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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l 03. 2024

효소

24년 7월 3일 수요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시를 읽으며 갖가지 풀꽃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 밭에서 자라는 작고 예쁜 꽃들이었다.


젊어 한 때, 풀꽃과 나무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들로 산으로 다니며 '꽃 이름 맞추기' 게임을 하였다. 야생의 꽃들은 향기가 진했다. 꽃이 핀 자리 근방만 닿아도 먼저 코가 반응했다.  꽃향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불러 주었고, 연필로 서툴게 꽃을 그렸다. 그런 시간을 통해 야생의 꽃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해마다 봄이 오면 나는 효소를 담는다. 미워하지 않고 공존하며 화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매실만 효소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와 밭에서 자라는 풀도 효소의 재료가 된다. 쑥과 쇠비름, 돌나물, 돌미나리, 곰보배추 등,  내 밭에서 자라는 갖가지 풀을 섞어서 효소를 담는다.


나보다 앞서 효소를 담군이는 전문희 씨다. 그는 지리산에서 자라는 산야초와 열매, 뿌리로 효소를 담았다. 그가 담근 효소의 이름은 '백초효소'로 널리 알려졌다. 전문희 씨가 효소를 담기 시작하게 된 것은 아픈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에 가서 살게 되면서 효소를 담게 되었고, 그 효소로 책도 쓰고 방송도 탔다. 지리산 산야초가, 어머니의 병이 그녀의 삶을 바꾼 것이다.


내 밭에서 자라는 풀 중 선호하는 효소 재료는 쑥과 쇠비름이다. 두 식물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잘 번지고, 내 밭에 가장 많다. 그렇게 담근 효소는 음식에 넣어 먹기도 하고, 여름에는 물에 타서 마시고, 물론 겨울에는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신다. 선물로도 부담 없고 좋다.


'봄쑥 세 번 먹으면 약 없이 한 해를 보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쑥은 약성이 좋다. 성질도 차거나 덥지 않다. 곰도 백일을 먹고 탈없이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 남녀노소 누구라도 탈 없이 먹을 수 있는 좋은 풀이다.

쇠비름의 다른 이름은 장명채(長命(菜)이다. 뜻을 풀면 '장수 풀'이다. 알고 보면 건강에 관심이 높은 요즘 이 풀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다면 좋은 약재가 될 것이다.


쇠비름을 짓찧으면 끈적끈적한 액이 나온다. 그런 성분 때문인지 스킨로션 등 피부 영양제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나는 이 풀로 효소를 담는다. 끈적끈적한 액이 내 만성변비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올봄, 2013년도에 담았던 효소병을 개봉했다. 거실 선반 맨 아래칸에 두고 11년을 잊고 있던 효소병을 청소를 하다가 병에 금이 가는 바람에 꺼내게 되었다. 뚜껑 라벨에는 '2013년 7월, 쑥, 쇠비름 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효소재료와 날짜를 놓았기에 망정이지 라벨링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용물을 두고 한참 고민했을 것이다.

 

금이 간 병에 담겼던 효소를 12개의 와인병에 옮겨 담았다. 선물로 나누고 남은 병이 2병이다.

이슬아 작가는 <어떤 시국선언>에서 "나는 더 이상 죽인 힘으로 살고 싶지 않다. 살린 힘으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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