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애를 아는 사람의 표정

24년 8월 7일 수요일

by 보리남순

내 텃밭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지렁이, 무당벌레, 노린재, 풍뎅이, 청개구리, 진딧물, 개미는 자주 보아서 이름을 불러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생물들은 이름도 모르고 그들의 생애도 알지 못한다.

사실은 내 밭에 사는 그들 생명들이 어떤 활동을 하며, 또 서로 어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많이 알지 못한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했던 말을 자주 들으려 한다. 잊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키우던 방풍나물에서 잎을 파먹고 있는 유충을 발견했을 때는 미운 마음이 앞섰다. 그 존재가 자라 무엇이 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은 존재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어머, 산호랑나비 유충이 여기 있네." 방풍나물 잎을 먹고 있는 존재를 알고 있던 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그 존재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산호랑나비는 나에게도 익숙한 생물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데리고 갔던 계곡에서 여러 차례 보았다. 산호랑나비는 일반 나비에 비해 크다. 우거진 나무사이로 비추던 햇살을 받으며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는 산호랑나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오래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산호랑나비 유충은 향기가 나는 풀을 좋아해요. 당근이나 미나리가 자라는 곳에서 발견되는데, 여기 방풍나물에도 살고 있네요."

그는 미나리밭에서도 내가 보지 못했던 유충을 발견하며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꺼내서 여러 번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한 존재의 생애를 안다는 것은 저런 표정이구나.' 기쁨으로 환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존재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내가 가질 수 없는 얼굴이었다.

'산호랑니비 유충', 이제 이름을 불러줄 수 있으니 내 얼굴도 저렇게 환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