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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n 25. 2024

미나리

24년 6월 21일 금요일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다. 6월 중순을 넘어섰을 뿐인데 연일 30도를 웃도는 기온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여러 개의 일정이 있어 바쁜 날이었지만, 채소밭이 밟혀서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 1시간의 여유가 있어 물이라도 주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밭으로 나갔다. 


반들반들 연하게 올라온 파란 잎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미나리다. 

작년 이른 봄, 냉이라도 캐 볼 요량으로 밭에 나갔다가 미나리를 발견하고 어찌나 반갑던지! 처음 발견하고는 킁킁 냄새도 맡아보고 잎을 뜯어먹어보기도 했다.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밭에 미나리를 심은 것은 20년 전이다. 배밭을 사고 난 뒤 제일 먼저 심은 것이 돌미나리였다. 이웃에서 얻은 미나리를 배수로 주변에 심었다. 몇 뿌리 되지 않은 미나리는 잘 자랐다. 줄기번식을 하는 미나리는 습기 있는 땅이면 어디든 잘 자란다. 강인한 생명체다. 향긋하고 달콤한 미나리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었다. 배밭을 오는 사람들은 미나리를 뜯어 갔다.


밭에서 미나리가 사라진 것은 배나무를 베고 난 뒤였다.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밭을 새로 만들면서 물고랑과 함께 미나리도 사라졌다. 그렇게 잊혔던 미나리를 다시 만난 것이 작년 봄이다. 10년 만의 부활이었다. 그러니 어찌 단번에 믿을 수 있었겠는가! 미나리가 땅속에서 잠자고 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말이다. 미나리의 부활은 옆 논과 관계가 있다. 옆 논은 밭으로 쓰던 곳이다. 물을 대고 벼를 심기 시작하면서 옆논에서 우리 밭으로 물이 흘러들었다. 찰박하게 물 찬 땅을 볼 때마다 속상했다. 논으로 사용한 지 3년 되던 해, 찰박거리던 우리 땅에 미나리 싹이 텄던 것. 호사다마라고, 나쁜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더라. 이웃에 대한 불평도 사라지고 미나리도 마음껏 먹게 되었으니 말이다.


풀 깎으며 베어낸 미나리가 다시 올라와 자라고 있다. 꽃이 필 시기에 연한 미나리를 얻게 된 것은 짧게 베어냈기 때문이다. 야들야들 올라온 미나리는 먹기 딱 좋게 자랐다. 

호박밭에 웃거름을 주고, 급한 대로 들깨모와 열무밭에 물을 주고 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외출 준비를 서둘러야 할 듯싶다.

오늘도 어제만큼 더운 날이 될 것 같다. 그나저나 비는 언제 오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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