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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n 28. 2024

일상에 이름 붙이기

24년 6월 28일 금요일

'작물들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는 말을 문장으로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 말이 좋았다. 농부가 작물을 키우는 태도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과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었어도 습성은 내 몸에 남았던지 절로 그 문장과 감응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스불을 켜고  밥을 짓고 밥상을  차리던 습성대로, 이제는 눈을 뜨면  텃밭으로 나간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가 주저앉아 풀을 뜯곤 한다. 맨손으로 일을 하고 나면 여지없이 손톱밑이  까맣게 물었다. 시골 할머니들이 빨갛게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도 손톱밑에 낀 흙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단박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라도 감추고 싶을 때가 나도 있다.


무심하게 시작했던  일상들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몇 시에 밭에 나갔더라? 오늘 밭에서 뭘 했지? 풀만 뽑았던 건 아니었는데...
아... 토마토 곁순 따고 고추 묶고 했구나. 호박도 여러 개 열렸었지? 호박꽃 사진을 찍다가 벌이 꽃가루 모으는 것도 봤잖아. 너무 신기해서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잖아. 맞아! 동영상도 찍었었지........


브런치 글  <365, 텃밭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작물을, 날씨를, 그리고 내 주변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의식 속에 들어온 사물들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할 때 휴대폰은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다.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바지가 줄줄 흘러내리고, 주저앉으면 커다란 휴대폰이 내 배에 대고 주먹질을 해댔다. 불편해서 꺼내놓고 일을 하고는 잊어버리고 밭에 두고 왔다가 골탕을 먹은 적도 있다.

브런치를 시작  한 뒤로 다시 휴대폰을 챙겨 밭으로 나간다. 통화를 해야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진 찍기 위해서다. 기능을 바꾸어 찍은 사진들은 내 브런치 글 대문을 장식한다.  


일상에 이름을 붙이자 생긴 변화들이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한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을 불러주자 내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름에 숨어 있는 힘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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