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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n 26. 2024

고구마

24년 6월 25일 화요일

"뭐 하세요?"

"고구마 깁고 있시다."

"고구마를 기워요?"


'깁는다'는 말은 바느질 용어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맬 때 깁는다고 한다.

고구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지만, 심은 모종들 모두 성공하지는 않는다. 죽은 고구마 모종 자리에 새 고구마 모종을 심는 것을 우리 동네에서는 '깁는다'라고 말한다,  바느질에 익숙한 규방의 언어가 밭으로 나온 것이다.


지금은 양말을 기워 신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깁다'는 바느질 언어가 아닌 농사 언어로 등록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죽은 고구마 자리에 내가 키운 고구마 모종을 기웠다. 토요일에 내린 비로 흙이 촉촉하다.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좋다.


모종


고구마는 모종을 키워 심는 작물이다. 호박도 모종으로 내서 심고 들깨도 모종으로 심는다.

작물은 모종으로 키우는 작물과 직파로 키우는 작물이 있다. 요즘은 직파로 키워도 되는 작물도 모종으로 심는다. 모종은 솎는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간편한 농사다. 요즘 사람들은 간편한 것을 선호한다.


나는 모종을 직접 키운다. 수확한 고구마 중에서 튼실한 것 다섯 개를 골라서 이른 봄에 심는다. 거기서 나오는 모종이면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이된다.

호박을 좋아해서 호박 모종은 많이 키운다. 씨앗은 내가 먹은 호박에서 나온 씨앗과 이웃에게 얻은 것도 있다. 이웃의 호박은 내가 가진 것과는 다른 품종이다.  두세 종류의 씨앗을 심다 보니 올해는 다른 보다 호박 모종이 많았다. 직접 모종을 키우기 때문에 내 농사는 3월부터 시작된다. 


벼를 직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이 귀했던 시절 농사법이다. 경험하지 못한 나는 그런 농사를 상상할 수 없지만, 내 아버지처럼 오래 산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종을 직접 내는 방식은 아버지의 농사법이며 기다림의 농사법이다. 오래된 사람들이 짓던 농사를 흉내 내며 나는 잊힌 가치들을 새로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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