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9월 6일 금요일
"그 전지가위 농협에서 샀어요?"
"아, 그 7만 원짜리?"
"네... 샀어요?"
"그거 산림조합에 가서 5만 얼만가 주고 샀어요."
"똑같아요?"
"내가 전에 쓰던 거하고는 조금 다르긴 한데 그래도 쓸만해요. 처음이라 아직 손에 안 익어서 그런가?"
"그래요? 나도 고추 팔아서 그거 하나 사야겠네."
요가 쉬는 타임에 양 옆에 있던 두 사람이 나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알지 못한 이야기라서 끼지도 그렇다고 빠질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가위는 나무를 자르는 큰 전지가위를 말하는 듯했다.
전지가위는 시골생활에서 요긴한 물건이다.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꽃나무도 좋아한다. 그들은 뭐든지 키우는 것에 열심한 사람들이다. 사람 못지않게 새들도 키우는데 열성적이다. 우리 밭만 해도 뽕나무가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다. 사람이 심지 않은 것들은 대개가 새똥이나 바람을 타고 온 씨앗들이다.
작게 올라온 것들은 뿌리를 뽑아 버리거나 낫으로 베어낼 수 있지만 사람 눈 피해 구석진 곳에서 어느새 굵어진 나무는 낫으로는 어림없다. 필요하지 않은 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있지만 대형 전지가위가 있다면 요긴할 것도 같다.
유실수는 잘 관리해야 굵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따고 난 뒤에는 뒤섞인 가지를 잘라내고 고르게 햇볕이 들도록 수형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 손이 부지런한 농부는 거름 주고 병 충해 예방제를 뿌리는 등 쉴 새 없이 관리를 한다. 고추 팔아서 전지가위를 사고 싶어 하는 그네 집에도 잘 손질된 유실수와 정원수가 여러 그루다. 어떤 가위길래 7만 원, 9만 원씩이나 하는 걸까? 금테라도 둘렀단 말인가? 전지가위가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그만 입이 딱 벌어진다.
고추 팔아서 팔아서 전기가위 하나 사겠다고 말한 그니는 하우스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다. 노지에서 키우는 것과 달리 하우스에서는 봄 서리 피해와 병충해를 줄이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세상만사 모든 일이 좋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8월 땡볕에 달구어진 하우스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굵은 땀방울 쏟으며 매운 고추를 고추를 딴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몸에 익은 기술과 노하우를 터득한 숙련자, 전문가들에게도 뼈가 삭는 고된 노동이다.
고추는 단위 면적당 수입이 높은 작물에 속한다. 밭작물의 경우 평당 소득을 1만 원으로 본다. 1백 평이면 백만 원, 1천 평이면 천만 원이다. 얼핏 '그 정도면 괜찮은 소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1만 원의 수입은 고추나 과수와 같은 작물에서 가능한 소득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고추에 목을 맨다. 8월에 고추 팔아 생긴 수입으로 상반기 농사자금과 생활자금으로 쓰이며 하반기 농사비와 생활자금으로 쓰인다. 힘든 농사지만 농부들이 고추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올해 고춧가루 가격은 얼마예요?"
"글쎄요... 나도 잘 몰라요..."
고추 가격이 궁금했던 내가 물었다. 고추 가격은 해마다 다르다. 그니는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아직 눈치게임이 끝나지 않았나 보다. 내가 듣기로 쌀이나 보리, 밀과 같은 곡류는 정부나 농협에서 수매가를 결정하는 반면 파, 마늘, 양파, 고추, 과일 같은 밭작물은 농수산물 도매시장 같은 곳에서 시세가 정해진다고 한다. '밭떼기'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경제는 일종의 눈치게임이다. 정부 개입 없는 시장경제에 맡겨진 작물 가격은 그래서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거다. 뉴스를 통해 보게 되는 배추파동, 양파파동이 일어나는 이유 말이다. 생으로 일하고 빚만 늘게 될 상황에 눈 돌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말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이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말인가!
사람 생명에 중요한 생필품 가격이 눈치게임으로 정해진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