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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Mar 07. 2024

우는 남자

그날 배꽃집에는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남자 셋이 숙박을 했다. 40대 초반이었던 그와 친구, 그리고 비슷한 연령대로, 혼자 오신 분이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그들은 각자 준비해 온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술을 마시며, “사장님 같이 한잔해요.”하고 나를 초대했다. 마을과 성당으로 한정된 나의 일상에서 새로운 게스트의 초대는 늘 기대되고 반갑다.


그날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고 술자리도 즐겁지는 않았다. 입실할 때부터 불안해 보이던 그 사람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눈길과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지 화가 많이 난 사람처럼 주변 사람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간간이 한숨을 푹푹 뱉어냈고 혼자서 연거푸 술을 따라 마셨다. 두 사람만 있었다면 이야기를 나누라며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혼자 온 손님을 두고 나만 자리를 피할 수는 없어서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어디서 왔냐? 어떻게 평일에 여행을 오게 되었나?”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건네고 있던 참이었다.      


한숨을 쉬며 술을 마시던 남자가 갑자기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돌발적인 성인 남자의 눈물과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부르며 우는 남자가 순간 당황스러웠다. 혼자 온 사람과 나는 무슨 상황인지 서로를 바라봤으나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울고 있는 남자의 친구가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최근에 친구가 엄마가 돌아가셔서 그러는 거라고, 이해해 달라며 나와 다른 게스트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혼자 온 여행자가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사실은 최근에 어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래서 울적한 마음도 있고 해서 바람도 쐴 겸 혼자서 여행을 온 겁니다.”

이런 공교로운 우연히 있을까...?


우리 엄마도 몸이 아프시다. 몸이 아프지 않더라도 1930년대 출신이신 두 분은 언제 돌아가신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을 세월에 이르렀다. 연로하시고 건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두 분이 자식들 곁에 남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한 무엇을 주고받거나 살뜰히 챙겨서 그런 것은 아니다. 부모란 존재는 곁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등 비빌 수 있는 든든한 언덕처럼 마음이 차오르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성인이 되었어도 자식에게 부모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사춘기시절 나는 엄마를 거부했다. 일부 친구에게는 새엄마라고 거짓말도 했고, 엄마를 무시하는 행동도 했다.  훗날, 그때 왜 그랬을까,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갱년기와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성장한 자식들은 내 품을 떠나 독립을 했고 단출하게 남편과 둘만 남은 공간에서 담당해야 할 가사노동도 헐거워졌지만 나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고 존재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 엄마라는 이름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와 내가 불리던 이름, 우리가 공통으로 불리던 또 다른 이름 ‘엄마’였다. 세상은 엄마라는 이름에 ‘모성’이라는, 이름에 프레임 덧씌웠다. ‘엄마의 희생과 헌신’ 참 숭고하고 아름답다. 이 이름에 걸맞은 엄마를 나는 수도 없이 많이 보며 자랐다.

식구들에게는 여러 개의 반찬이 올라간 밥상을 차려주고는 정작 당신은 부엌에서 대충 한기 끼니를 때우는 엄마, 갓 지은 점심 도시락을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에 있는 자식에게 가져다주는 엄마, 딸만 낳는다며 구박을 받으면서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던 엄마,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작 자신은 가꾸지 못하던 엄마, 생선을 굽고도 젓가락 한번 대지 않던 엄마......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던 모습과는 달랐던 내 엄마가 어린 나는 참... 싫었다. 

  

지난 시간을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끔 묻고 싶지만 묻지 않는다. 이미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한 번도 지난 시간을 투정하지 않았다. 너희들 때문에 힘들었다거나, 자식이 다섯이나 되면서도 어째서 성공한 놈 하나 없냐는 불평을 쏟은 적도 없다. 그냥 엄마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세세하게 챙기지 않기 때문에 간섭도 덜한. 그래서 우리 오 남매는 일찍부터 자립적으로 성장했다.


엄마를 미워했으면서도 나는 내 자식들을 엄마처럼 키웠다. 나는 엄마를 많이 닮은 엄마 딸이었다. 가끔은 내 자식들이 내가 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었을 때처럼 그런 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이라는 말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철인일 수 없으며 설사 철인인 듯 최선을 다 했다 한들 흔쾌히 동의하며 인정하는 타자의 존재를 나는 믿지 않는다. 오 남매를 키웠던 어린 엄마를 내 눈으로 판단하며 부정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엄마를 잃은 두 사람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처럼 의연하게 슬픔을 이겨냈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얼마나 애통하면 저럴까 안쓰러움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머니 살아생전 제대로 살지 못한 불효의 마음이 읽히는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의 슬픔은 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결핍을 보았을  때인 것 같다. 사랑은 완벽한 것들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모자란 것, 채워지지 않은 것, 내가 도와야 할 것 같은 결핍된 자들에게 더 느끼게 되는 감정이며 연민인 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도 있지 않았나요?” 

그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슬픔에 사로잡혀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40년을 살아오면서 왜 좋은 시간이 없었겠는가? 여름날 땡볕에도 한 줄기 시원한 바람 들 때가 있고, 겨울 한가운데에도 따스한 한 줌 볕으로 한기를 녹이는 날이 있듯이 모자의 삶에도 봄날 같은 화사한 날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번뇌와 슬픔, 부정적 감정에 빠져 허우적 대는 이유에 대해 몽테뉴의 말을 빌자면 ‘사물에 대한 견해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불행 또는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는 남자를 달래서 게스트와 나는 함께 길을 걸었다. 친구는 다른 일이 있다며 빠졌다.

남자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끝내 위로가 되지 못했다. 슬픔에 사로잡힌 그를 당장에 위로할 사람은 이 지상에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럴 때 우리는 신을 찾고 의탁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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