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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n 25. 2024

프롤로그

내가 키우는 것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다.

씨앗을 심고, 풀 뽑고, 거름 주고, 벌레 잡고, 모종 기르고, 모종 심고, 거두고,  말리고, 털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재밌다. 재밌는 일이라 그런지 내 손 탄 작물들은 잘 자란다. 그리고 그것들로 나는 365일 산다.


어릴 때부터 흙장난이 좋았다. 손가락으로 흙바닥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흙에서는 향긋한 흙냄새가 났고 부드럽고 따뜻했다. 성인인 된 나에게 텃밭은 마음껏 손으로 흙을 만질 수 있는 공인된 장소가 되었다. 손톱밑에 흙이 끼고 거칠어져도 맨손으로 흙 만지는 것은 포기할 수 없다.

"요즘 누가 손을 그렇게 까맣게 태워요. 시골 사람들도 일할 때는 다들 장갑을 끼는데... 카타리나, 장갑 좀 껴!"

검게 그을리고 거칠어진 내 손을 본 지인들의 걱정 담긴 염려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장갑 낀 손으로는 감각이 둔하다. 덩굴순과 겨드랑이에 올라오는 곁순 같은 것들을 제거할 때는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식물이 다치지 않는다.


흙을 만진 지 20년이 넘었다. 그래도 매일 만지는 흙이 새롭고 재밌다.

나에게 밭일은 일이 아니다.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삶을 발견하는 학습의 장이다.

땅은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마법사다. 매일 봐도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해야 할 일을 있다. 마법사 땅은 내가 자고 있는 밤에 마술을 부려 자꾸만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365일, 매일 새로운 것들이 땅에서 탄생한다.


지금 내 텃밭에는 오이, 가지, 고추, 참외, 수박, 들깨, 하늘마, 더덕, 고구마, 돼지감자. 당근, 부추, 달래, 당귀, 돌미나리 등 이름을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내가 심고 가꾸는 것들과 비름나물, 담배나물, 민들레, 곰보배추, 개똥쑥, 쇠무릎, 토끼풀, 쑥 등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것들이 뒤섞여 자라고 있다.


내가 심은 것과 심지 않은 것들이 공존하는 공간인 내 텃밭 365일을 기록해 보려 한다. 내가 심고 가꾸는 것들과 내가 싸우고 버리려 하는 것들의 투쟁하는 이야기요, 또 화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행복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올 2월 브런치라는 텃밭을 만들었다. 새로 생긴 텃밭이 좋기도 하면서도 내가 가진 씨앗을 고르고 심을 방법을 찾는데 고심했다. 이제 골라낸 씨앗 하나 밭에 심어보려 한다.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작물이 자라듯이, 성실을 무기로 브런치 텃밭도 키워보려 한다. 이것저것 심고 열심히 가꾸어 보려 한다.

응원해 준다면 더 힘이 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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