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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n 25. 2024

단비

24년 6월 22일. 마침내 비 내린 날

비를 기다리고 있다. 어릴 때 장화신고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렸던  그런 비오는 날을 기다린다.  아주 많은 날 동안 비를 기다렸다. 이 기다림은 나를 위한 바람은 아니다.


올 해는 봄 가뭄이 길었다. 기억하기로 4월에 몇 번 비가 내렸고, 그 뒤로는 비다운 비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집에 온 큰 아이는 마당가에 심어진 나무를 보고 잎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큰 아이가 가리킨 나무는 라일락이었다. 나무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라죽은 나뭇잎이 있었다. 꽃이 만개한 나무를 보고, 오늘 처음 나무를 응시한다. 나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만큼 마음은 밭으로 향해 있었다.


본격적인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4월과 5월에는 비가 자주 내려야 한다. 그래야 촉촉해진 대지에 모종 심고 씨 뿌리는 농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비다운 비 한번 내리지 않았던 올봄은 대지의 목마름은 대단했다. 딱딱하고 굳은 땅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손은 더디고, 힘이 빠졌다. 풀조차 마른땅을 벌벌 기고 있으니, 대지에 등 붙이고 사는 생명들에게 힘든 시기다. 사람 손길을 타고 그나마 작물들이 더디게 자랐다. 물로 키운다는 오이와 수박, 참외 밭에 물 담은 페티병을 꽂아 물을 주고 있다. 하다 하다 별 짓을 다해 본다. 페트병에 담긴 물 마시는 채소는 생전 처음 본다. 병에 담긴 물을 마시며 오이가 크고 있다.


토요일 아침, 꾸무럭거리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딱딱하고 굳은 대지 위로 비가 내린다. 기다렸던 단비다. 기세로 보아 찔끔거릴 비가 아니다. 9시에 내리기 시작하던 빗줄기가 시간이 갈수록 굵어지더니 여름 장맛비처럼 시원하게 쏟아진다. 쳐마 밑에 바쳐놓은 통에 금세 빗물이 넘쳤다. '사람이 백날 준 물보다 하늘에서 한 차례 쏟아지는 비가 더 낫다'는, 농부들이 기다리던 하늘이 내리는 단비다.  


타는 갈증으로 견디던 생명체들이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겠다. 얼음 잔뜩 넣은 커피를 마신 것처럼 내 속도 뻥 뚫리는 단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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