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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l 22. 2024

이야기 2

24년 7월 22일 월요일

내가 어릴 때, 해방되고 나서 땅들을 분할받아서 농사를 지었는데, 상환금을 내면 자기 땅이 되거든. 그러다 보니 배를 곯아가면서 상환금을 내니까 먹을 양식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남의 땅을 많이 부쳐 먹었는데 타작하고 나서는 벼를 감추고 했어. 그전에는 일본 놈들이 가져간다고 부엌 뒤에다 구덩이 파고 감추고 했었어. 요놈들이 나가고 나니까 돈 많은 부자들이 땅을 사버린 거야. 강화에도 강화 땅을 다 지꺼로 만든 사람이 있었어. 여기 우리 동네 땅도 다 그 사람 거였어. 내가 열댓 살쯤 됐을 때 조봉암이가 토지개혁해서 다 돌려줬거든. 지금도 강화 사람들은 조봉암이를 최고로 쳐. 그런데 이승만이가 총살시켜 버리잖아. 대통령 될까 봐.


나중에 기계화되고, 비료 주고, 수리시설이 정비되고 난 뒤로 쌀 수확이 거의 곱으로 늘었어. 그때부터 먹는 걱정을 덜게 된 거지. 옛날에는 안뜰 땅값이 벌뜰 땅 하고 달랐지.(마을과 벌판 사이로 난 도로를 경계로 마을에 접해 있는 논을 안뜰, 도로 건너편 들판에 있는 논을 벌뜰이라고 불렀다.)

안뜰 땅은 마을에서 나오는 시궁창물, 똥물이 비료역할을 해서 벼가 잘 됐어. 지금은 똑같이 비료를 주고 물을 대지만 지금도 벼를 베보면 안뜰 것은 짚이 빳빳해서 좋고 벌뜰 거는 물렁물렁하고 그래. 흙차이가 그래.


그전부터 과일 날 때면 쌀을 덜 먹는다고 했거든. 하지만 수입 쌀 들여오고, 먹는 것도 많이 달라져서 쌀을 주체를 못 해. 당연히 값이 떨어지지. 촌사람들이 자식들한테 농사지으라 못하는 것도 삼천 평 농사지으면 비료대, 농약값, 인건비에, 갈고 쓸고 추수한 기계값 빼고 나면 한 육백만 원 남아. 식구 먹는 거 빼고 나면 오백만 원이야. 그걸로 어떻게 사냐고? 그러니까 자식들 농사지으라는 말 안 하는 거야. 나이 든 사람들이야 해오던 거고, 할 게 없으니까. 억대거지라는 말 들어봤어? 땅값은 억대인데 팔면 당장 해 먹고 살 게 없으니까 그냥 눌러앉아서 농사나 짓는 거야. 


김약(제초제)이 나온 건 64~65년도쯤 되었을 걸? 김약이 처음 나왔을 때는 겁나서 안 줬거든. 풀이 누렇게 죽으니까 겁나지. 그땐 지도소(농촌 지도소)에서도 권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남들 주는 거 보고서 나중에들 약을 주기 시작했지. 검약이 값은 비쌌지만 사람 사서 밥 멕이고 품삯 주는 거에 비하면 싸게 쳤거든.


김약 나오고 나서 농사짓는 게 많이 달라졌어. 그전에는 다 품앗이로 농사를 짓던 때니까 농네에서 20~30명씩 패를 짓는데 농기패라고 해. 농기패를 묶고 나면 동네마다 돈을 걷어서 꽹과리, 북, 장구, 날라리 같은 유물을 장만하지. 그전에는 7월 달에 벼가 이삭을 피기 전에 논김을 매거든. 한 20일 김매기를 하는데, 무척 덥지. 아침 일찍 모여서 농기를 꽂아놓고 김매고 있으면 아침밥을 내와. 그러다가 저쪽 동네도 김을 매거든. 저쪽 동네 기가 보이면 같이 놀자고 기를 높이 들고 흔들어. 그러면 상대편에서도 기를 숙여 절을 하는데, 좋다, 같이 놀아보자는 뜻이야. 그러면 이쪽에서 깃대를 잡은 사람이 앞장서고 농기패들이 그 뒤를 따라가면 저쪽에서도 와. 중간에서 만나서 싸움하고 막걸리 먹고 같이 어울려서 놀아. 그때는 한잔 먹고 놀고 김매고 그랬어. 그런데 저쪽에서 반응이 없으면 이쪽에서 성격 괄괄한 사람들이 쫓아가서 그쪽 깃대를 꺾기도 했지만 우리 때는 그렇게까지는 안 했어.


저녁에는 부자 집에서 술 한잔씩 내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와서 한 잔씩 먹고 놀았어. 농기 패는 악기를 치면서 대문부터 시작해서 온 집안을 돌며 잡귀를 쫓아 주었는데 이것을 강화에서는 천불이라고 했어. 그러면 집주인은 쌀도 퍼주고, 막걸리 값도 주곤 했어. 한 40~50년 전 이야기야.

하지만 없는 사람들은 농기패 밥이랑 참 대기 힘드니까 식구들끼리 생고생을 했거든. 그런데 김약이 나오니까 약만 줘도 풀을 잡거든. 없어도 누구한테 안 꿀리고도 농사지을 수 있게 된거여. 김약 나와서 농사짓기는 편해졌지만 그때처럼 재미는 없어.


지금도 옛날처럼만 살면 괜찮아. 깻묵 치고 농사지을 때는 벼가 웬만해서는 쓰러지는 법이 없었는데 요즘은 안 쓰러지게 할라고 약은 또 얼마나 쳐? 먹는 것도 배고팠다가 먹으니 맛있었는데, 도시 사람들은 눈으로 먹는지 하얀 쌀만 찾고 밥맛이 있니 없니 하지만 그것도 다 배부른 소리지. 그전엔 기름 한 되로 한 달씩 불 피고 등겨 퍼다가 밥 해 먹었어. 지금은 전기 펑펑 쓰지, 휴대폰 쓰지, 김치냉장고 들여놓지. 옛날에는 양말 장갑 뚫어지면 기워서 쓰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 버리거든. 거기다 만만한 게 농사꾼이라고 공산품 팔아야 되니 그 나라 농산물을 사 와서 농민들 맥을 따버리거든.  

세상이야 많이 편해졌지. 그럼 뭐 하나? 세상이 편할수록 뒤가 안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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