다른 부장님의 사무실을 방문하신 듯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와, 되게 소탈하시네.’


판사들도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법률을 달달 외우진 못한다.

모든 법을 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법률을 맞닥뜨렸을 때 판사도 제 나름대로 검증하고 검토를 해야 한다.


검증과 검토를 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과거의 판례를 찾아보는 것이 있겠고, 같은 업무를 하는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사를 나 같은 일반직 공무원들에게 내비치는 경우는 잘 없다.

권위와 위치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부장님은 내게 다른 판사님들의 처리 방법을 물었을 뿐만 아니라 의견을 구하기 위해 다른 부장님의 방을 찾기까지 했다.

확실히 그 행보가 남달랐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없고, 세상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도 없다.

전문가라는 사람조차 그 분야에서 ‘많이’, ‘잘’ 안다는 것이지 ‘전부’, ‘모든 것을’ 다 아는 건 결코 아니다.

그건 판사도 마찬가지다.


사실 세상 모두가 이 세상엔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거나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약한 모습을 남들에게 쉽사리 내비칠 수 없다.

자칫 무능함으로 비칠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고 타인에게 의견을 묻는다 해도 무능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적이고 솔직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이 부장님이 그러했다.

아마도 다른 업무에서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리라.


10가지 일을 물어보고, 10가지 일에서 실수가 발생하면 무능해 보인다.

9가지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고 1가지 일을 다소 어렵게 처리한대도 유능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

9가지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되 스스로 자신 없는 1가지 일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구한다면 유능하면서도 인간적이고 솔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 부장님은 세 번째 유형에 속했다.


30대 초반만 해도 나 역시 나의 잘난 점만을 타인에게 보이려 노력했었다.

반대로 내가 모르는 것과 내가 가진 부족한 점은 어떻게든 숨기려 애썼다.

그런데 10년간의 30대를 거치는 동안 이런저런 일,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척’은 언젠가 반드시 들키게 되어 있고, 들키고 난 뒤에는 매우 꼴사나워진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에선 깔끔하게 고개를 숙이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이건 나도 몰라요.’라는 솔직한 고백이 남들에게 호감으로 느껴지려면 이것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선 완벽히 프로다움을 갖춰야 할 테지만.


이런 걸 보면 솔직함, 소탈함의 매력도 기본적인 능력이 갖춰져 있는 사람만의 특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능한 사람의 솔직한 자기 고백은 무능함의 연장선 혹은 꼴값의 또 다른 형태겠지만 유능한 사람의 솔직한 자기 고백은 인간미라는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질 테니까.


‘음, 나도 따라 할 수 있을까?’


할 수야 있겠지.

다만 무턱대고 솔직함을 따라 할 게 아니라 그전에 어떤 분야에서든 유능함을 갖추는 게 먼저일 것이다.


역시 세상은 부익부 빈익빈이다.

하나도 없는 사람이 하나를 갖추는 것보다 하나를 갖춘 사람이 둘을 갖추기가 더 쉽다.

그래서 노력을 쉴 수 없다.

내가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것도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기 위함이다.

물론 이 하나조차 아직 제대로 갖추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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