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3-잊힌 가치들

24년 7월 24일 수요일

by 보리남순

1940년대 출생한 아저씨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내 이야기이다.

나는 어엿한 농사 경력 20년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농사전문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고백하자면 나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 포기한 농사꾼이다.

이유는 하나다. 제초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풀과 작물이 어우러져 사는 내 밭을 바라보는 동네 사람과 나의 시선 차이는 크다.

“에구, 풀 약 좀 치시겨? 어디 농사가 제대로 되겠시꺄?”

농약을 쳐야 할 밭으로 보는 것은 동네 사람의 시선이다.

“하하하하. 걱정 마세요. 풀밭 같이 보여도 제 보물창고예요.”

동네 사람들이 먹지 않는 야생풀을 뜯어 나물로 무쳐먹고 묵나물도 만들고, 또 가장 중요한 효소와 식초를 담고 있는 내 시선에서 그곳은 보물창고와 같다.


20여 년 전, 이곳에 정착하고서 처음으로 농사교육을 받았다. 관행농법이 아니라 유기농법 교육이었다. 지역에 있는 시민단체에서 했던 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인데, 이때 배웠던 농사법으로 지금껏 농사를 짓고 있다. 교육과정은 6개월이었다. 주 5일간 진행된 수업은 지역 내 유기농업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고추, 오이, 고구마 등 주요 작물을 키우는 현장에서 여러 농부들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설명을 들어가며 현장 농사를 배웠다.

그때 초보농부꿈나무들을 지도해 주었던 분들이 한결같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농사는 사람 힘만으로 지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콩을 심을 때 왜 콩 세알을 심는지 알아요? 한 알은 땅속 벌레에게 주고, 또 하나는 하늘을 나는 새에게 주고,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이 먹기 때문이에요.”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 말에 매료되고 말았다.

“형제지간에는 콩 한쪽도 나눠먹어야 한다.”는 말은 부모님께 여러 번 들었으나, 벌레와 새도 나눠 먹는다는 말은 차원이 다르게 들렸다. 시선이 확장되는 이야기 었고, 농부라는 직업을 근사하게 만들어준 말이었다.

교육이 수료된 후부터 나는 그때 배웠던 농사법을 기억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프로필을 쓸 일이 있을 때 나의 직업란에 ‘농부’라고 쓴다. 나는 내가 농부인 게 좋다.

아저씨가 농부로 살았던 시간과 내가 농부의 삶을 시작한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변화의 것들을 아저씨의 이야기로 알게 되었다. 아저씨의 지난 시간이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면 지난 20년간 내 과제는 농촌에서 ‘자립적 생활’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눈부신 변화를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살림은 여전히 곤궁하다.


세상은 편해졌지만 뒤가 맞지 않는다는 아저씨의 이야기에서 나는 질량화되지 못한 것들을 본다. 질량화되지 못하고 단위로 잴 수 없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쉽게 평가절하 되며 또 자주 지워진다. 아저씨의 이야기는 풍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풍요 속에서 잊힌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다.


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변모된 농촌의 삶을 이야기 한 아저씨의 이야기에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단서들을 추적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재설정하며 무엇이 내 삶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본다. 내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하며 동요시키는 것들에 대한 것들을 말이다.

이전 16화이야기 2-그걸로 어떻게 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