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출근시간, 슬리퍼, 여보세요? (2)

이것도 몰라?

by 고장 난 배터리

이제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할 차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런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몰라도 이렇게까지 모른다고?’


……그렇다.

실제로 이 말은 동기에게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나는 그만큼 아무것도 몰랐다.




첫 발령을 받고 일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서무 선배님으로부터 전언이 전달되었다.


“이따가 총무과에 좀 올라오라던데요.”


완전 신규 때는 총무과에서 부르는 일이 잦았다.

그래봤자 몇 번 안 되긴 했지만 나중에는 총무과를 찾을 일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것을 감안하면 신규 때는 확실히 총무과 방문이 잦은 편이었다.


‘무슨 일이지?’


접수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쉽사리 접수대를 비울 수는 없었다.

옆에 계신 선배님께 부탁을 드린 뒤 급히 총무과로 뛰어올라갔다.

나를 부른 곳은 총무과의 서무계.


당시 총무과 내부 배치는 벌집 수준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앞뒤양옆 직원의 심장박동까지 다 들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신발 그게 뭐냐?”

“네?”


나도 모르게 시선은 내 발로 향했다.

슬리퍼였다.


“타 부서 오는데 슬리퍼 신고 오냐?”

“아……”

“신발 제대로 갈아 신고 와야지.”

“아, 죄송합니다.”


일단 선배에게 사과는 했지만 사실 선배에게 지적을 받기 전까지는 이것이 문제가 될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신발을 바꿔 신고 와야 하는 거구나.’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지만 당시에 나는 이런 간단한 것조차 알지 못하던 손 많이 가는 천둥벌거숭이 생초짜 신규직원이었다.


“……그랬다니까.”

“그건 사회생활 안 해봐도 다 아는 건데.”

“아……, 그런가?”


총무과에서 있었던 일을 한 동기에게 말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그건 말 안 해줘도 다 아는 건데?’였다.


‘아, 그렇구나.’


그때 나는 내가 사회생활 레벨이 평균이하라는 것을 처음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다음 나올 이야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이제 떠들 이야기는 이것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실수다.




민사문건 접수담당자의 주 업무는 말 그대로 ‘접수’다.

직접 방문하는 민원인의 문건을 접수하고 재판부에 그것을 배부해 주는 것이 주된 업무였기에 전화를 받을 일은 없었다.

실제로 접수창구에는 아예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법원도 적지 않을 만큼 접수창구는 전화민원과는 거리가 있는 자리였다.


내가 그곳에 일하는 동안 1년 내내 전화를 받았던 기억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어쩌면 다섯 손가락도 채우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 첫 전화를 받게 된다.


띠리리리링~


“여보세요.”

“……여보세요? 너 뭐냐?”

“네?”

“여~보~세~요~?”


순간 뭔가 심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상대방의 목소리와 말투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분명 선배라는 존재의 그것이었다.

물론 선배 목소리가 따로 있고, 민원인 목소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발휘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종합적인 정보해석 능력이다.

말과 말 사이의 휴지(休止), 묘하게 풍기는 어조(語調),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냉온의 온도차를 통해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명백히 선배다.’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전화를 받을 때 무심코 건넸던 첫인사를 똑같이 따라 하는 선배의 말에서 나는 전화를 받을 때의 내 첫인사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가만, 이 목소리는……?’


얼마 전 총무과에서 마주쳤던 그 선배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스, 슬리퍼 선배?’


그랬다.

얼마 전 슬리퍼를 신고 총무과에 올라갔던 때 사회예절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던 나를 지적한 그 선배였다.


“전화 그렇게 받으면 되냐?”

“아……”

“‘OO법원 종합민원실 민사문건 접수계입니다.’라고 해야지.”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전화 그렇게 받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아주 짧고 강렬했던 전화가 끝났다.

전화를 끊은 뒤 주변의 선배와 계장님들께 이 일을 여쭤봤다.


“감사계였네. 가끔 감사계에서 전화감사 돌려.”

“전화감사요?”

“직원들이 전화 잘 받는지, 전화받을 때 어떻게 받는지 듣고 평가하는 거야. 예전에는 민원인인 척 사건 문의도 하고 그랬다던데 요즘엔 그렇게까지는 안 하더라고.”


신선한 충격이 뇌리를 강타했다.

법원 내에서 이런 것도 하는지 처음 알았으니까.

물론 이때가 내가 전화감사를 받아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직원들의 반발 때문인지 아니면 서서히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정부의 기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후로 전화를 통해 직원들을 감시하는 이 전화감사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내겐 이 전화감사가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충격이 클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나는 이때 꽤나 큰 충격을 받았고, 아직도 이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덕분에 나는 이후로 전화를 받을 때 그때 그 선배가 알려줬던 방식대로 첫인사를 건네고 있다.


훗날 계장으로 승진한 그때 그 선배와 같은 과에서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 있었던 일을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어쩌면 그 선배도 기억을 못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내겐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이지만 그 선배에게는 수많은 전화 가운데 한 통이었을 테니까.


비록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선배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내가 처음 법원에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두 번씩이나 나의 잘못을 직접 지적했던 선배.


나는 내 얼굴에 뭐가 묻었을 때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것보다 차라리 앞에서 말해주는 걸 더 고맙게 여긴다.

당연하게도 지적당할 그때는 무척 민망하겠지만 덕분에 그 사람이 나의 흠결을 보는 마지막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더 많은 민망함을 피할 수 있기에 오히려 나는 나의 흠결을 얘기해 주는 걸 고맙게 여긴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이처럼 나는 내 잘못을 지적해 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초반에 말도 안 되는 실수 두 가지를 지적해 준 덕분에 나는 그때를 기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수정된 그 습관은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여보세요라니, 여보세요라니~!’


지금 그 당시를 떠올리면 이불킥을 한 만 번쯤은 찰 만하다.

어쩌면 몰라도 그렇게까지 몰랐을까?


비록 남들보다 훨씬 못 미치는 시작이었을지언정 지금은 제법 베테랑 대우를 받고 있다.

15년 짬이라는 게 나의 어설픔을 가려주는 엄폐물처럼 작용하는 탓이다.

세월이란 게 그렇다.

오래 버티는 게 답이더라.

역시 일이든 투자든 오래 버티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아, 아닌가?’


내 계좌를 보니 투자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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