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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l 19. 2024

이야기 1

24년 7월 19일 금요일

이 이야기는 이십여 년 전 동네 아저씨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풍요로운 지금과는 달랐던 시절의 옛날이야기이며, 농기계와 화학농법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살았던 사람의 증언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더 많이 풍족해진 오늘을 보고 했던 그의 말이 질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세상이야 많이 편해졌지. 그럼 뭐 하나? 세상이 편할수록 뒤가 안 맞는데."




 옛날에는 이 너른 들판 때문에 살만했어. 지금이야 관광객이 찾아오고, 바닷가를 선호하는 도회지 사람들 때문에 바닷가 땅이 금값이 됐지만, 예전에는 여기도 꽤 괜찮게 살았던 곳이거든.


15~6년 전에 여기 들판을 경지정리 하면서 수로를 넓게 만들었어. 그때부터 농사짓기가 편해졌지. 그전에는 농사짓기가 얼마나 힘들었다고. 그때는 보 막아서 겨울에 논에다 조금씩 물 가두어서 그 물로 모내고 했는데, 그까짓 거 당할 수 있나? 그때는 물쌈들 많이 났어. 지하수 졸졸 나는 수도꼭지 하나 나오는 거 파서 모 내려면 뿌연 논바닥에 한 이 일씩 물 대고 모냈지. 자다 보니 사람이 없길래 나중에 물어보니 밤새 논에 물 대고 왔다는 거야. 저기 망월은 더 힘들었어. 망월은 물이 귀해서 건파를 붙였는데 마른 벼를 논에다 뿌리고 비가 내리면 자라서 먹는 건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건파 논매다 며느리 도망간다는 말이 있었어.


옛날에는 한 칠팔백 평 농사지으면 부자라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다 일꾼을 두고 농사를 지었거든. 그때만 해도 남의 집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도 거의 그렇게 살았어. 일할 게 없으니까 큰 아들은 집안일하고 작은 아들들은 남의 집 살이를 했어. 배운 것도 없고 국민학교 간신히 나와서 어디 가서 뭐 해야? 그래도 남의 집 살이 3~4년 열심히 하면 땅을 한 자리씩 샀거든. 그때는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


비료 나오고부터 수확량이 많이 난거지. 옛날에는 비료 한 포대가 쌀 한 가마였어. 그전에는 가닥(떡갈나무) 잔디뿌리 캐다 넣고 (거름으로 젤 좋다고 했어) 창포풀  깎아다 넣고 했어. 저마다 다 깎아 넣으니까 남는 게 어디 있나? 모 키울 때 비료는 적고 하니까 똥거름을 퍼다 끼얹어. 똥거름은 가을보리밭에도 넣어. 남의 집 사는 사람들이 일 년 일 다 하고 나면 화장실 쳐주고 가는데 가을보리밭에 끼얹어 주고 나면 그 집 일 다 끝냈다고 했지. 해방 전에는 아마 함흥비료를 썼어. 6.25 전쟁 나고 나서 미국에서 들어온 배급품으로 평당 얼마씩 배급을 줬는데 양이 적었어. 뒷구멍으로 장사꾼들이 파는데 40킬로 한 포대에 가을에 벼 한 가마씩 주기로 하고 썼었어. 충주비료가 80년대가 돼서야 나오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흔해진 거야.


경운기, 이양기가 나오고부터는 농사짓는 게 더 수월해졌지. 기계가 없을 때는 다 손으로 일을 했어. 사람 손으로 열흘 해야 할 일이 기계가 나오고부터는 하루도 안 돼서 끝나는 거야. 한 사람이 120평 심던 걸 기계로 하면 둘이서 삼천 평을 심거든. 좋아졌지. 대신에 돈이 많이 들지. 김약 값 줘야지, 벌레 약 줘야지. 약값이 백만 원을 들어야 해. 옛날에는 그런 게 어디 있었나?


그때는 지금처럼 사람 인심도 강퍅하지 않았어. 밤에도 손이 딸리면 이웃에서 들 나와서 벼 베서 말리고, 비 온다고 하면 밤새 나가서 벼 묶어주고 그랬어. 지금은 그런 거 없어. 수로가 터져도 가마 떼기 하나씩 가지고 가서 막아주고 했는데, 지금은 지가 알아서 막겄지 하지, 뭐 해주나?


지금은 아주 틀려. 도시식으로 앞뒤 집도 모르고 사는 거지. 다들 지 재미거리를 찾아서 하거든. 낚시하는 사람에 등산 댕기는 사람에.... 옛날에는 고작 해봐야 화투나 하고 술집 가서 술이나 한 잔 먹고 했지 지금처럼 낚시 댕기는 뭐 취미 생활했나. 그때는 막걸리 한 되에 쌀 한 되 값 줬지 아마? 그래도 술 담그면 잡아가니까 몰래 담가서 산에 감추고 조사 나오면 화장실에다 감추고 그랬어.


지금은 돈 없는 사람은 더 살기 어려워요. 그전에는 밥도 나눠먹고, 일을 해도 이웃이 다 모였잖아. 잔치를 해도 자기 일을 해도, 이웃 사람들이 다 모여서 가마솥 걸어서 밥하고 국 끓이고 밥 나눠먹고 했는데 지금은 밥통에 하나 해서 일꾼들만 갖다 주지 동네 사람들 오라고 하나? 지금은 부모님 생신이 돼도 밥 나눠 먹고 하는 거 잘 안 해요. 식구들끼리 어디 가서 먹고 하면 간단하잖아. 재미로 따지자면 그때가 훨씬 나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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